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른 아침에]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뜰 뿐이다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 제2회 백만원고료 한국문학 신인상. 전 경희대 법대 겸임교수. 전 자유경제원 원장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 제2회 백만원고료 한국문학 신인상. 전 경희대 법대 겸임교수. 전 자유경제원 원장

'장미 대선'이라 불리는 대선 레이스가 막바지에 이르렀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보수가 이미 천민(賤民)처럼 내몰린 마당에 무슨 부아를 지를 일이 있나 하는 억하심정(抑何心情)이 들 것이다. 사실 대통령이 파면되고 보궐선거가 시작될 때만 하더라도 이럭저럭 승부가 될 줄 알았다. 박근혜는 끝났지만 보수는 여전히 살아있다고 믿고 싶었다. 그러나 그건 착각이었다. 보수는 뭉치지 못했고, 전투력을 회복하지도 못했다.

우선 보수 진보의 대결로 몰고 갈 어젠다가 없었고 달리 화두를 만들어낼 내공을 가진 후보가 등장하지도 않았다. 서구에서 보혁(保革) 간에 첨예하게 대립했던 복지니 민영화니 하는 어젠다는 오래전에 용도폐기(用途廢棄)됐다. 박근혜 정권 스스로 진보세력에 굴복했던 것이다. 무상급식부터 무상보육 그리고 기초연금에 이르기까지 한국 보수는 스웨덴 복지를 따라 하기 바빴다. 그게 표가 된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말로는 보수를 외친 탓에 '보편적 복지'는 한국 보수의 미덕이 됐다. 정작 복지가 절실한 빈곤층에게는 제한적인 복지만 되풀이되는 바람에 그들이 보수를 편들 까닭도 없었다.

민영화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전부터 가스공사까지 영업이익으로 은행이자를 내지 못하는 공기업이 널렸지만 보수정권은 경쟁구도를 만들 엄두를 못 냈다. 오히려 '신의 직장'으로 불릴 정도로 도덕적 해이에 빠져 있는 공기업 노조의 눈치를 살폈다. 이러니 보수와 진보가 맞붙을 어젠다가 사라졌다. TV토론회에서 기껏 '동성애를 허용할 것인가' 같은 어젠다가 화제가 된 이유다.

사실 기회는 있었다. 지난 대선처럼 보수 진보 대결이 아닌 좌우 대결로 갈 수 있을 터였다. 보수는 곧 우파이고 진보는 좌파겠지만 어차피 복지 같은 어젠다는 누가 더 진보인지 모를 판이니, 대북정책과 안보관(安保觀)으로 좌우 대결화한다면 승산이 있어 보였다. 그러나 이마저도 보수 후보들은 제대로 불을 지피지 못했다. 이른바 '송민순 회고록' 사건은 일회성 파동을 일으켰을 뿐 쉽게 가라앉았다. 왼쪽 후보들은 사드 문제도 교묘하게 피해갔다. 이미 사드 배치가 기정사실화되었기에 불씨가 쉽게 꺼졌던 것이다. 오히려 바다 건너에서 트럼프가 느닷없이 사드 비용을 내놓으라며 찬물을 끼얹는 통에 되레 보수 후보에게 불리한 어젠다가 되고 말았다.

그래도 이건 다 변명이다. 보수가 희망을 버린 진짜 이유는 문재인 대항마가 신통찮은 까닭이다. 보수는 처음엔 안철수에게 희망을 걸었다. 반기문과 황교안에게 갔던 보수는 심지어 안희정에게 몰려가기도 했다. '최악을 피하자면 차악(次惡)이라도 선택해야 한다'는 말은 그때 나왔다. 그 표심이 다음 순서로 안철수에게 향했던 것이다. 그러니 안철수를 적극 지지하는 것도 아니었고 매력을 느껴서 움직인 것도 아니었다. 문재인 지지표처럼 응집력이 있을 리 만무했다. 그래서 자신들이 차악으로 선택한 안철수가 TV토론회에서 죽을 쑤자 일제히 관망세로 돌아서거나 홍준표와 함께 죽겠다는 결기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홍준표가 치고 올라왔으나 보수 표심은 '너무 늦은 게 아닌가' 하는 우려에 싸여 있다.

문제는 또 있다. 지난 총선에서 싹을 보이던 세대 간 경쟁이 본격화한 것이다. 지금 20~40대 세대들은 희망을 잃은 세대다. 그들 대다수는 아버지 세대처럼 근면하게 일하고 저축해서 집을 장만하고 아이를 키울 자신이 없다. 실제 상황은 더 나쁘다. 사회는 이미 시스템화되어 '개천에서 용이 나는' 일은 찾아보기 어렵다. 제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계층 상승'을 이룰 수 없다면 그건 이미 희망을 잃은 사회다. 빈부격차가 절벽처럼 가로막고 있는 사회에 이제 막 참여했거나 참여할 준비를 마친 세대들은 세상을 바꾸고 싶어 한다. 그러니 보수가 기댈 곳은 50대 이상의 나이 든 세대뿐이다. 그런데 그 세대들은 박근혜 파면과 구속을 지켜보면서 도덕적 자부심을 잃은 지 오래다. 보수는 이제 무기력하고 부패한 집단으로 낙인찍힌 것이다.

그나마 보수 후보는 분열되어 있다. 범위를 좀 더 넓혀 중도 보수의 단일화라도 꾀해야 근근이 필적(匹敵)의 싸움이 될 텐데 그러기엔 넘어야 할 산이 한둘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지금 물러나면 영원히 죽는다'는 생각에 세 후보들이 사로잡혀 있다. 그래서 이제 보수는 완전히 죽었다. 특단의 일이 벌어지지 않는 한 다시 살아날 길이 없다. 이미 이 나라 보수들은 불가능한 꿈을 접을 접었다.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여주인공 스칼렛 오하라는 폐허 위에서 이렇게 외친다.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뜬다." 나는 이렇게 바꿔 외치려 한다.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뜰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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