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민아의 세상을 비추는 스크린] 용순

소녀의 첫사랑 통과의례 일까

정감 넘치는 구수한 사투리

소도시 풍경 정겨움 더해

신인 이수경 연기력 돋보여

방황하는 소녀들에 위로 선물

영화의 각본과 연출을 맡은 신예감독 신준의 장편 데뷔작으로, '용순, 18번째 여름'이라는 단편에서 장편으로 확대되었다. 이 영화는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대명컬처웨이브상을 수상한 기대작이다. 젊은 감독과 풋풋한 신인배우들, 독립영화계에서 관록을 쌓아온 중견배우들의 신구 조화가 소박하면서도 정갈하게 다가온다.

잊지 못하는 첫사랑을 따라 집을 나간 엄마는 3개월 만에 시신으로 돌아오고, 어린 용순은 아빠와 둘이 충청도 어느 소도시에서 살아간다. 그러나 사이좋은 아빠와 딸에서 점차 서로 거칠게 공격하는 사이로 변해버렸다. 어느덧 열여덟 여고생이 된 용순(이수경)에게 이제껏 살아오면서 가장 큰 행복과 가장 큰 불행을 동시에 맛보게 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용순은 육상부 담당 체육 선생(박근록)을 사랑한다. 하지만, 체육 선생에게 왠지 다른 여자가 생긴 것 같다.엄마 같은 친구 문희(장햇살)와 원수 같은 친구 빡큐(김동영)가 합심해서 뒤를 캐보지만 도통 실마리가 잡히지 않는다. 설상가상으로 아빠(최덕문)는 엄마 없는 딸을 위한답시고 몽골에서 새엄마를 데리고 온다.

반항과 불만으로 가득한 용순의 주위를 둘러싼 인물들은 용순을 더욱 괴롭게 한다. 만나면 티격태격하는 아빠, 언제 도망갈지 몰라 의심의 시선을 거둘 수 없는 새엄마, 자신의 순정을 몰라주는 체육 선생, 라이벌이라기에는 너무 완벽해서 얄미운 담임선생, 쓸데없는 사랑의 시로 부담을 주기나 하는 남성 친구, 도움은 주지 못할망정 일을 그르치는 베스트프렌드.

유난히 더운 열여덟 번째 여름은 용순에게 아주 특별했다. 떠나는 엄마를 붙잡지 못했던 후회는 첫사랑에 더욱 집착하게 한다. 다시는 후회할 일 만들지 않으리라는 여고생의 당돌한 결심은 일을 극단적으로 몰고 간다.

달리기와 사랑, 두 가지를 향해 맹렬하게 질주하는 용순은 심리적, 육체적으로 고통을 겪는다. 첫사랑의 열병은 결국 한여름처럼 지나가버릴 것이다. 영화는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 겪게 될 통과의례로서의 첫사랑의 뜨거움을 절절히 느끼게 해준다.

영화는 웃기고, 또 아프다. 다시는 소중한 것을 잃지 않겠다는 뜨거운 결심으로 인해 용순은 학생의 선을 넘는 일을 행한다. 그리하여 영화는 말랑말랑하고 사랑스러운 청소년영화의 한계를 넘어서서 짜릿한 순간들을 자주 보여준다. 얌전한 영화가 아니다. 에너지가 넘치는 뜨거운 영화이다. 영화는 10대 학생의 진짜 삶과 내면을 담은 리얼리즘 성장영화로서의 정체성을 분명히 한다.

정감 넘치는 구수한 사투리 대사들은 감칠맛이 나며, 지방 소도시 풍경은 화려하진 않지만 정겹다.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잔인한 가족 같지만 돌이켜보면 서로를 소중하게 여긴 선택이었음을 알게 된다.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 누구나 경험했음 직한 사건들을 밀도 있게 연결하여, 저예산영화다운 싱그러움과 풋풋함이 스크린 위에 묻어난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거친 10대 일진 소녀로 잠깐 출연하면서도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신인배우 이수경은 '용순'에서 주연을 맡아 영화 전체를 끌어간다. 용순이 첫사랑에 집착하는 것은 어린 시절 느꼈던 상실감에 대한 보상일 것이다. 첫사랑의 대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인생에서 무엇 하나는 성취하고픈 열정 가득한 10대 소녀의 도전정신이 그녀를 행동하게 한다. 질주하고, 물에 뛰어들고, 비를 맞고, 피를 보며 소녀는 성장한다. 악한 이가 없이 모든 이들이 선의를 품고 있음이 하나씩 밝혀지며, 삭막한 소녀의 가슴이 온기로 따뜻해진다.

좋은 여성 성장영화이다. 사랑의 열병을 앓는 수많은 소녀, 결핍감에 상처 입은 수많은 아이, 소도시에 사는 수많은 용순들을 위한 위로의 영화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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