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사랑니 때문에 고생한 적이 있다. 매년 어느 즈음이면 한쪽이 쑤시고 아팠다. 사랑니는 내 한쪽 볼을 퉁퉁 붓게 하고 뇌신경을 타고 올라 두통까지 유발했다.
이 정도가 되면 밥도 먹을 수 없다. 아픈 쪽으론 눕지도 못하고 볼을 부여잡고서 뒹군다.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짜증이 나다가도 너무 아파 눈물까지 난다. 하지만, 사랑니의 통증은 일주일 정도 지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사라진다. 그래서 다음 통증이 올 때까지 사랑니가 자란다는 걸 잊어버리고 만다. 그렇게 매년 반복된다.
참, 사람 마음 같다. 내 몸속에 꼭 박혀 숨어 지내다가 가끔 온몸이 아프게 자기의 존재를 알리는 변덕쟁이에 심술쟁이 같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어쩔 수 없이 행복과 불행 등의 감정을 이 작은 몸속에 박아 넣는다. 그리고 그것들을 시시때때로 표출한다. 하지만, 행복은 드러내도 불행은 드러내지 않는다. 결국, 이 작은 몸속에 쌓인 감정은 응어리가 되어 하얀 이처럼 단단해진다. 그렇게 쌓인 불행은 사랑니처럼 꾹꾹 쑤셔댄다. 그럴 때마다 눈물을 보이거나 화를 내거나 괴로워하면서도 그 불행을 쉽사리 뽑아 내지 못한다. 겁이 나기 때문이다.
중요하고 예민한 신경을 지나는 사랑니를 잘못 뽑으면 위험해지듯 '불행이라는 이'를 잘못 뽑아냈다가는 행복으로 포장된 삶이 망가질까 두려워서다. 그래서 "난 괜찮아. 아프지 않아! 그 정도야 뭐!" 하며 강한 척, 아무렇지 않은 척한다. 팅팅 부어 오른 볼을 부여잡고서 말이다.
나의 덜 자란 사랑니는 이제 그 정도를 지나쳐 참을 수 없을 만큼의 통증을 가져왔다. 의사 선생님은 나의 상태를 보시더니 이 지경이 될 정도로 왜 참았느냐면서 혼내셨다. 결국, 오랫동안 나를 괴롭히던 사랑니를 뽑기로 했다.
뽑힌 사랑니 자리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사랑니의 고통이 아닌 생살을 찢어내고 베어낸 잇몸의 통증이 이번에 자리 잡았다. 마취가 풀리고 사랑니가 뽑힌 고통을 몇 배로 맛보아야 했다. 하지만, 그 고통은 하루면 충분했다. 피도 멈추었다. 밥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나자 더는 통증은 없었다.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곪았다는 걸 알면서도 참은 건 미련한 짓이었구나. 어쩔 수 없는 상황이란 건 내 생각이었다. 계속 아플 것인지, 더 이상 아프지 말 것인지, 선택하면 되는 일이었다. 기다린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뽑아내면 한동안 아픔에 식음을 전폐하더라도 다시 새살이 돋아난다. 그러니, 잘 자라지 못하는 감정은 감추지 말고 시원하게 뽑아내면 된다. 나를 위해서.
그런데 걱정이다. 왼쪽이 남았다. 이런.
그래도, 전처럼 무섭진 않다. 뽑아 봤으니깐!
댓글 많은 뉴스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5·18묘지 참배 가로막힌 한덕수 "저도 호남 사람…서로 사랑해야" 호소
민주당 "李 유죄 판단 대법관 10명 탄핵하자"…국힘 "이성 잃었다"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