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 경계해야 할 북핵 시나리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지난달 25일부터 28일까지 집권 후 처음으로 중국을 방문했다. 4월 말 남북 정상회담, 5월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이루어진 김정은의 방중은 한반도를 둘러싼 체스게임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다.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한 특사외교로 남북에 이은 북미 정상회담까지 성사되자, 한반도 위기론은 남북 화해와 평화 무드로 대체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중국 소외론(차이나 패싱)까지 대두되었다. 그러나 이번 김정은의 방중은 중국 소외론을 일거에 잠재웠을 뿐 아니라, 중국이 여전히 한반도 문제에 있어 핵심 플레이어임을 재확인시켜 주었다. 김정은은 방중을 통하여 핵협상에 있어 절대적 우군을 확보하였을 뿐 아니라, 5월에 있을 북미 정상회담이 실패로 끝날 경우 직면할 수 있는 위험에 대한 보험까지 들었다.

이를 바라보는 트럼프 미 대통령의 속내는 편치 않다. 코피 전략을 포함한 '최대의 압박과 제재'를 통하여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낸 데 이어, '선 핵폐기 후 보상'이라는 리비아식 핵폐기를 강요하려던 전략이 중국이라는 새로운 변수를 만나게 되었다. 미국은 1994년의 제네바 합의, 2005년의 9'19 공동선언과 이의 이행을 위한 2'13 합의, 그리고 2012년의 2'29 합의가 모두 휴짓조각이 되어버린 북한과의 교섭사를 잘 알고 있다. 존 볼튼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내정자가 "북한이 회담에서 리비아처럼 핵을 포기하지 않겠다면 시간 벌기용 위장일 뿐"이라고 단호하게 잘라 말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김정은이 시진핑 중국주석과 면담 시 제시한 "단계적 동시 조치"는 트럼프가 구상하는 북핵 해결법과는 거리가 멀다.

훌륭한 외교는 승자와 패자만 있는 영합게임(zero-sum game)의 파이를 키워서 모두가 승자가 될 수 있는 비영합게임(non-zero-sum game)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진행되는 북핵게임을 보며 필자는 오히려 남북과 미국이 모두 승리했다고 주장하는 상황이 올까 걱정이 앞선다. 북한과 소원한 관계를 유지하며 최근에는 강력한 대북제재에 동조해 오던 중국이 김정은 정권에 타격을 줄 정도의 제재에 계속 동참할지 의문시된다. 중국의 묵시적 협조로 빈사상태의 경제와 고갈된 통치자금에 숨통이 트이게 되면, 김정은은 향후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에서 보다 여유를 갖고 체제보장 조치와 핵 및 미사일 폐기조치의 단계적 동시 이행을 주장할 것이다.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대통령이나 지방선거를 목전에 둔 문재인 대통령은 무언가 가시적 성과를 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힐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가 북한의 핵 및 미사일 동결(혹은 핵폐기 약속과 단계적 동시 이행)과 북미 수교 및 평화협정 체결을 맞바꾸는 것이다. 트럼프는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추가 핵개발을 막음으로써 미국의 안전을 확보했다고 주장하고, 김정은은 드디어 미국과 수교하고 평화협정을 체결함으로써 안전보장과 함께 미국과 대등한 위치에 서게 되었다고 선전할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북미 협상의 성공적 중재를 통하여 한반도에서 전쟁위험을 종식시키고, 한반도 평화를 정착시키게 되었다고 자랑할 수 있다.

그러나 이미 6차에 걸친 핵실험과 수십 회의 미사일 시험발사를 통하여 중'단거리미사일에 핵 탑재 능력까지 갖춘 현상태에서의 핵동결과 북한이 핵실험을 하기 전인 94년 제네바 합의나 2005년 9'19 공동성명 당시의 핵동결은 차원이 다른 이야기다. 단계적 핵폐기 약속은 이미 몇 번이나 본 옛날 영화다. 평화협정 체결에 주한미군 철수까지 포함시키지 말라는 법도 없다. 북핵을 머리 위에 이고 살아가야 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기우에 지나지 않기를 빈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