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달해의 엔터 인사이트] '힘쎈여자 도봉순' 연기 감초들

"주연보다 잘 나가~" 특A급 조연

망가지고, 찌질하고, 육탄 공세…

여러 캐릭터 오가며 시청률 견인

언밸런스한 상황에 핵폭탄 웃음

상대역 부각시키며 극 균형 유지

미친 존재감으로 주연과 시너지

'찾는 곳' 많아 스케줄 쉴틈없어

영화와 드라마 업계에서 가장 바쁜 사람들은 단연 주연급으로 꼽히는 소위 'A급 배우'들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물론, 하정우나 황정민, 송강호 등 한 작품을 마친 후 곧장 다음 작품에 출연하는 이들은 예외라고 봐야겠지만 대부분의 '톱스타'들은 한 편을 마친 후 차기작 작업에 들어가기 전까지 공백기를 가지기도 한다. 오히려 '잘나가는 조연급 배우'들의 스케줄이 더 바쁜 편이다. 주연급 톱스타들과 달리 여러 편의 작품에 겹치기 출연이 가능하고 그만큼 '찾는 곳'이 많아서 365일 정신없는 스케줄을 소화하느라 분주하다.

오달수나 유해진 등 'A급'으로 꼽히는 '주연급 조연'들의 경우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들을 섭외하려면 꽉 짜인 스케줄을 비집고 들어갈 만한 강력한 '한 방'을 가지고 가야만 한다. 그 '한 방'이 있어도 그 틈을 뚫는 게 쉽지는 않다. 당연히 'A급 주연급 조연'들을 한 작품에 섭외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최근 특이하게도 JTBC 금토드라마 '힘쎈여자 도봉순'이 내로라하는 조연급 배우들을 한데 모아 시너지효과를 만들어내고 있는데 이런 케이스를 다시 보기도 쉽지 않을 것 같다. 톱스타보다 더 바쁘게 살아가는 '잘나가는 조연 배우'들을 살펴봤다.

◆김원해, 코믹 연기로 '힘쎈여자 도봉순' 인기 견인

시청률 10%(닐슨코리아 수도권 유료 가구 기준)를 돌파하며 큰 인기를 누리는 '힘쎈여자 도봉순'은 타이틀롤을 맡은 박보영과 상대역을 맡은 박형식 외에도 눈에 띄는 배우들이 즐비하다. 특히 존재감이 남다른 조연 배우들이 대거 캐스팅돼 눈길을 끈다. 왕년의 톱스타 심혜진이 극 중 박보영이 연기하고 있는 캐릭터 도봉순의 엄마 역을 소화하는가 하면, 임원희-김원해-유재명-김민교-전석호 등 요즘 가장 '핫'하다는 '신 스틸러'들이 총출동해 깨알같이 자기 분량을 살려낸다.

그 많은 조연 배우 중에서도 김원해의 존재감이 '갑 오브 갑'이다. 극 중 김원해는 폭력조직 백탁파의 2인자 김광복, 그리고 게임개발회사 기획개발팀 팀장 오돌뼈(오돌병) 등 1인 2역을 소화하고 있다. 극 중반부까지 조직폭력배 김광복으로 등장해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도봉순 역의 박보영에게 맞아 온몸에 큰 상처를 입은 채 복수를 꿈꾸다 매번 실패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턱이 빠지고 치아 전체를 틀니로 바꿔 음료 하나를 마실 때에도 침을 질질 흘리는가 하면, 소변 주머니까지 차고 고난도 몸 개그를 해 큰 웃음을 줬다. 앞서 드라마 '시그널'과 영화 '아수라' 등을 통해 '연기 잘하는 배우'라는 이미지를 각인시켰지만, 슬랩스틱에 가깝다고 할 정도의 몸 개그를 보여준 건 이번이 처음이다.

화룡점정은 또 다른 캐릭터 오돌뼈다. 극 중 박형식이 이끄는 게임회사 아인소프트의 기획개발팀장을 맡고 있는데 외적으로나 내적으로 동성애 취향이 뚜렷한 인물이다. 극 중반에 투입된 캐릭터인데, 짙은 눈 화장을 한 채 스키니 진과 나풀거리는 빨간 블라우스를 입고 나긋나긋하게 걸어다니는 김원해의 연기가 특히 압권이다.

자신이 좋아하던 대표 박형식의 마음을 빼앗아갔다는 이유로 박보영을 집중적으로 괴롭히려 하지만 오히려 자신이 기에 눌려버린다. 대본상의 캐릭터 설정만 보면 '성소수자를 희화화했다'는 비난을 받을 법도 하지만 김원해의 연기가 더해지니 이런 논란은 사라져버린다. 굳이 '코미디는 코미디로 봐달라'는 말을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신명 나게 웃겨버리니 더 이상 확대해석을 할 이유도, 그런 생각을 할 여유도 없다. 심지어 실제 성소수자이자 SBS 수목극 '사임당, 빛의 일기'에서 송승헌을 연모하는 인물을 연기하고 있는 홍석천이 "동성애자 캐릭터를 나보다 더 잘 소화하는 것 같다"고 평가했을 정도다.

