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각과 전망] '효자 과수' 사과의 북진

사과는 우리가 쉽게 접하는 과일이다. 국내 사과를 대표하는 품종인 부사는 수확 시기가 가을이지만, 저장성이 좋아 연중 먹을 수 있다. 농가나 자치단체가 저온 저장고에 보관한 사과가 점점 뜨거워지는 날씨에 따라 요즘 마무리 출하되고 있다.

기자가 사는 대구의 한 아파트 단지에는 의성에서 과수원을 하는 농민이 매주 금요일 오전 사과를 팔러 온다. 어찌 알고, 누구 소개로 이곳에 오는지는 모르겠지만, 꽤 자리를 잘 잡은 것 같다. 매번 수십 상자를 차에 싣고 오는데 한나절에 다 팔고 떠난다.

수년째 이곳에서 사과를 사 먹으면서 사과 농사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씩 듣곤 하는데, 해가 갈수록 가격 하락과 소비 감소의 우려가 짙어지고 있다. 이 농민은 그나마 연중 판로를 잘 찾은 것으로 보여 다행이지만, 전체적으로 사과를 재배하는 농민이 위기를 맞고 있다.

재배 면적이 확대되고 농업 기술의 발달로 사과 생산량은 많이 늘어나고 있다. 여기에 수입 과일 선호에 따른 소비 감소로 사과는 가격 하락을 피할 수 없는 상태다. 이런 사정은 점점 더 악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2015년 기준 우리나라 사과 생산량의 64%를 차지하는 경상북도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사과의 주 생산지인 경북 북부 지역에서는 위기감이 돈다.

사과 농사는 평균기온과 일교차 등 날씨, 토양 요건에 따라 북진을 거듭하고 있다. '능금'으로 불린 대구 사과는 옛말이 된 지 오래다. 사과밭이 많았던 대구'경산의 금호강변에는 도시 개발에 따라 아파트 단지가 대거 자리 잡았다. 개발 안 된 곳의 사과밭은 포도'대추밭으로 바뀌었다. 현재의 기후 상황으로 볼 때 앞으로 100년 뒤 우리나라에서는 강원도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사과나무를 찾아볼 수 없을 것이란 전망이다. 그만큼 강원도의 사과 재배 면적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최전방 접경 지역인 강원도 화천군에서도 사과 재배 농가는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이를 고려해 화천군농업기술센터는 화천농업인대학에 사과재배학과를 신설하는 등 지원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그렇다고 앞으로 몇 년 사이에 경북에서 사과나무가 사라진다고는 볼 수 없다. 북부 지역 농민들에겐 사과는 여전히 돈벌이가 되는 '효자 과수'다. 북부 지역 어디를 가도 사과나무가 넘쳐난다. 전국적인 관광지인 국립공원 청송 주왕산, 국보 무량수전을 품은 영주 부석사 주변도 온통 사과밭이다. 봄날 사과밭을 물들인 하얀 꽃과 가을 빨갛게 익은 사과는 사진찍기에 좋은 관광 상품이다.

북부 지역이 사과의 주 생산지임은 통계상으로 명확하게 드러난다. 지난해 경북 지역 자치단체별 사과 생산량 1~6위는 영주시(9만9천642t), 안동시(6만9천229t), 청송군(5만9천362t), 의성군(5만7천928t), 문경시(4만4천501t), 봉화군(4만1천310t) 순이다. 모두 북부 지역이다. 대구시와 인접한 경산시는 최하위권이다. 경산시의 생산량은 115t으로 영주시의 0.12%에 불과하다.

경북 사과의 고민은 기술 개발에 따른 생산량 확대와 날씨에 따른 북진에 따라 전국적으로 사과 생산량이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데 있다. 사과의 북진을 바라보는 북부지역 농민들은 정부 차원의 선제 대책 마련을 주문하고 있다. 수요와 공급이란 시장 논리에 맡겨두면 사과 재배 농민의 피해는 불 보듯 뻔하다. 한우 사육 두수를 조절해 소고기값을 안정시키는 것처럼 과수의 북상에 따라 재배 면적을 조절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기후 변화로 재배 지역이 북상하면, 일정 기간 재배 면적은 급격하게 늘어날 수밖에 없다. 과잉 생산은 가격 하락을 불러온다. 이런 조짐이 이미 나타난 만큼 정부 차원의 인위적인 개입이 필요한 시점이다. 사과 재배 농민들도 가격 하락에 따른 홍역을 치르지 않도록 여러모로 대비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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