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이순목 우방 회장이 세상을 떠난 지 5년 만에 그를 기리는 기념관이 19일 개관했다. 생전에 이 회장의 삶의 철학과 그 실천정신을 본받아 따르던 사람들이 뜻을 모았다. "회장님의 남달랐던 사회적 가르침을 이대로 세월 속에 묻어버릴 수 없다"면서 "소박하지만 단정한 기념관을 마련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그가 교단에 섰던 옛 대구상고의 제자, 전 우방 임직원, 구미대 및 정화 교직원들 가운데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과 생전의 오랜 친구들이 앞장섰다.
이들은 우리 주거 문화를 획기적으로 진화시킨 국내 주택건설업계의 빛나던 리더이자 기업시민정신이 투철했던 경제인으로서, 미래 세대에 대한 사랑과 책임감이 남달랐던 교육자로서, 또한 어렵고 힘든 이웃들의 든든한 친구로서 한평생을 올곧고 뜨겁게 살아온 그를 잊지 못한다는 것이다.
특히 이들이 기억하는 이 회장은 '사랑으로 사는 사람들'이라는 독특한 이름으로 이 나라 기업 자원봉사운동에 남 먼저 앞장선 참 어질고 선한 지도자였다. 가난한 이웃이나 배고픈 아이들을 위해선 남모르게 더운 마음을 베풀어왔다. 게다가 "몸이 불편한 이웃을 위해선 몸 성한 사람들이 먼저 양보하고 배려해야 한다"고 늘 강조했다. 그뿐만 아니라 시각장애인들의 읽을거리를 위해 정기적으로 점자 책을 펴낼 정도로 섬세한 사회복지 마인드를 발휘했다. 열악한 지역 경제 환경 속에서 지쳐 있던 문화예술인들은 기회 있을 때마다 이 회장이 용기와 힘이 되어준 걸 고맙게 기억한다. 또한 이 회장은 5월 가정의 달을 앞두고 "소년소녀가장들에게 나눠줄 예쁜 동시집을 만들자. 넉넉하게 10만 권쯤 찍자"면서 통 크게 베풀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을 위해서는 늘 인색했다. 비서실 직원에게 낡은 구두를 벗어주면서 "밑창만 갈아오면 아직 새 구두"라고 했을 정도다.
회사 경영에 밤낮없이 바빴지만, 방학 때면 임직원 자녀들에게 건강하고 알찬 방학을 보내라는 자상한 편지도 띄웠다. 게다가 산수가 빼어난 전통마을에 '효도캠프'를 열어놓고 인성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사람답게 사는 길'을 일러주던 '참스승' 같은 경영인이었다. 그런 이 회장이었기에 '전국자원봉사대축제'에서 최우수상을 받아온 우방 직원들을 불러놓고 "이 세상에서 가장 값지고 귀한 상을 받았다"며 두 손 맞잡고 둘러서서 그렇게도 좋아했던 것이다.
이처럼 살갑고 순박했던 이 회장을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망치 회장'으로 기억한다. 그의 승용차 뒤 트렁크에는 늘 흙 묻은 쇠망치가 실려 있었다. 아파트 건설현장 순시 때면 어김없이 그 쇠망치를 들고 나타났다. 조금이라도 부실해 보이는 부분이 눈에 띄면 거침없이 두들겨 부숴 버렸던 것이다. 눈가림식 땜질 보수가 아니라 '완벽한 시공'을 상징하던 이 쇠망치는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어 '망치 회장'으로 소문났다. 이 회장이 이렇듯 매우 남다른 열정으로 우방을 이끌어 왔지만, 1997년 10월에 몰아친 IMF라는 국가 경제 위기는 우방도 피해갈 수 없었다. 최종 부도가 났다. 그러자 지역의 종교계, 대학 총장, 언론사 대표, 문화예술계, 시민단체 등 사회 각계각층의 대표적 지도자 40여 명이 앞다퉈 나섰다. '우방살리기 시민운동본부'를 결성했다. 운동본부는 '우방살리기 100만인 서명운동' 등의 갖은 몸부림으로 법정관리 본인가를 받는 데 힘을 보탰다.
이런 내용들이 두루 담긴 기념관이 문을 연다. 기념관치고 그 규모는 무척 작다. 더 넓고 화려하게 꾸미면 '이순목 정신'에 어긋난다며 구미대 본관 창고로 사용하던 곳에 마련했다. 이곳에 오면 이 회장의 그 선한 얼굴, 안온한 미소, 후덕했던 인품, 불 같은 열정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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