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광기는 신의 뜻? 신체 이상? 사회 탓?…『광기의 문명』

광기와 문명/앤드루 스컬 지음/김미선 옮김/뿌리와 이파리 펴냄

헥토르는 파트로글로스를 죽이고 그의 무구를 벗겨 자기 몸에 걸친다. 그 즉시 전쟁의 신 아레스가 그의 몸에 들어가 그의 사지는 투지로 불타올랐다. 아킬레우스는 슬픔과 헥토르에게 복수하려는 욕망에 미쳐 광란의 전투 끝에 헥토르와 일대일로 한쪽이 죽을 때까지 결투를 벌인다. 자신을 쳐부순 적을 밟고 서서도 아킬레우스의 통절한 분노는 누그러지지 않는다. 헥토르는 목숨을 구걸하는 대신 죽은 뒤 자신의 시신을 예우해달라고 청하지만, 광기에 사로잡힌 아킬레우스는 거절한다. 아킬레우스는 "그대의 소행을 생각하면 너무나 분하고 괘씸해서 손수 그대의 살을 저며 날로 먹고 싶은 심정이다"고 말하고는 헥토르의 육신을 전차 뒤에 매달아 끌고 다닌다.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에서 광기를 만나는 상황이다. 싸움 한복판에서 자제력을 잃은 이들은 그야말로 '신들린' 사람이다.

미국 사회학자 앤드루 스컬은 세상이 광기를 가진, 다시 말해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을 문명이 어떻게 정의하는지 분석했다. '광기와 문명'은 세상이 광기 어린 사람들을 어떻게 규정하고, 원인이 무엇이며, 그들을 어떻게 다뤄왔는지 40년 동안 추적해온 결과물이다. 미셸 푸코가 '광기의 역사'를 통해 중세부터 20세기까지를 다뤘다면, 이 책은 고대 히브리와 그리스'로마시대부터 21세기인 현재를 탐구한다. 이스라엘 초대 왕 사울을 비롯해 이슬람을 포함한 종교 세계의 광인들은 광기의 원인을 신의 뜻이나 악귀의 소행으로 여겼다. 고대 그리스'로마는 신체의 이상에서 광기가 비롯됐다고 했고, 중세가 되어선 다시 신, 귀신, 사탄의 탓으로 돌렸다. 신체와 생물학적 원인에서 광기가 시작됐다고 봤던 17세기를 지나, 현대에 이르러서는 생물학적 환원주의와 사회문화적 문제가 광기를 만들어내는 것으로 보고 있다.

스컬은 구약시대 히브리의 선지자들로부터 중세의 마녀, 현대의 '정신병자'를 통해 사회가 광기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설명한다. 하지만 '광인' 그 자체보다는 문명이 지향한 정상성에 주목한다. 일상을 위협하는 광인들은 점점 사회에서 격리된다. 입원할 수 있는 '종합병원'과 함께 생기면서 외면받은 자들을 모아 수용할 수 있게 됐고, 광인 병원은 중세에 들어 신앙으로 기적을 일으키는 '교회'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수용 시설이 본격화한 건 17,18세기다. 절대군주 시대 유럽은 감호소를 지어 미친 자와 도덕적으로 평판이 나쁜 자들을 대규모 시설에 감금하기 시작했다. 무능하고 가난하며 생산에 쓰일 수 없는 사람들은 사회적 재앙으로 간주했다. 당시 사람들은 감호소를 '사회적 쓰레기를 보관하는 곳' 정도로 여겼다. 그들을 가두고 관리해 돈을 버는 전문 직종이 생겨날 정도로 '대감금'의 시대가 열린 것. 20세기까지 의사들은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정신질환자를 거세하고, 뇌에 구멍을 뚫거나 전기의자에 앉히는 등 그들의 '권한'을 남용했다.

광기에 대한 이성적인 접근은 20세기 중반에야 이뤄졌다. 1950년대에 들면서 미국'영국 등에서는 약속이나 한 듯 정신병원 입원 환자 수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 시기는 현대적 약물치료가 정신질환 치료에 도입되면서 효과를 내기 시작한 때이기도 하다. 제약회사들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 신경질환에 도움이 되는 약을 쏟아냈다. 제약회사에 막대한 부를 안겨준 약물치료는 탈시설화에 기여했지만 핵심 이유는 아니었다. 수용 시설과 처우 잔인성에 대한 인도주의적 문제 제기가 잇따르면서 사회 정책적 변화를 이끌어냈다. 예컨대 미국에서는 공적부조사업을 확대하고 노인과 저소득층 의료 보장제도를 도입해 정신병원 수용 환자에게 보조금을 지급했다. 감호소나 정신병원에 갇혔던 사람들이 사회로 나오게 된 것,

이 시기에는 정상인과 정신질환자를 기계적 설문으로 구분하는 '정신질환의 진단 및 통계 편람'(DSM)도 만들어졌다. 스컬은 편람이 정신병 진단을 표준화하는데 이바지했지만 편람이 판을 거듭해 발행될 때마다 질환의 종류가 늘어나고 진단 기준이 느슨해지면서 약물치료 비용만 늘어났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정신질환을 신경병리학적 병인에 집착하는 것으로는 '광기'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없다고 한다. 그는 '생물학과 사회적인 것의 뿌연 혼합물 속 어딘가'에서 광기의 근원을 찾는다.

2013년 OECD 발표에 따르면 1991년부터 2011년까지 20년간 정신과 병상 수가 늘어난 국가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미국'영국'이탈리아 등에서 정신병원과 입원 환자 수를 정책적으로 줄인 것과 달리, 우리나라는 탈시설화가 늦은 대표적 국가다. 평균 입원 기간도 116일로, OECD 평균(27.5일)의 4배 이상이다. 정신질환 증상이 발견되고 나서 초진까지는 84주가 걸려 미국(52주), 영국(30주)과 비교하면 격차가 크다. 국내 유일의 치료감호시설인 공주치료감호소는 시설 정원의 35% 정도를 초과 수용하고 있고, 국내 정신질환자 직업재활시설은 10곳에 불과하다. 열악한 상황과 정신질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진단과 치료, 입원에 어려움을 더한다.

저자는 "광기는 여전히 근본적인 수수께끼"라고 말한다. 뇌의 구조와 기능 자체가 사회환경의 산물이기에 광기는 문명에서 인식되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인식의 역사를 통해 '다름'을 어떻게 바라보고 받아들일지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708쪽, 3만8천원.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