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美 공군 폭격에 26명 사상, 정부는 70년간 침묵했다"

독도피격사건 유가족의 한…日서 출격 폭격대대 훈련 폭탄·기관단총 쏟아부어

독도피격사건 희생자의 아들인 박용길 씨가 아버지의 사망내용이 담겨 있는 재적증명서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박 씨의 아버지는 현재 기록이 남겨져 있는, 독도에서의 최초 사망자이다.
독도피격사건 희생자의 아들인 박용길 씨가 아버지의 사망내용이 담겨 있는 재적증명서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박 씨의 아버지는 현재 기록이 남겨져 있는, 독도에서의 최초 사망자이다.

"지금도 독도에 제 아버지가 잠들어 계십니다. 그 차가움과 서러움을 풀어 드리고 싶어요."

울진군 울진읍에 살고 있는 박용길(78) 씨는 미역작목반 반장이다. 평생 미역을 따고, 동네 품팔이를 자처하며 힘든 생활을 이어왔다.

지긋지긋한 이 생활을 벗어나려고 해도 배운 것 없는 박 씨에게 선택은 그리 많지 않았다.

미역 채취일을 하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남긴 유일한 유산이라 생각하면 그래도 버틸만했다. 박 씨의 나이 8살 때, 독도 앞바다에서 눈을 감은 아버지는 당시 세상을 들썩였던 '독도피격사건'의 희생자이다. "남겨둔 가족들이 걱정돼 제가 바다에 나갈 때마다 아버지가 지켜주시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바다를 버리지 못하는 이유죠."

이맘때면 경북 동해안에는 미역이 제철이다. 그중에서도 독도는 때묻지 않은 바다와 풍부한 영양분으로 미역 생산지로서는 으뜸이다.

70년 전인 1948년 6월 8일도 그랬다. 큰 배에 땟마(나룻배 형식의 작은 배)를 여럿 묶고 아침 일찍부터 어민들은 독도 앞바다에 모여들었다.

갑자기 투하된 폭탄과 총탄들. 평화롭던 어민들의 작업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사흘 후 일간신문에는 '독도피격사건'이라는 제목의 메인기사가 1면을 장식했다.

겨우 살아 돌아온 생존자들의 입으로 "8일 오전 11시 30분쯤 울릉도 동방 독도 인근에 국적불명 비행기 몇 대가 폭탄을 투하한 뒤 기관총까지 쏘아댔다. 고기잡이와 미역을 따고 있던 20여 척의 어선이 파괴되고 어부 16명이 즉사, 10명이 중상을 입었다"는 내용이 세상에 알려졌다.

일본 오키나와에 주둔 중이던 미 공군 93폭격대대가 펼친 훈련이 원인이었다. 미군은 당시 독도를 무인도로 단정하고 1천파운드의 폭탄 4개와 기관단총 폭격 훈련을 했다.

미군은 당시 상황을 인정했지만, "고공에서 날았기 때문에 어선과 암초가 구분되지 않았고 진상조사를 벌이고 있다"는 발표만 남기고 더이상의 원인규명은 묻혀버리고 말았다.

미 군정의 지배를 받던 당시로써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유가족들에게는 소 한 마리 값이었던 30만환 정도가 보상됐을 뿐이었다.

2년 후 1950년 6월 8일 이들을 위로하는 행사가 열리고 '독도조난어민위령비'가 세워졌다. 미국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피격이란 말 대신 조난이란 이름으로 사고처럼 덮은 셈이다.

"아직까지 사망원인도 제대로 공표되지 않았으니 얼마나 억울하실까요. 어릴 적에는 힘든 생황을 물려준 아버지가 원망스러웠지만, 세월이 갈수록 그리움만 계속 커져가네요."

박 씨는 지난해 8월 처음으로 독도를 찾았다. 제대로 된 묘소도 없어 명절이나 기일이면 늘 슬픔에 잠겨 있던 박 씨를 위해 가족들이 준비한 정성이었다.

비가 억수로 쏟아지던 날이었지만, 운 좋게도 박 씨는 독도 선착장을 밟을 수 있었다. '마치 69년 만에 처음 만난 아들이 보고 싶어 아버지가 마련해준 배려 같다'고 박 씨는 회상했다.

다행히 경북도와 동북아역사재단의 노력으로 올해부터 박 씨와 같은 독도피격사건 유가족들의 생활이 처음 세상에 알려지고, 이들을 위한 행사가 오는 6월 8일 진행된다.

또한 앞으로 피해 유족을 찾아 위로하고, 당시 상황에 대해 기록하는 작업을 이어갈 예정이다. 동북아역사재단 홍성근 연구위원은 "사건 당시 미국은 일본 어민들에게만 훈련 사실을 통보하고 우리나라에는 알리지 않았다. 미국의 실수를 들춰내는 것이기 때문에 정확한 원인규명이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억울한 죽음과 남겨진 가족들의 슬픔을 달래고 독도가 우리 어민들이 생활하다가 돌아가신 영토라는 사실을 분명히 하기 위해 독도피격사건에 관한 특별법 등이 마련돼야 한다"고 했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