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침체와 정부의 부동산 규제강화로 꽁꽁 얼어붙은 전국 부동산 경기 못잖게 포항도 잔뜩 웅크린 형세다. 아파트 물량은 쏟아지는 데 비해 거래는 한산하기 그지없어 실입주가 얼마나 될지 미지수다. 인구도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어 이 같은 추세가 계속되면 주택경기 불황이 장기화할 것이라는 우려 섞인 전망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아파트와 달리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빈 땅의 값어치는 상대적으로 높게 평가받고 있어 눈길을 끈다. 업계는 주택경기가 경직되자 투자 명목의 자금이 땅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보고 있다.
◆쏟아지는 분양물량, 입주는 글쎄?
지난 2015년부터 포항지역에 아파트 분양이 잇따르고 있지만 과연 실계약으로 연결될지에 대해 부동산업계는 비관적이다. 내년에 포항지역에 9천800여 가구를 시작으로 2020년까지 5천여 가구가 추가로 입주 대기 중일 만큼 물량이 넘쳐난다. 이런 상황에서 실계약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지역 건설경기에 악영향을 끼칠 것으로 우려된다.
포항지역은 지난해 10월 미분양관리지역에 포함되면서 공급과잉 문제가 제기됐다. 분양이 안 되는데도 밀어내기식 분양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우건설이 포항시 북구 장성동에 1천500가구 규모의 장성 푸르지오를 분양했고, SK건설도 두호동에 1천300여 가구를 분양하는 등 대규모 분양이 이어졌다. 올 들어서만 모두 4천여 가구가 분양됐다. 3.3㎡당 분양가도 900만원대에 육박했다. 분양은 일단 끝났지만 실계약은 계속 진행형이다. 만약 실계약이 차질을 빚을 경우 미입주 사태로 인한 매매가 하락에다 기존 주택의 가격에도 연쇄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새 아파트로 집을 옮기고 싶어도 기존 집이 팔리지 않아 잔금을 못 치르면 이사를 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회사원 A(49) 씨는 "새로 분양받은 아파트로 입주해야 하지만 지금 살고 있는 집이 팔리지 않아 이사를 못하고 있다"면서 "가만히 앉아 은행 대출이자만 물다 보니 가계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고 했다.
◆포항지역 주택경기 흐름은 '먹구름'
최근 10년 사이 급성장한 북구 양덕동은 현재 인구 7만 명을 넘어서며 포항의 부동산 경기를 이끌었다. 대단지 아파트가 잇따라 들어섰고, 인구가 늘자 음식점'커피숍'대형마트'주점 등이 빈 공터를 가득 메웠다.
아파트 가격이 해마다 오르는 상황에서도 거래는 활발히 이뤄졌다. 당연히 외부 자본이 유입됐다. 이들은 아파트 2, 3채를 전'월세로 돌리거나, 신규 아파트 분양권을 비싼 가격에 되팔아 이윤을 남기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해 상반기부터 거래가 급격히 줄어들면서 벌써 옛말이 돼버렸다. 특히 지난해는 포항 전체 인구도 정점을 찍었던 2015년 52만4천여 명보다 5천여 명이 줄어 8년 전 인구인 51만여 명대로 회귀했다.
덩달아 포항 부동산 경기도 곤두박질쳤다.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북구는 현재 실거주를 희망하는 사람만 거래를 하고, 투자자의 발길은 뚝 끊겼다. 북구 양덕동 아파트 대단지인 남광'삼성'풍림'삼구1차'대림e편한세상 등은 지난해 비슷한 시기에 비해 거래가도 3천만~5천만원이 떨어졌다. 게다가 계약 때는 최소 500만원 이상 더 깎아줘야 매매가 성사되는 실정이다.
