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른 아침에] 절망의 선택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 제2회 백만원고료 한국문학 신인상. 전 경희대 법대 겸임교수. 전 자유경제원 원장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 제2회 백만원고료 한국문학 신인상. 전 경희대 법대 겸임교수. 전 자유경제원 원장

정권 넘어가게 된 보수 목이 타

두 보수 후보는 단일화안 거부

마지막 일루의 희망조차 뺏겨

중도라고 우기는 쪽 선택 고민

보수는 목이 탄다. 막연하게 스스로를 '보수'(保守)라고 믿었던 이들이다. 다들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다. 군대 갔다 오고, 세금 꼬박꼬박 내고, 자식 크는 재미로 살았던 이 땅의 평범한 중년 이상 국민 대다수는 스스로를 '보수'라고 말한다. 보수 진보의 표 갈림이 이젠 세대 간의 전쟁이 된 것이다. 이 '보수'들 중엔 아버지대에 겪었던 전쟁의 상흔을 잘 아는 세대도 있다. 이 나라의 '보수'가 반공(反共)과 맥이 통하는 이유다. 산업화 시대에 중동의 모래바람을 경험한 이들도 많다. 먹고살기 위해, 집 한 채 장만하기 위해, 자식만은 고생시키지 않겠다면서 죽자 살자 일한 세대다. 그들은 "요즘 애들은 세상 물정을 모른다"고 탄식한다.

그런 한국의 '보수'가 지금 숨이 찬다. 박정희 시대를 거치고 전두환'노태우 정부를 거치면서 산업화와 민주화를 함께 이룬 걸 뿌듯하게 여기는 세대가 길을 잃고 있는 것이다. 어차피 '보수'는 망했고, 보수라고 칭하는 후보 둘 다 썩 마음에 들지 않는데다 당선 가능성이 낮은 것 같으니 '최악'을 버리고 '차악'(次惡)을 선택하겠다고 한다. 이념이 대중화되지 않은 탓도 있을 것이다. 서구처럼 민주주의 역사가 긴 것도 아니다. 솔직히 말해 보수주의가 무엇인지 별 관심이 없는 채 살아가는 이들이다. '막연히 자신을 보수라고 믿어온' 이 한국의 '보수'는 그래서 헤매고 있다.

박정희의 후광으로 그 딸이 대통령이 됐다. 박정희도 그 딸도 국민들에겐 당연히 '보수'였으니 적어도 명분은 있었다. 박정희 시대의 국부창출을 두고 보수주의와 목표가 같다고 해서, 박정희를 보수의 태두(泰斗)처럼 여긴 헛똑똑이들이 그렇게 만들었다. 그녀가 세종시를 밀어붙이고 국회선진화법이란 걸 통과시켜도, 그녀가 '보수'라는 확신을 아무도 거두지 않았다. 그녀 주변에는 아첨이 몸에 밴 환관들만 넘쳐났다. 대통령이 가져야 할 기본적인 지식이 없는 것 아니냐고 의심하거나, 그녀가 내놓은 생애주기별 복지제도는 급진좌파 정책으로 포퓰리즘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하면 몰매가 돌아왔다. 뭘 좀 아는 이들은 그때도 '차악이라도 찍어야 한다'는 논리로 그녀를 선택했다.

그 무렵엔 아무도 대통령 박근혜의 추락을 생각하지 못했다. 망조(亡兆)가 든 게 분명한데도 서까래가 무너질 때까지 짐작조차 못했던 것이다. 사실 최순실이니 고영태니 하는 족속들이 대통령을 끼고 벌인 국정 농단이 문제가 아니었다. 진짜 문제는 무능하기 짝이 없다는 데 있었다. 곳간은 텅텅 비었는데도 해마다 빚을 몇십조원씩 내 엉터리 복지에 퍼부으면서 나라 경제가 잘 돌아갈 것이라고 여겼다면 그게 제 정신이겠는가? 장관은 서울에 있고 서기관급 이상 간부 절반은 서울을 오르내리느라 세종시 사무실을 비웠는데 행정이 제대로 돌아가겠는가? 출근하지 않은 날이 태반인 대통령은 이미 스스로 대통령직을 포기했던 것이다.

그래선지 이 나라 '보수'들은 대통령의 파면에 무덤덤했다. 조급증이 뚝뚝 묻어나는 비문(非文)의 헌재 결정문을 언론은 제대로 분석조차 하지 않았다. 특검이 삼성특검이라는 비난을 자초할 정도로 뇌물죄에 '올인'한 여파로, 권좌에서 끌려 내려온 지 불과 20일 만에 그녀가 구속됐지만 별다른 동정 여론도 없었다. 한 푼도 받지 않았다는 직전(直前) 대통령이 수의(囚衣)를 입고 감방에 갇혔는데도 세인의 관심은 기껏 그녀가 공들이던 올림머리를 풀 수밖에 없게 됐다는 등 신분격하뿐이었다. 이쯤 되면 이 나라 보수는 그녀에게 등을 돌린 것이다. 그녀가 설사 뇌물죄 같은 파렴치 범죄 혐의를 벗더라도 누가 그녀를 '억울하게 엮었다'고 생각하겠는가? 감옥에 갇힌 때문이 아니라, 보수의 신망을 완전히 상실한 이 낯선 급전직하(急轉直下)는 세상 어느 문명국에도 없는 일이다.

그러니 이 나라 '보수'는 목이 탄다. 누가 되든 저쪽 편으로 정권은 넘어가게 됐으니, 이왕이면 중도라고 우기는 쪽을 선택하는 것이 좀 낫지 않을까 하는 '절망의 선택'을 하는 것이다. 게다가 한 분은 "보수 단일화는 의미가 없다"면서 "큰 물줄기가 흐르면 작은 물줄기는 말라버린다"며 한쪽을 집 나간 탕아 취급하고, 또 한 분은 상대방이 항소심에서 무죄를 받았지만 후보자격조차 없다면서 단일화 같은 쇼는 필요 없다고 한다. 이러니 '보수'는 마지막 일루의 희망조차 뺏긴 셈이 됐다. 자, 어쩔 것인가? 내 대답은 4년 전과 똑같다. 누가 된들 어떻겠는가? 그는 당선된 날 하루가 즐거울 뿐 5년 내내 고통 어린 나날을 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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