김원해는 최근 종영한 KBS 2TV 수목극 '김과장'에서도 삶에 찌든 경리부장 추남호를 연기하며 심금을 울렸다. 동 시기에 판이한 캐릭터를 소화하면서도 어느 한쪽 아쉬울 것 없이 각 작품에 최적화된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다.

◆임원희-김민교-전석호, '도봉순'의 웃음 폭탄

'힘쎈여자 도봉순'에서 웃음을 끌어내는 주축은 폭력조직 백탁파다. 그중 임원희는 백탁파의 1인자 백탁 역을 맡아 기대에 부응하는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김원해가 두 개 캐릭터를 오가며 핵폭탄급 웃음을 안겨주고 있다면, 임원희는 특유의 묵직한 목소리와 표정 연기로 툭툭 애드리브를 날려 배꼽을 쥐게 한다. 특히 '힘쎈여자 도봉순'에서는 과거 임원희의 출세작이라 할 만한 영화 '다찌마와 리'(키치적 성격이 뚜렷했던 류승완 감독의 작품으로 디지털 단편으로 공개돼 큰 인기를 얻은 후 장편영화로 재촬영돼 공개됨)의 캐릭터 성격을 적당히 살려 당시 이 작품을 기억하고 있는 연령대 시청자들에게 반가움을 준다.

심지어 '힘쎈여자 도봉순'은 극 중 임원희의 '원 샷'에 과거 '다찌마와 리'의 포스터를 합성하며 대놓고 해당 캐릭터를 떠올리게 하기도 했다. 묵직한 저음의 목소리, 시종일관 심각한 표정, 그럼에도 이에 반하는 언밸런스한 상황이 시청자들을 웃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김민교와 전석호로 이어지는 조연들의 활약도 빼놓을 수 없다. 두 사람 모두 임원희나 김원해에 가려 빛을 발하지 못하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본인들이 맡은 캐릭터가 신의 중심에 들어오면 여지없이 재능을 과시한다.

백탁파 3인자 격인 아가리 캐릭터를 연기하고 있는 김민교는 극 중 임원희의 곁을 지키며 상대가 웃음을 끌어낼 수 있도록 판을 깔아주는 역할을 해내고 있다. 자신이 돋보이지는 못해도 임원희가 편안하게 '한 방'을 던질 수 있게 지원사격을 한다는 말이다. 전석호 역시 마찬가지다. 극 초반부에 박보영과 닭싸움을 하다 꼬리뼈가 골절되는 부상으로 한동안 병원 침대에 엎드려 엉덩이로 화면을 가득 채우며 폭소를 자아냈다. 배우가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움찔거리는 엉덩이만으로 웃음을 끌어냈으니 '코믹 연기의 신영역'을 개척한 셈이다. 황당하지만 어쨌든 사실은 사실이다. 그 외에도 '힘쎈여자 도봉순'에는 여러 배우가 카메오로 등장해 눈길을 끈다. 윤상현이 백탁파의 일원이자 그 나름 외국물 좀 먹었다고 자부하는 사기꾼 역을 맡아 모습을 보였고, 권혁수도 정체불명의 외국 스님 역을 소화하며 시청자들을 웃게 하였다. 이래저래 조연 배우들의 잔치다.

여하튼 배우가 오로지 자기 자신을 부각시키려 노력하다 보면 작품이 산으로 가게 마련이고, '때와 장소와 시간'을 정확히 아는 배우들이 서로 비중과 역할을 적절히 조절하며 함께할 때 시너지 효과가 나는 법이다. 심혜진과 유재명 등 존재감과 연기력을 갖춘 배우들이 힘을 적절히 안배하며 주연 배우들을 받쳐주는 것도 그와 같은 이유 때문이다. 어차피 모든 캐릭터가 화려하게 빛날 수는 없는 법이고 '뛰어오르지 못하고 수면 아래에서 조용히 자리 잡는 것'도 작품을 위해 조연 배우들이 해내야 할 몫이다.

영화계의 러브콜이 끊이지 않아 충무로에서 가장 바쁜 배우가 된 오달수도 '그 많은 출연작' 안에서 매번 빛나진 않았다. 유해진 역시 마찬가지다. 맡은 캐릭터를 최대한 살려내는 게 배우가 '출연료를 받는 이유'지만, 작품과 신의 성격에 따라 자신보다 상대 역을 부각시키고 작품 전체의 밸런스를 맞추는 것 역시 배우의 역할이다. '조연 전문배우'였던 오달수와 유해진은 누구보다 영민하게 자신의 '할 일'을 해내고 지금 '주연급'으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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