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리·손자가 인터뷰 도와
고조부 때부터 이어온 가업
옹기 짓는 일 숙명으로 생각
지금은 아들·손자에 물려줘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상주 옹기 보유자 정학봉 옹은 1930년생이었다. '집에서 대접하는 나이', 경상도 사투리로 '집에(서의) 나이'로는 92세였다. 호적에 늦게 올라 그마저도 4년을 더 보태야 했다. 그는 잘 듣지 못했다. 그렇다고 태생적으로 표현에 능숙하지도 않았다고 했다. 눅눅한 기운 가득한 작업실에 어렵사리 그가 걸음을 했다. 인터뷰를 위해 며느리 김영란 씨와 손자 정창준 씨가 함께했다. 아마도 생의 마지막 인터뷰가 될 것이라고 했다. 괄호 안은 그들의 보충 설명이다.
-2007년 무형문화재 보유자가 됐는데 요즘도 옹기를 만드십니까?
▶안 합니다.(2009년부터 서서히 손을 놨다. 오토바이 타고 논에 가서 1시간 정도 살피다 오는 걸 소일 삼고 있다. 아마도 부지런히 많이 돌아다니신 게 몸에 붙어버린 것 같다. 옛날 옹기장이들은 나무가 많이 있는 곳으로 옮겨 다녔다.)
-옹기는 어떤 의미입니까?
▶먹고살려고.(그에게 옹기는 집안의 일이었다. 고조부 때부터 시작된 가업이었다. 고조부부터 조부 때까지는 상주, 보은 등지의 옹기공장에서 일을 하다가 정 옹의 부친이 '조각장' 칭호를 받으면서 이곳에 자리 잡았다.)
-다른 길을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습니까?
▶팔자라고 생각합니다.(옹기 만드는 것 외에 다른 것을 생각해 볼 겨를이 없었다고 하셨다. 타고난 효자였다고 들었다. 부모님 말을 거역하지 않았을 것이다. 옹기 짓는 일을 더더욱 숙명으로 받아들이셨을 거다.)
-습관 같은 건 없었습니까?
▶(식사를 규칙적으로 하셨다. 아무리 그 일이 재미있더라도 모든 일의 근원은 체력 아니겠나.)
-자녀들한테 많이 해준 말이 뭐였습니까?
▶(부지런히 연습해라. 실패하는 건 당연하다. 옹기를 굽는 족족 잘 나오면 뭔 걱정이 있겠나. 그러니 부지런히 하라. 기초가 잘못되면, 그러니까 흙이 시원찮으면 옹기를 제대로 못 만든다.)
이들이 살고 있는 곳은 상주시 이안면 공검이안길이다. 행정구역으로는 상주지만 충주, 문경이 멀지 않다. 북쪽 저 멀리까지도 산이 보인다. 첩첩산중이다. 남쪽으로는 뻥 뚫려 논이 이어져 있었다.
옹기를 구워야 하니 나무가 넉넉한 곳에 자리를 잡아야 했을 거라고 자손들은 짐작했다. 정 옹과 아들 정대희, 손자 창준 씨가 옹기를 업(業)으로 삼은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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