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통증의 기억

나는 비교적 다양한 운동을 즐기는 편이다. 여름엔 서핑을 하러 국내뿐 아니라 외국의 바다까지 찾아다니고 최근엔 냉장고만 한 철봉기구를 집에다 구입했다. 매일 어깨, 가슴 등 근육운동을 한다. 지금은 이렇게 운동에 열심이지만, 어릴 적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남들보다 큰 키와 체격 덕분에 배구선수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지만, 동시에 '아직 덜 여물었다'며 체력 보강을 권유받았다. 어쩌면 그때, 그런 지적 때문에 지금까지 운동을 규칙적으로 하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부터 허리가 심하게 아프기 시작했다. 지난해부터 준비하던 자격증 시험공부에 책상 앞에 오래 앉아있었던 탓인지, 아니면 처음으로 내 이름을 달고 나가는 글쓰기에 신경을 써서인지 모르겠지만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된 통증이 예사롭지 않다. 허리와 배, 근육에 힘이 잔뜩 들어가는 게 조금이라도 부주의하면 허리가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아, 이전의 요통 기억과 함께 혹 큰 문제가 생기진 않을지 덜컥 겁이 났다. 첫 요통은 논산에서 기초 군사훈련을 받을 때였다. 당시 옆 훈련병이 신경외과 전문의였고, 또 그 옆의 훈련병은 재활의학과 전문의여서 훈련받는 내내 그들의 세심한 관리를 받는 특혜를 누렸다. 그렇게 논산의 인연을 맺은 지 3년이 지났건만, 지금도 술자리를 할 때마다 허리는 괜찮으냐고 확인하곤 한다. 우리 몸은 통증을 기억하고 있기에 작은 신호가 와도 큰 증상으로 느낄 수 있다는 설명을 덧붙인다.

학생 시절 우리 몸의 기억력이 비단 뇌에서만 비롯되지 않는다는 한 교수의 강의가 생각난다. 우리의 몸은 모두 기억력이 있단다. 예를 들어, 골격근육의 기억력이 좋은 사람이 운동 중 특정 동작을 하면, 그때 쓰였던 근육들이 그걸 잘 기억했다가 곧잘 반복한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을 흔히 운동신경이 좋다고 말한다. 해부학적으로 뇌 이외에 기억하는 세포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환자들이 익숙하게 하는 행동이나 습관 또는 호불호(好不好) 등이 모두 몸이 기억하기 때문이라 이해하고 응대하라는 원로교수의 당부였던 것 같다.

가끔 아무 증상이 없어도 미리 약을 처방받고 싶어 하는 분들이 있다. '습관적으로 약을 복용하면 안 된다'고 친절히 설명하며 그냥 돌려보내곤 했는데, 나보다 훨씬 긴 세월 동안 겪었을 통증의 기억들로 인해 약을 갖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막상 허리 통증으로 훈련소 기억까지 더듬으며 걱정을 하고 나니, 그들을 매몰차게 돌려세웠던 것이 여간 마음 쓰이는 게 아니다. 아직도 허리 통증이 가시지 않는다. 이 통증은 잊히지 않고 괴롭히니, 가히 뇌의 기억력보다 앞서는 게 아닌가 싶다. 지금도 이를 악물고 허리에 힘을 주어 이 글을 쓰는데, 통증은 얼른 글을 마무리하고 바닥에 누우라고 독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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