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어쩌랴, 엮임을!

"특검이 완전히 엮었다." "엮어도 너무 심하게 엮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올 1월, 40년 세월을 함께 보낸 최순실의 국정 농단 사건과 촛불 민심으로 탄핵의 거센 바람 앞에 놓인 등불 같을 때 언론에 한 말로 한때 세상에 회자됐다. 박 전 대통령의 엮임 주장에는 억울함이 녹아 있는 것이 분명했다.

흔히 세상 일은 이어진다고 한다. 세상 일은 갑자기 불쑥 나타나기도 하지만 실은 이런저런 까닭이 있다. 원인(因)이 없는 결과(果)는 없다는 인과의 결과다. 억울하든 그렇지 않든, 엮임은 세상살이에서 피할 수 없는 일이다. 특히 역사를 들춰보면 그런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지금 대구시내 중심가에 내걸린 'KK 창업 90주년-대구를 이끈 이장가 사람들'이라는 제목의 행사에도 그런 슬픈 역사의 엮임이 얽혀 있다. 경북광유 주유소 건물 외벽에 나붙은 7명의 흑백사진과 건물 내 전시회는 '이장가'(李庄家)라 불리는 경주 이씨의 한 집안을 대구에서 일으킨 이동진(李東珍)과 그 후손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가난한 3대 독자였지만 근검과 스스로의 노력으로 큰 재산을 일군 그의 뒤를 이은 두 아들(이일우'이시우)과 그 뒷사람들(이상악'이명득'이상정'이상화'이상백'이상오)이 지역사회와 나라에 한 여러 역할과 기여를 조명하기 위함이다. '우현서루'라는 도서관을 겸한 공부 공간을 마련해 지역사회의 계몽에 앞장서는 등 지역사회에 숱한 활동을 했음은 역사에 나와 있다.

그럼에도 이들은 뒷날 세인에 의해 오해와 비판의 대상으로 엮였다. 그 엮임에는 소위 친일 논란과 친일파 거두 박중양(朴重陽) 집안과의 얽힘이 자리 잡고 있다. 친일 논란은 이일우의 옛 행적 때문이다. 1919년 3'1만세 의거 때 친일파 거두 박중양이 만든 만세운동 방해조직인 자제단(自制團)에 이름을 올렸고, 앞서 1914년 일제의 대구부참사로, 1916년 대구부협의회 참여 등으로 일제에 엮여서다. 또 죽은 뒤에는 손자가 박중양 손녀와 부부가 되면서 세간의 입방아에 엮였다.

박 전 대통령의 엮임은 분명 자초한 듯하다. 그러나 이장가의 경우는 일제강점이라는 요인이 작용한, 다른 엮임이다. 일과 만남이 이어지는 세상살이의 어려움이 아닐 수 없다. 좋든 싫든 엮임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엮이고 얽히는 만남의 인연, 그 끈을 어쩌면 좋으랴. 그저 숙명이라고 하면 그나마 위안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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