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자폭 개그

흥부전에는 저 유명한 형수의 시동생 폭행 장면이 등장한다. 양식 좀 달라는 시동생을 형수가 밥주걱으로 때리고 흥부는 뺨에 묻은 밥알을 떼어먹었다는, 웃기면서 슬픈 사연이다. 배곯음을 이토록 해학적으로 묘사한 소설이 동서고금에 또 있을까. 궁상 리얼리즘의 극치다. 그런데 여기 다른 플롯이 있다.

"계세요?" 대문 두드리는 소리에 놀부 처가 물었다. "뉘시오?" "형수님! 나, 흥분돼요." "뭐라? 이런 잡놈이…." 전대미문의 시동생 구타 사건은 결국 오해에서 비롯됐다는 스토리다. "흥부인데요"라는 말을 "흥분돼요"로 잘못 알아들은 형수가 성적 모욕감을 참지 못해 주걱찌검을 했다는 것이다. 물론, 사실이 아니라 웃자고 하는 소리다.

밑도 끝도 없이 '흥분돼요' 유머를 거론한 것은 요즘 장안의 화제인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선 후보 '돼지 흥분제'(돼지 발정제) 파문 생각이 나서이다. 선거 과정에서 가혹한 검증을 누구도 피할 수 없지만, 철없던 시절 친구의 성폭행 기도를 돕기 위해 돼지 발정제를 동원했다는 고백이 엄청난 악재가 될 줄 그는 미처 몰랐을 것이다. 하긴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자서전을 통해 밝힌 내용이니 저질 네거티브라고 항변하기도 궁색한 노릇이다.

'돼지 발정제'는 '조미료 탄 사이다'와 함께 우리 사회 남성들이 성(性)에 대해 가진 대표적 미신이자 그릇된 마초이즘(남성우월주의)이다. 전문가에 따르면 돼지 발정제와 조미료 탄 사이다의 성적 흥분 효과는 없다. 요힘빈이라는 물질이 주성분인 돼지 발정제는 동물의 교감신경을 선택적으로 억제한다. 정확한 용량 계산 및 개체 민감도를 고려하지 않고 요힘빈을 투약하는 것은 돼지에게도 위험하다. 특히나 사람에게 쓰다가는 중추신경계와 심장 손상으로 사망에 이르게 할 수도 있다. 또한 조미료 탄 사이다는 그냥 맛이 이상한 사이다일 뿐이다. 돼지 발정제나 조미료 탄 사이다를 여성에게 먹여 욕심을 채워보겠다는 발상은 아무리 철없던 시절의 행동이라고 해도 용인할 수 없는 성범죄다.

대선 정국, 특히 토론회에서의 공방을 보면 웬만한 예능 프로 뺨친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는 누가 묻지 않았는데 "내가 갑철수냐?" "MB 아바타냐?"라고 뜬금없이 물어 국민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거의 자폭(自爆) 개그 수준 아닌가. 정치인 때문에 개그맨 설 자리가 줄어든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대선 토론, 흥행도 좋지만 감동이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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