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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봇대 전기·통신선 '12→48개', 정작 안전 기준은 1975년 수준

1기당 12개 제한 규제 완화, 한전 임대 수익 1천700억원…충돌 땐 도미노처럼 쓰러져

29일 대구시 북구 복현오거리 전신주의 모습. 수십 개의 전력선과 통신선로가 전신주마다 매달려 있다. 우태욱 기자 woo@msnet.co.kr
29일 대구시 북구 복현오거리 전신주의 모습. 수십 개의 전력선과 통신선로가 전신주마다 매달려 있다. 우태욱 기자 woo@msnet.co.kr

한국전력이 전신주를 임대해 한 해 수천억원의 수익을 올리면서 정작 안전관리는 외면한다는 비난이 일고 있다. 전신주에 내걸리는 통신선로의 설치기준은 완화해 수익성을 높이면서 정작 전신주 시공에는 40년 전에 만든 안전기준을 고수하다 보니 사고 시 전신주가 연쇄적으로 부러지는 일이 잇따르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 4일 대구 북구 침산동 백사벌네거리 인근에서는 택시가 전신주와 충돌해 전신주 4대가 잇달아 넘어지는 사고가 났다. 충돌한 전신주는 하나였지만 전선과 통신선로로 연결된 다른 전신주들이 하중을 이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앞서 2월 19일에도 부산시 금정구에서 화물차가 고압선을 건드리면서 전신주 2개가 부러졌고, 지난해 11월에는 상주에서 시내버스가 전신주와 부딪쳐 전신주 3대가 넘어지기도 했다.

전신주가 연쇄적으로 쓰러지는 것은 매달린 전선 및 통신선로가 많고, 장력도 강하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실제로 침산동 사고 현장에서 넘어진 전신주에는 2만2천900V의 고압전력선 외에도 전신주 1대당 6~12개의 통신선로가 설치돼 있었다. 한전 대구본부에 따르면 충돌사고가 난 전신주가 버틸 수 있는 수평하중(파괴하중: 수평 방향에서 밀거나 당겼을 때 전신주가 부러지는 힘이나 무게의 최대치)은 1천㎏f(킬로그램힘)이다. 1.5t 무게의 승용차가 시속 60㎞ 정도로 충돌할 경우, 전신주엔 최대 1만2천㎏f가량의 충격이 전달된다. 그 때문에 승용차가 정면충돌하면 전신주가 충분히 부러질 수 있다는 뜻이다. 문제는 옆에 있던 전신주들까지 마치 충돌이 있었던 것처럼 잇따라 부러졌다는 것이다.

곽동순 경일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직접 충돌하지 않았던 전신주까지 부러진 것은 상당히 심각한 문제"라며 "전신주가 쓰러지면 거의 동시에 전력이 차단돼야 하는데 스파크가 수초간 튄 것은 전력차단기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의미"라고 지적했다. 다른 전문가는 "전신주 사이에 걸쳐진 고압전선과 통신 케이블들은 엄청난 장력으로 전신주들에 영향을 준다. 통신선로를 줄일 수 없다면 구조를 더 튼튼하게 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정보통신기술의 대중화로 전신주에 걸리는 하중은 커지고 있지만 안전기준은 처음 도입된 1975년 7월과 달라진 게 없다. 오히려 한전은 스스로 관련 규제를 완화하기까지 했다. 전신주 1기당 12개로 제한했던 통신선로를 2016년부터 48개로 상향 조정한 것이다. 이는 전신주 임대로 벌어들이는 막대한 수익과 관련이 깊다.

지난해 한전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16년 전신주의 도로점용료 납부액은 19억5천300만원이었지만, 전신주를 통해 얻은 수익은 89배인 1천771억원에 달했다. 지난해 대구경북에서 통신사업자가 한국전력에 납부한 전신주 사용료도 229억원에 이른다. 이에 대해 한국전력 대구지사 관계자는 "이번처럼 속도를 줄이지 않고 전신주에 정면충돌하는 사례가 반복될 가능성은 낮다. 전신주 안전점검은 주기적으로 이뤄지며, 적절히 관리되고 있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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