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정생의 문학과 사상/ 엄혜숙 지음/ 소평출판 펴냄
"크리스천 권정생의 신앙이 기독교 실존주의에서 기독교 아나키즘 그리고 생태 아나키즘으로 변모했다는 것을 처음으로 밝혀냈습니다." 동화작가 권정생의 타계 10주기를 맞아 그의 문학세계와 삶의 궤적을 살핀 연구서 '권정생의 문학과 사상'이 출간됐다. 아동문학가 엄혜숙 씨는 권정생의 전 생애 작품 분석을 통해 그의 문학을 관통하는 핵심코드가 '죽음'이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물론 그 죽음의 의미는 일반적인 개념의 '사망'이 아니라 '초월적인 죽음의 경지'를 말한다. 권정생 선생이 세상을 떠나고 10년이 흘렀다. 그가 남긴 문학과 정신은 어떻게 꽃을 피우고 결실을 맺었을까.
◆권정생 문학의 핵심코드는 '죽음'=저자는 권정생 문학 분석을 위해 초기(강아지똥, 떠내려간 흙먼지 아이들 등), 중기(몽실언니, 한티재 하늘), 후기(밥데기 죽데기, 랑랑별 때때롱)로 구분하고 있다. 대학원생 시절 저자는 '권 선생의 작품 뒤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는 한 교수의 조언을 듣고 연구에 뛰어들었다고 밝히고 있다. 모든 작품에서 복선(伏線)이나 은유든 표현 기교는 다르지만 '우울한 그림자'를 행간에 드리우고 있다는 것이다.
극빈 속에서 폐결핵, 늑막염 등을 앓았던 권정생은 죽음을 가까이 두고 있었다. 결과 그의 문학 속에서 '죽음'은 삶을 위협하는 존재에서 전쟁과 질병'장애로 묘사되고 후기 판타지 동화에는 삶을 위협하는 자본과 권력의 모습으로 확장되고 변주돼 갔다.
평론가들은 권정생 문학의 백미를 사실성을 부여받은 '풍요로운 서사성'이라고 말한다. 작품 속엔 어머니의 비애에 젖은 타령과 고통스러운 죽음의 체험이 녹아 있고, 또 삶 속에서 그가 접했던 다양한 의성어와 의태어, 사투리가 구술과 문자를 통해 텍스트로 흘러들었던 것이다.
◆기독교적 실존'아나키즘 짙게 깔려=권정생 문학의 중심에는 예수와 성경이 있다. 그가 1968년부터 안동 일직교회에서 종지기 생활을 했을 정도로 신앙은 생활 일부였고 지탱해주던 영혼의 안식처였다.
저자는 권정생의 문학 작품을 초기(1969~1980), 중기(1981~1990), 후기(1991~2007) 세 단계로 나누어 죽음이라는 단일 테마가 종교적 세계관 속에서 어떻게 변화, 발전하는지를 탐구했다. '강아지똥'을 비롯한 단편동화를 주로 썼던 초기에는 기독교 실존주의에 경도되었고, 소설을 많이 썼던 중기에는 단락마다 기독교 아나키즘이 짙게 깔리고 있다. 1991년 이후 판타지 작품에 주력했던 후기에는 생태 무정부주의로 나아갔다는 것이 지은이의 판단이다. 저자는 "그의 작품에서 죽음은 삶을 억압하는 모습으로 나타나지만 역설적이게도 죽음을 극복하는 것 역시 죽음이었다"며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내주며 타인에게 새로운 생명을 가능하게 하는 권정생의 죽음에는 '희생양 예수의 죽음'이 음각 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타계 10주년 맞아 다양한 추모행사=권정생 문학은 삶과 죽음이라는 실존적 화두로부터 출발한 문제의식을 사회와 역사의 지평으로 확대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 기존의 아동문학의 관습적 틀을 훌쩍 뛰어넘어 전근대, 근대적 양식과 현실, 판타지의 경계를 넘나들며 '아동 대(對) 어른'이라는 인식과 사상의 벽을 허물어뜨렸다.
권정생 선생 타계 10주기를 맞아 추모열기도 뜨겁다. 17일(수) 안동 '권정생동화나라'에서는 추모식을 열고 선생의 어린이 사랑과 문학정신을 되새기는 행사를 가졌다.
그를 기리는 서적도 잇따라 출간됐다. '복사꽃 외딴집'은 권정생이 잡지에 발표했던 동화 가운데 단행본으로 출간된 적이 없는 작품을 모은 책이다. 권정생이 1988년 발표한 '빼떼기'도 그림책으로 재탄생됐고, 똘배어린이문학회는 추모글을 담은 '그리운 권정생 선생님'을 엮어냈다.
378쪽, 2만3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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