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광장] "나라를 나라답게 만들어 주실 거죠~"

전 MBN 앵커
전 MBN 앵커

싱그러운 초록의 녹음이 우거진 나무들 사이로 아이들이 재잘대며 걸어온다.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쉴 새 없이 하하 호호, 미소로 가득 찬 자그마한 얼굴은 흡사 천사의 모습 같기도 하고 그 웃음소리는 마음에 평화를 선사한다. 산 중턱에 위치한 초등학교에서 수업을 마치고 삼삼오오 모여 숲길 사이로 내려오는 아이들은 나무들이 뿜어내는 피톤치드를 들이 마신다. 5월의 눈부신 햇살을 받으며 산림의 쾌적한 공기로 온몸을 정화시키는 아이들을 보며, 나는 유유했던 마음을 굳혔다.

4년 전 딱 이맘때쯤이다. 당시 살던 전셋집의 계약이 만료돼 새로운 집을 찾아다니던 중이었다. 새집의 조건은 첫째도 아이가 살기 좋은 곳, 둘째도 아이가 놀기 좋은 곳이었다. 발품을 팔아 고생한 끝에 마음에 드는 환경을 갖춘 지역에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아침이면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에 잠을 깨고 주말이면 뒷산에서 아이와 함께 산책했다. 자연은 즐거움을 주는 것을 넘어 교육적으로도 훌륭한 선생님이자 커다란 교실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숲은 정서를 올바르게 길러주고 사람으로서의 성품을 우수하게 함양시켜 준다고 실제 연구 결과로도 입증됐다. 나의 유일한 육아 철학과도 맞아떨어지는 대목이다. 자연 속에서 무럭무럭 자라는 아이를 보며 역시 내 선택이 옳았음을 느꼈다.

며칠 전 대학 친구를 만났다. 오랜만에 만나 어색할 것 같던 친구와의 대화는 자녀 이야기로 금세 수다 꽃을 피웠다. 아이가 벌써 초등학교 4학년에 올라갔다는 친구는 최근 '대한민국 사교육 1번지'로 불리는 '대치동'으로 이사를 갔다고 한다. 그마저도 남들보다 뒤늦은 대치동 입성으로 요즘 걱정이 많단다. 아이의 친구들은 영어 유치원을 시작으로 토익 만점을 거의 달성했고, 국제중학교 입시를 위해 4학년부터 준비를 시작한다고 한다. 친구는 저만치 앞서나가고 있는 대치동 아이들과 평균을 맞추기 위해 마음이 조급하다며 나에게 미리미리 준비하라고 단단히 일러준다. 그리고는 아이를 학원에 데려다 줄 시간이라며 급히 자리를 떴다.

"국가가 교육을 완전히 책임지는 시대를 만들겠습니다. 사교육 걱정 없는 국가를 만들겠습니다." 이번 대선 때 각 당의 후보들은 저마다 대한민국의 교육을 개조할 적임자는 본인이라며 유세를 펼쳤다. 하루 만에 흔들린 나의 육아 신념을 다잡기 위해 그들의 국정 운영 철학과 교육 정책들을 꼼꼼히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내 아이를 대치동 콘크리트 건물 속이 아닌 자연이 주는 가르침 안에서 키워나가기 위해선 엄마인 내가 나서서 비교하고 따져보지 않을 수 없다. 교육의 빈부 격차로부터 탄생한 '강남신화', '대치동 불패'는 더 나아가 분열된 사회를 만든다. 양극화된 사회를 하나로 만들기 위해서도 균등한 교육이 그 출발점이 돼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잊지 말고 기억하자. 가시밭에서 꽃을 피운 '장미 대통령'은 '정유라의 이대 부정입학' 사건으로 시작됐다. '교육 적폐'로 대표될 정유라 사건은 대다수 부모를 원망의 대상으로 만들었다. 돈이 없는 사람을 곧 무능력한 사람으로 내몰아 각자의 위치에서 성실하게 살아가는 이들을 끝없이 좌절하게 만들었다. 절망에 빠진 대한민국을 희망으로 재건하기 위해서는 무너진 교육 사다리를 다시 세우고 모든 교육 입시를 투명하고 공정하게 진행해야 한다. 교육개혁을 국민이 결정하도록 대통령 직속으로 국가교육회의를 설치하고 학부모, 학생, 교사가 함께하는 교육주권시대를 열겠다는 약속도 꼭 지켜져야 한다.

흔들리지 않겠다. 새로 출범한 '장미 정부'의 교육 정책을 믿고 나의 소신대로 아이를 국가에 맡기겠다. 탄탄한 공교육의 틀 안에서 올바른 인성을 가진 아이로 자연을 벗 삼아 푸르게 키우겠다. 유세 현장에서의 당신 외침을 이제 반대로 돌려 드린다. "나라를 나라답게 만들어 주실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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