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통령 5명 배출한 대구경북
40년 집권 '보수 안방'으로 자리 잡아
최근 여론조사 야권 후보 강세 현상
TK 선택, 민주주의 건강성과 직결
한국 현대 정치사에서 대구경북이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하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이명박 박근혜, 무려 5명의 대통령을 배출했다. 이들의 집권기간을 합치면 모두 40년. 대한민국 헌정사 69년 중 절반 이상을 대구경북이 호령해온 셈이다. 이 과정을 거쳐 대구경북은 한국 '보수의 안방'이 돼 버렸다. 그런데 정작 '대구경북'이라 부르면 이런 정치적 의미가 선뜻 떠오르지 않는다. 대신 'TK'라고 불러야 그 정치적 실체가 묵직하게 다가온다. 그만큼 TK라는 지역명 이니셜이 지닌 정치적 함의가 크다는 얘기다.
TK라는 말이 세간의 시선을 끌게 된 것은 1987년 12월 23일 자 동아일보 칼럼이었다. 논설실장이었던 김진현이 당시 노태우 대통령 당선자에게 부치는 편지글 형식이었다. 칼럼은 당선 축하보다 TK 정치의 불편한 민낯을 아프게 지적했다. 먼저 다소 뜬금없이 "대구경북을 앞으로 TK라고 부르겠다"고 한 뒤 본격적 포문을 열었다. "직설적으로 말하면 TK 인맥과 손을 끊어 달라는 것이다. 權(권력), 金(돈), 名(명예)이 따르는 곳의 높은 자리는 으레 TK生(출신)들이 실력이 있건 없건 버티고 있다.…이제 TK 마피아는 노 정권하에서 다시 등용하지 않는다는 각오로 임하셔야 될 것이다." 박정희 이후 대구 경북이 독차지해오다시피한 정치 기득권 포기를 강하게 요구한 것이었다. 칼럼 파장은 컸다. 대통령 당선자에게 직설적 글쓰기가 생경했던 시대 상황 탓만은 아니었다. 모두가 알지만 대놓고 말하기 어려운 대목을 직격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인구에 상당히 회자됐다.
하지만 결과는 모두가 알다시피 '쇠귀에 경 읽기'. 선거 때 '보통사람'을 내세웠던 노태우는 TK의 '특별한 사람'만을 위한 길을 걸었다. 급기야 1990년엔 3당 합당으로 PK(부산경남)와 연대를 통해 TK 기득권 연장으로 치달았다. 그 언제쯤부터인가, 세상 사람들은 대구경북을 'TK'라며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한 언론인이 만든 신조어에 불과했던 TK라는 말. 그즈음부터 TK에 어두운 정치 이미지가 덧칠된 모습으로 세상에 비쳐졌다.
악순환이랄까. 이후 TK 유권자들마저 지역 정치권의 이해와 일치한, 표 몰아주기식 투표 행태를 강화했다. 지난 2012년 대선 때 박근혜의 TK 득표율은 80%를 넘었다. 직전의 이명박 역시 70% 넘는 몰표를 얻었다. 물론 지역주의적 투표 양상이 TK에만 국한된 것도 아니었다. 호남 표 결집도에 '좀 못 미친다'는 위안 섞인 푸념도 있다. 보수적 정치신념에 따른 민주정치의 소산이라는 긍정적 항변도 있었다. 하지만 매번 선거가 끝날 때마다 호남과 더불어 TK의 몰표식 투표에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곤 했다.
하지만 조기 대선을 불과 한 달 앞둔 요즘 각종 여론조사는 호남뿐 아니라 TK 민심에도 의미 있는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TK에서 안철수의 1위 독주, 문재인의 안정적 2위 확보, 지역 출신 유승민'홍준표의 의외 약세, 체념한 부동층의 투표 외면 가능성까지. 이처럼 다양한 분화에다 특히 야권후보 강세는 분명'격세지감'이다.
이런 민심 변화는 지역 출신 전직 대통령의 잘못에서 비롯된 측면이 분명 크다. TK 민심이 보수를 외면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가 그래서 나온다. 하지만 이게 전부의 이유일까. 탄핵 전후의 조사를 보면, TK의 찬성여론은 40~60%를 기록했다. 전국 평균보다는 다소 낮았다. '그래도 TK인데'를 감안하면 상전벽해(桑田碧海)이다. 최근 민심 변화 밑바탕에 TK 유권자들의 자각이 튼튼하게 자리하고 있다는 추측을 가능케 한다. "그간의 '묻지마'식 투표 행태가 대통령 파면 단초를 제공한 것 아니냐"는 자성 말이다.
물론 다양한 민심의 표출만이 민주주의 정도는 아니다. 그럼에도 TK 유권자의 자각과 정치 소신에 맞춘 투표는 대선 결과 못지않게 중요하다. 한국 헌정사를 좌지우지해온 TK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바로 한국 민주주의 건강성 회복과 직결될 수밖에 없다.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민주당 "李 유죄 판단 대법관 10명 탄핵하자"…국힘 "이성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