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청라언덕] 지방도 함께 잘사는 나라

2009년 5월 23일. 정치부 초년 차였던 기자에게 잊을 수 없는 사건이 일어났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逝去). 그는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이 아니겠는가?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라는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당시 매일신문 정치부는 '바보 노무현'을 추억하는 시리즈를 기획했고, 첫 주제가 바로 '미완의 과제로 남은 국가 균형 발전, 지방도 함께 잘사는 나라'였다.

노무현(16대)은 18대에 이르는 전'현직 대통령 가운데 유일하게 지방분권을 기치로 내걸었다. "중앙 집권과 수도권 집중은 국가의 미래를 위해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습니다. 중앙과 지방은 조화와 균형을 이루며 발전해야 합니다. 지방은 자신의 미래를 자율적으로 설계하고, 중앙은 이를 도와야 합니다. 저는 비상한 결의로 이를 추진해 나갈 것입니다." 2003년 2월 25일, 그의 대통령 취임사엔 지방분권과 국가 균형 발전에 대한 의지가 담겨 있다.

앞서 노무현은 1993년 지방자치실무연구소 설립과 함께 변방으로 전락한 지방을 국가 발전의 중심으로 만들겠다는 꿈을 키웠다. 수도권의 강력한 저항과 정치적 이해타산이 맞물리면서 그의 꿈은 비록 미완으로 끝났지만 '혁신도시'와 '행정중심복합도시'(세종시)는 노무현의 지방분권 유산으로 남았다.

그의 사후 7년 7개월. 갈수록 사그라지던 '지방분권'의 불씨가 되살아나고 있다.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로 제왕적 대통령의 폐해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탓이다. 정치권을 중심으로 '분권형 개헌' 목소리가 거세지는 가운데 개헌 과정에서 지방분권 의제를 함께 다뤄야 한다는 지방의 요구가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

지난 13일 국회 귀빈식당에서 열린 전국시도지사 간담회에선 지방분권형 개헌을 통해 국가 운영 시스템을 개혁하자는 목소리가 공식화했다. 이 자리에서 김관용 경상북도지사는 "권력의 과도한 중앙 집중에서 벗어나 국가 시스템을 개조하는 답이 바로 지방분권에 있다"고 역설했다. 20일엔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의원 등 지방분권개헌국민행동이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제왕적 대통령제를 개혁할 수 있는 지방분권형 개헌 추진을 촉구했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 역시 지금은 개헌을 말할 때가 아니라면서도 지방분권형 개헌이라는 대전제엔 동의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올 한 해 대구경북은 '지방분권'을 완전히 상실했다. 중앙정부와 수도권 일극화가 빚어낸 영남권 신공항 백지화, 주민 동의조차 거치지 않은 일방적 성주 사드 배치 발표…. 대구경북은 그 어느 때보다 지방의 한계와 중앙의 독선에 아파하고, 분노했다.

이 같은 지방분권 실종의 결정적 원인은 바로 헌법에 있다. 현행 지방자치는 헌법이 아니라 법률로 위임한 것이다. 헌법상 지방자치 규정은 117조, 118조 2개 조문에 불과하며, 그나마 자치단체 종류와 지방선거, 지방의회 등의 조직 운영을 법률에 위임한다는 내용이 전부다.

이에 반해 주요 선진국은 '분권 이념'을 헌법에 명시하고 있다. 프랑스는 헌법 1조에 '국가 조직은 분권화에 기초한다'고 명문화했고, 이탈리아 등은 포괄적 지방자치권과 보충적 국가 개입을 규정했다. '대한민국은 지방분권형 국가'라는 점을 헌법에 명시하는 것, 이것이 바로 지방의 권리 찾기, 지방분권형 개헌의 출발이다.

대구경북은 전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수도권 집중에도 지방분권의 싹이 튼 곳이다. 지난 2001년 전국에서 처음으로 지방분권대구경북본부가 출범했고, 이듬해 2002년 12월 8일 당시 노무현 대통령 후보는 지방분권 공약 이행을 약속하는 '지방분권 국민협약서 서약식'을 대구에서 가졌다.

대구경북이 지방분권의 기치를 내건 지 어언 16년, 이제 대구경북이 지방분권의 방점을 찍을 때가 왔다. 대구경북 지방정부와 정치'사회'경제계 등 모든 역량을 하나로 모아 이번 개헌에서만큼은 반드시 지방분권을 명문화해야 한다. 그래야 지방도 함께 잘사는 나라의 진정한 서막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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