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여의도 통신] 관료의 파워와 한계

경상북도지사와 서울시장 등을 역임한 이상배 전 한나라당 국회의원에게 어떤 직함이 듣기에 가장 좋은지를 물어본 적이 있다. "그래도 '장관님'이라는 호칭이 가장 좋다"고 했다. 그는 환경청장, 내무부 차관을 거쳐 총무처 장관을 역임한 바 있다.

장관의 파워는 막강하다. 수천 명의 직원을 거느리면서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정책을 하루에도 십여 건씩 쏟아낸다. 여기에 관련 공기업과 처와 청으로 불리는 산하기관 업무까지 포함하면 부처 수장으로서 갖는 입김은 헤아릴 수 없다.

고위 관료직은 책임도 무한하다. 이 전 의원이 도지사 재임 시절 가뭄이 들자 도청 사무실로 이불을 싸들고 와서 10여 일간 숙식하면서 단비를 기다렸다고 한다. 최근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바람 따라 떠도는 철새가 옮기는 조류인플루엔자(AI) 때문에 밤잠을 설치는 것도, 주택 문제가 언론에 나올 때마다 심장 졸이며 예의주시하는 강호인 국토교통부 장관의 자세도 이 때문이다.

관료 출신의 최고봉은 국무총리이다. 황교안 총리의 경우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안 가결로 얼떨결에 대통령직까지 수행하게 됐다. 물론 권한대행이란 꼬리표가 있으나 여권 내에서 급부상하는 모양새로 봐서 잘하면 '딱지' 따위는 떼어낼 수도 있는 기세다.

황 총리에게 대과 없이 오래 할 수 있는 비결을 물었던 적이 있다. "원칙대로 하면 된다"는 쉬운 답변이 돌아왔다.

원칙을 강조한 그의 일화가 떠올랐다. 검사 시절 경기고 동기인 노회찬 전 민주노동당 국회의원이 구속됐다는 말을 듣고 찾았다고 한다. 황 총리는 "감옥이라 힘들겠다"는 위로의 말을 전했으나, 수의를 입고 있던 노 전 의원은 "요즘 수감 환경이 많이 좋아져서 지내기 편하다"고 답했다. 이 말을 곱씹던 황 총리는 이튿날 담당자를 불러 "감옥이 편하면 죄를 짓고 온 사람들이 교화가 되겠느냐"고 화를 냈다고 한다. 친구에 대한 위로보다 '감옥이 감옥다워야 한다'는 원칙이 더 중요했던 모양이다.

외교부 직원으로 지구촌 대통령까지 오른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1일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귀국 후 20여 일 동안 '하루 1건'이란 별명이 붙을 정도로 반 전 총장의 머쓱한 일화는 계속 보도됐다. 일례로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하면서 공항철도를 타기 위해 자동발매기 앞에 섰으나 지갑에서 1만원짜리 두 장을 꺼내 있지도 않은 지폐 투입구를 찾은 것을 두고 '서민 코스프레'란 지적이 나왔다.

고위직 관료는 막강한 파워와 무한책임 때문에 각별한 의전을 받지만 이 같은 의전 때문에 서민 사회와는 더 멀어지는 것은 아닌지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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