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전문 분야가 아닌 비전문 분야에서 서툴지만 정성껏 무엇인가를 생산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손으로 벌레를 잡고, 직접 천연농약을 만들어 사용하는 텃밭농부도 한 예다.
자기 전문 분야의 일을 통해 효율적으로 돈을 벌고, 그 돈으로 채소를 구입하는 대신, 직접 농사를 지음으로써 불편과 비효율을 생활의 일부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그들은 왜 대량생산과 전문화의 편리함과 효율을 일부러 외면하고, 생산성이 낮고 불편한 방식을 생활로 끌어들이는 것일까. 책의 '서문'은 지은이가 말하려는 바를 함축하고 있다.
'내 어린 시절 우리 마을에는 요즘처럼 축산을 전문으로 하는 집이 없었다. 집집마다 돼지와 소 한두 마리, 닭 대여섯 마리를 키웠다. 어떤 집에서 잔치나 제사를 위해 돼지나 소를 잡으면 온 동네 사람들이 나누어 먹었다. 까닭에 우리는 돼지고기를 먹고 싶은 날 먹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집에서 돼지를 잡는 날 먹었다. 겨울에도 여름 과일을 먹을 수 있는 요즘과 달리 봄채소는 봄에, 여름 과일은 여름에 먹었다.
돼지고기 국이 저녁 밥상에 올라오는 날이면, 나는 그날 누구네 돼지가 삶을 마감했는지 알았다. 동네 사람들이 무슨 일로 돼지를 잡았으며, 돼지를 잡는 데 어떤 아저씨들이 수고했는지도 알았다.
돼지고기 국을 앞에 놓고 나는 한 생명의 탄생과 죽음, 여러 사람의 수고와 아침저녁으로 돼지죽을 날랐던 소년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러나 나보다 훨씬 자주 돼지고기를 먹는 내 아들은 그런 호사를 누리지는 못한다. 내 아들에게 돼지고기는 엄마가 돈을 지불하고 마트에서 구입한 상품일 뿐이다.
나는 내 아들이 돼지고기를 먹을 때마다 깊은 상념에 잠겨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전거를 타면서 자전거 공장 노동자의 피로한 얼굴을 떠올려야 한다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겨울에 여름 과일을 먹는 것이 죄악이라고 말하려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 모든 과정이 '내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무(無)가 되어서는 안 된다.' -서문- 중에서.
이 책은 대량생산과 대량소비, 전문화 덕분에 인류가 풍요를 누릴 수 있게 됐음에 감사하는 한편, 그로 인해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아파트 주차면 일부를 텃밭으로 조성한 대구 침산동 화성 2차 아파트, 대구시 수성구청이 운영하는 장애인 행복텃밭, 부모들이 자녀교육에 깊이 참여하는 수성구 시지의 '씩씩한 어린이 집', 서울시 도봉노인복지관이 시행하는 '꿈에 Green(그린) 텃밭' 등은 편리와 효율을 일부러 외면하고 불편과 비효율을 생활로 끌어들인 사례다. 불편과 비효율을 통해 그들은 잃어버린 미덕을 되찾고 있다.
244쪽, 1만2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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