김순희(가명'75) 씨가 사는 26㎡ 크기의 아파트는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현관부터 주방, 방 두 칸까지 옷가지와 살림살이, 쓰레기가 한데 뒤엉켜 산처럼 쌓여 있는 탓이다. 순희 씨는 "지난해 겨울, 길에서 넘어져 오른팔을 심하게 다친 이후 집을 제대로 못 치웠다"고 했다. 그는 병원도 가지 않고 5천원짜리 팔목 보호대를 낀 채 통증을 견딘다.
보일러를 켜지 않아 차디찬 방에서 순희 씨는 얇은 치마를 입고 버틴다. 왼쪽 다리가 퉁퉁 부어 맞는 바지를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왼발은 혈액순환이 잘 되지 않아 얼음장처럼 차갑지만 발에 맞는 양말이 없어 맨발로 지낸다. 부어오른 왼발과 성한 오른발의 크기가 달라 돈 주고 신발을 사지 못하고 버려진 것을 주워 신는 날이 많다. 순희 씨의 다리가 부은 지는 벌써 17년이나 됐다. 그동안 제대로 치료를 받은 적이 없다. 그는 "돈이 없어서 치료받을 생각은 한 번도 안 해봤어. 그냥 이렇게 살다가 죽으려고 했지"라며 "치료받고 예쁜 바지 한 번 입어봤으면 소원이 없겠어. 늙은이라도 그런 꿈은 있어"라고 읊조렸다.
◆병든 다리보다 아픈 건 외로움
"암으로 다리에 이상이 생길 것이라곤 상상도 못했지." 순희 씨는 1998년 자궁암으로 자궁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 당시 암세포가 림프절까지 전이돼 항암치료가 필요했지만 돈이 많이 들어 포기했다. 치료를 그만둔 지 4개월 만에 왼다리가 붓기 시작했다. 붓기는 점점 더 심해졌고 옷을 제대로 입기 어려울 정도가 됐다. "말도 못하게 아파요. 다리가 욱신욱신한 것이 빠질 듯이 아프고 가끔은 다리가 화끈거린다니까. 날씨가 궂으면 관절통이 심해져서 정말 힘들어." 통증이 참기 힘들 정도면 동네의원에서 진통제를 받아 온다. 최근 들어 오른쪽 다리가 조금씩 붓고 있는 것도 걱정이다.
"늙으면 아픈 게 예삿일이지. 고혈압, 동맥경화, 빈혈, 골다공증, 당뇨…." 순희 씨가 앓고 있는 병은 두 손으로 다 꼽기 힘들 정도로 많다. 2년 전에는 뇌경색으로 응급실에 실려가기도 했다. 치료가 잘 된 덕에 무사히 병원에서 걸어 나왔지만 만성두통과 같은 후유증이 순희 씨를 괴롭힌다. 순희 씨는 아플 때마다 자신이 혼자라는 사실이 뼈아프다. "뇌경색이 왔을 때는 병원비가 200만원 나왔는데 고물상에 빌려서 겨우 냈어. 어디 그뿐이야? 혼자 살면서 아프면 약 먹을 물 떠줄 사람도 없어."
◆복지시설 전전하며 끼니 해결
순희 씨가 홀로 산 지는 서른 해가 훌쩍 넘었다. 걸핏하면 술을 마시고 들어와 순희 씨를 때리던 남편과 이혼했다. 순희 씨는 아홉살 난 딸과 네살배기 아들을 두고 빈손으로 집을 나섰다. "제 발로 나온 판에 시댁에서 돈 한 푼 안 줘도 할 말이 없었지. 남편은 그 길로 애들을 데리고 강원도 철원으로 떠났어요. 그 후론 애들이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몰라."
정처없이 떠돌던 순희 씨는 여관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숙식을 해결했다. 다방에서 주방일을 거들고 미군부대 앞에서 보따리 장사도 했다. 일이 없을 때는 바가지를 들고 이웃집을 돌아다니면서 동냥도 했다. "그 시절에는 다 고생하고 살았어. 제 입에 풀칠하기도 바쁜데 날 도와줄 가족이 어딨어." 그나마 10년 전에 영구임대아파트에 들어와 살 집을 해결했고, 기초생활수급비로 매달 지원되는 50만원으로 생활한다.
그러나 순희 씨는 여전히 혼자다. 아침에 일어나면 빈속에 사탕 하나를 털어 넣고 혈압약을 챙겨 먹는다. 점심은 근처 사회복지시설에서 해결하고 저녁은 라면으로 때우는 게 익숙하다. 일을 할 수 없는 몸이라 매일 시간을 죽이는 게 쉽지 않다. 순희 씨는 습관처럼 "내가 얼른 죽어야 하는데…"라는 말을 반복했다. "세금으로 나 같은 홀몸노인들 먹여 살리는 거잖아. 쓸데없는 노인이 젊은이들 고생시켜서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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