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시대 악습 버리지 못한 입시제도
서울대 합격자 수가 고교평가 잣대
2차모집 대학 출신인 총리도 나와
대학은 독자적으로 학생 선발해야
고려조나 조선조에는 과거라는 등용문이 열려 있어서 양가의 유능한 자제들이 그 문을 통하여 벼슬길에 올랐다. 그러나 누구나 다 응시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농군의 아들들은 김을 매고 목수의 아들들은 어려서부터 목수 일을 익히고 장돌뱅이의 아들들은 장터를 누볐을 뿐 '과거'는 그들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그림의 떡이었을 뿐이다. 민주주의라는 새로운 정치이념이 밀려들어 와 서민 대중의 아들, 딸도 정권의 정상을 차지할 수 있는 시대가 등장한 것은 어김없는 사실이다.
이 나라의 민주정치가 시작된 1948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7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는 가운데 열한 분이 경무대나 청와대의 주인이 되어 대통령이라는 직함을 가지고 역사에 남게 되었는데 그중에 이른바 '양반' 출신은 두 사람뿐이다. 나머지 아홉 사람은 모두 조상을 따진다면 전부 '야인'의 후손들이다. 이 나라 국민이면 누구나 대통령도 될 수 있고 국회의장이나 대법원장이 될 수 있는 새로운 시대가 등장한 사실은 의심할 수 없다.
그런데 옛날 등용문이던 '과거'가 자취를 감추고 새로 등장한 것이 '대학입시'이다. 이것이 고려'조선조의 '과거'를 대신하여 '벼슬길'로 가는 유일한 관문으로 국민은 착각하고 있다.
올해 대학수학능력시험에 응시한 젊은이들 대부분이 가기를 바라는 대학은 서울대학교이다. 수험생 60만 명이 다 그렇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서울대에 들어갈 성적이 못 되는 학생들이 연세대에도 가고 고려대에도 가고 성균관대에도 간다. 예외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짐작하건대 그런 '예외'는 60만 수험생 중에 의과대학 지망생 등 아주 극소수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59만7천 명 이상이 서울대에 입학하기를 바라지만 실력 미달을 자인하고 다른 대학을 선택하는 것이라고 해도 할 말은 없다.
입시를 이토록 비민주적으로 만드는 주범들은 고등학교 당국이다. 무슨 고등학교에서 올해 대학입시에 서울대에 몇 명을 합격시켰느냐가 그 고등학교 평가의 기준이 된다. 정말 웃기는 이야기다. 이건 교육이 아니라 장사다. 아이들을 훌륭한 민주적 시민으로 키울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오로지 서울대에 합격시켜서 점수를 따겠다는 욕심밖에 없다. 진학을 지도하는 교사들 중에는 학생을 향해 "네 실력으로는 ××과에 들어 가기 어려우니 좀 낮은 ○○과를 지망하라"고 알려준다니 이건 교육이 아니라 장사요 흥정이 아닌가!
내 조카 하나가 외고에 다니면서 고생하는 모습을 3년 동안 한집에 살면서 지켜볼 기회가 있었기 때문에 나는 학부모의 입장에서 솔직하게 말할 수 있다. 이런 입시 지옥을 앞으로 10년 동안 이대로 끌고나가면 10년 뒤에는 나라가 망할 거 같다. 순진한 내 조카의 고생이 말이 아니었다. 내 여동생이 대학에 입학한 제 딸보다 더 고생하는 것 같아서 안쓰럽다.
아이는 새벽에 일어나 머리를 감고야 등교한다. 오전 7시에는 학교에 가야 한다. 밤 12시 전에는 집에 오지 않는다. 그 수험생 뒤치다꺼리해야 하는 엄마는 자기 생활이란 없고 순전히 딸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고 살아야 한다. 내 조카는 그런 고생 안 하고 학교 수업만 제대로 받았어도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었다고 나는 확신한다. 대학 입학을 지옥으로 만드는 것은 서울대만을 대학으로 아는 구시대 악습을 버리지 못한 교육 제도 때문이다.
입시에 왜 '수시'가 있고 '정시'가 있어야 하는가? 대학마다 시험을 봐서 학생을 뽑으면 큰일이 난다더냐? 수능이니 내신이 하면서도 정유라는 대학에 입학시키면서 무슨 큰소리를 하는 건가! 2차 모집하는 대학을 나오고도 국무총리를 하는 사람도 있어! 1차에 안 되면 2차에 가지! 어느 대학에건 들어가서 열심히 공부만 하면 크게 될 수 있음에도 왜 계속 서울대 하나 때문에 입시 지옥을 만드는가?
한국의 모든 대학의 총장들이여, 독자적으로 학생을 모집하라! '관'에 의존하지 말라. 그리하여 서울대보다 더 훌륭한 대학을 만들어 '공부벌레' 아닌 당당한 인물들을 길러내라. 이상재, 안창호, 이승훈, 김구, 이승만 같은 인물을 배출하는 대학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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