북구 흥해읍에 들어선 초곡도시개발구역 등 개발이 한창인 지역도 직격탄을 맞고 있다. 애초 포항KTX 역사와 가까운 점 등 눈여겨보는 투자자 및 실거주 희망자의 상담요청이 많았지만, 최근 들어서는 관련 문의조차 자취를 감췄다. 게다가 기존에 투자 목적으로 분양권을 취득한 이들도 웃돈을 얹어 파는 '프리미엄'을 포기하고 분양가로 내놓거나, 분양가보다 저렴한 마이너스 프리미엄에라도 분양권을 넘길 수 있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남구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내년도 아파트 예상 공급 물량 탓에 선뜻 매수를 희망하는 이들은 없고, 급매물만 팔린다. 공인중개사 B(55) 씨는 "시세보다 2천만원 싸게 내놓았는데도 사려는 사람들은 더 깎아 달라고 한다. 그나마 가격협의가 이뤄져 거래가 성사되면 다행인데, 요즘 들어선 거래가 거의 없다"고 했다.
◆주택경기 경직에 땅으로 눈 돌리는 투자자들
주택경기가 추락하는 반면, 최근 들어 포항 도심지역의 나대지는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부동산 업계에선 "없어서 못 판다"는 말이 나돌 정도다. 남구 이동'효자동'오천읍이나 북구 양덕동 등 인구 밀집지역에선 나대지값이 대폭 뛰었다. 이동만 해도 빈 땅은 장소를 막론하고 3.3㎡당 100만~150만원씩 뛰었다.
퇴직자나 건축업자'외부 자본이 주택 투자로는 수익을 내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되자 나대지로 눈을 돌렸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공인중개사무소를 찾는 퇴직자 대부분은 3층 이상 건물을 지어 1'2층은 상가, 3층은 주택으로 활용하고자 나대지를 구입하고 있다. 건축업자나 외부 자본은 건물을 지어 되파는 것으로 수익을 낸다. 이들은 건물 매매가 단기간에 이뤄지지 않지만 '어차피 오를 수밖에 없다'는 심리에 장기투자를 내다보고 있다.
형산강변 일대 효자동 나대지에 최근 신축 건물이 잇따라 들어섰으며, 송도 바닷가나 여남동 바닷가 나대지나 폐건물도 거래가 활발히 이뤄지면서 못 보던 건물이나 음식점 등이 가득 차고 있다.
남구 B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지금은 아파트를 소유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은행 금리는 터무니없이 낮고, 다른 수익형 투자는 찾기 어렵다. 나대지만이 수익이 나기 때문에 너도나도 땅을 사 건물을 짓는 상황"이라고 했다.
◆수요'공급 적절할 수 있도록 정책 펴야
부동산 업계는 부동산 불황 타개책이 결국에는 '인구 유입'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아파트 공급물량과 수요자인 인구 수가 적절한 균형을 이뤄야만 부동산 경기를 흔들 불안요소도 크게 작용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 이를 위해선 인구 증감에 따른 아파트 신축 허가나 규제 등이 필요하다고 업계는 입을 모았다. 남구 B공인중개사무소는 "인구가 늘어났다는 지자체 발표나 인구 유입과 관련한 긍정적 전망이 나오면 증가분에 대한 고민 없이 고삐가 풀린 것처럼 대규모 아파트 단지 건설이 급격히 늘어난다. 최근 5년 동안도 그렇다 보니 지금의 상황을 맞게 됐고, 피해자들이 나오는 셈"이라며 "인구가 늘어날 때 적절한 규제로 공급과잉을 예방하면 불안요인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일관성 있는 정부 정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다. 공인중개사 C씨는 "문재인 정부가 서울, 세종, 대구 수성, 부산 등 지역을 투기과열지구로 지정해 관리에 들어가면서 주변 지역 부동산 경기도 얼어붙었다. 처음에는 이 지역에 몰리던 자금이 인근 지역으로 흘러드는 '풍선효과'를 기대했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며 "정부 정책이 어제 이랬다가 오늘 달라지니 움직이지 않는 것으로 판단된다. 일관성이 있다면 부동산 경기가 지금처럼 널뛰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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