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차재원의 새論 새評] 새 정부 성공 위한 권력의 조건 '양손잡이 정부'

부산대 졸업. 영국 엑시터 대학 국제학 석사. 전 국제신문 서울정치부장. 정의화 국회부의장 비서실장
부산대 졸업. 영국 엑시터 대학 국제학 석사. 전 국제신문 서울정치부장. 정의화 국회부의장 비서실장

왼손잡이가 발의했던 대통령 파면

오른손잡이 협력 없었다면 불가능

정치 라이벌도 과감히 내각에 기용

여소야대 文정부 '양손잡이' 되기를

15대 대선이 끝난 직후였던 1997년 12월 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나라당 당사. 안팎에선 묘한 긴장감과 함께 곤혹감이 흘렀다. 김대중(DJ) 대통령 당선자의 전격 방문 때문이었다. 정작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닷새 전 석패한 이회창 명예총재는 7층 엘리베이터 앞까지 나와 DJ를 정중히 맞았다. 이어진 환담에서도 축하와 격려가 오갔다. DJ는 IMF 외환위기 극복을 위한 초당적 협력을 당부했다. 이 명예총재 답변 역시 긍정적이었다. "할 말은 하겠지만 협조할 부분은 충분히 협조해 건전하고 민주적 야당이 되겠다." 이 말은 크게 보도됐다. 불과 1.6%포인트 차이로 승패가 갈린 대선의 후유증 우려를 불식시킬 것이란 기대 탓이었다.

그러나 여야 밀월은 곧바로 깨졌다. 김종필 총리 지명에 과반 의석의 한나라당은 거부 방침을 분명히 했다. 이에 DJ는 야당 의원 '빼가기'로 맞섰다. 정권 출범 6개월 만에 총리 인준안은 겨우 통과됐다. 하지만 여야 관계는 파탄 국면으로 치달았다. 5년 내내 정치적 대립과 충돌이 이어졌다. 국론은 분열됐고, 국민은 불안에 떨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 첫날인 10일 약속대로 야당 당사를 방문했다. "집권해도 정치보복은 없다." 선거 때 협치와 통합의 상징적 조치로 내걸었던 공약부터 이행한 것이다. 그만큼 야당과의 원만한 관계 정립이 정권 성공과 직결됨을 알고 있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자꾸 20년 전 상황이 '오버랩'되는 이유는 뭘까.

지난 6일 문 대통령의 TV광고 연설 때문이다. "통합에는 뚜렷한 원칙과 기준이 있어야 한다. 부정과 부패, 불법과 불의를 무조건 용서하는 것이 포용과 통합이라고 말할 순 없다." 통합이란 명목으로 적폐청산 문제를 적당히 타협하진 않겠다는 말이다. 그가 밝힌 기준은 "헌법과 민주주의, 원칙과 상식"이다. 문제는 야당이 쉽게 동의할 것이냐는 점이다. 선거 내내 적폐청산을 놓고 '친문패권'(안철수), '화형론'(홍준표)까지 들먹이며 강력히 반대했다.

이런 상황을 예상하기라도 했을까.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 등이 최근 소개한 '양손잡이 민주주의'는 그래서 주목할 만하다. 사회 변화와 발전은 왼손잡이 민주파와 오른손잡이 민주파의 조화에서 가능하다는 이론이다. 대표적 민주주의 이론가인 '필립 슈미터'가 정립한 개념이다. 이번 조기 대선을 가능케 한 지난가을의 촛불 정국이 단적인 사례. 실제 탄핵 발의는 민주당과 국민의당 등 왼손잡이 민주파가 했다. 하지만 그들만의 힘으론 가결이 불가능했다. 이때 당시 여당 내 비박계 의원들이 기꺼이 동참했기에 탄핵이 가능했다. 여기다 보수적 색채를 보였던 거대 언론사, 체제 지향적 헌법재판소 재판관까지 공정한 심판 대열에 참여했다. 그간 우측을 담당해온 민주파의 협력 없이는 사상 초유의 대통령 파면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앞으로 문재인정부의 개혁도 이런 상황과 크게 처지가 다르지 않다. '여소야대' 국면을 감안하면 오히려 오른손잡이 민주파와 더 적극적으로 협력해야 한다. 결국 '왼손잡이 정권'이 아닌 '양손잡이 정부'를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다. 이를 위해선 과거 사사건건 대립했던 '적과의 동침'도 각오해야 한다. 한마디로, 정치 라이벌들과 함께하는 최강의 '드림팀 정부'가 필요하다.

몇 해 전 국내에 소개된 '권력의 조건'이라는 책이 있다. 원제는 'Team of Rivals'. '정적(政敵)들로 구성된 팀'이라는 뜻이다. 자신과 싸웠던 쟁쟁한 정치 라이벌들을 내각에 받아들였던 미국 링컨 대통령의 리더십을 분석한 책이다.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던 영화 '링컨'의 원작이기도 하다. 책과 영화가 보여준 것은 남북전쟁의 승리와 노예제도 타파, 민주주의 확립까지, 링컨의 위대한 업적은 바로 포용적 리더십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대선에서 경쟁했던 상대까지 포함하는 '양손잡이 정부'는 문재인정부 성공을 위한 권력의 조건으로 필요충분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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