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과 북이 '2018 남북 정상회담' 이후 한반도 내 완전한 비핵화와 '판문점 선언' 후속 조치를 위해 일제히 가속페달을 밟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합의사항 이행을 하나하나 실행하고 있고, 문재인 대통령도 한반도 주변국과의 소통에 속도감을 올리고 있다. 남북이 손발을 맞춰 진행하는 속도전은 한반도 문제 해결의 결정판이 될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미 정상 간 가시적 성과 도출에 기여할 것이란 기대가 크다.
◆북, 진정성 강조하기 위한 속도전
김 위원장은 남북 정상회담에서 "반드시 남북 간 합의를 이행하겠다"며 진정성을 강조했다. 회담 전 과정에서 남북관계 개선, 전쟁위험 해소,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 등이 담긴 '판문점 선언'이 휴지 조각이 되지 않게 하겠다고 여러 차례 밝혔다. 남북 정상회담에 북한의 실질적 최고지도자인 김 위원장과 헌법상 국가수반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함께한 점도 진정성을 강조하기 위해서라는 관측이 나온다.
실제로 김영남 위원장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에서 현재의 표준시인 '평양 시간'을 한국 표준시와 맞출 것이라며 5월 5일부터 적용한다고 공표했다. 문 대통령과의 구두합의를 사흘 만에 실행에 옮긴 것이다. 남북 표준시간 통일은 '판문점 선언'에 포함된 것이 아니라 남북 정상 간 회동에서 나온 합의인 점을 감안하면 북측은 구두라도 합의를 소홀히 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셈이다.
◆북의 진정한 속내는 무엇?
북한이 비핵화에 대한 진정성을 강조하면서 속도전에 나서는 이유는 체제 안정과 경제 성장,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김 위원장은 지난 2013년 경제특구와 경제개발구를 지정하고 2016년에는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을 발표하는 등 경제 발전에 상당한 공을 들여왔다. 남북 정상회담에 앞서 지난달 20일에는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핵'경제 병진 노선의 종결 및 사회주의 경제 건설 매진을 천명한 바 있다.
북한은 또 체제 보장을 위한 카드로 핵폐기 문제를 꺼낸 것으로 관측된다. 강력한 대북 제재가 뒤따를 것을 알면서도 핵무기에 집착한 것은 결코 공격용이 아니라 미국의 군사적 위협에 맞서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는 뜻을 북미 정상회담에서 표명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북미 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에 대한 불가침을 약속할 경우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등 핵동결 조치를 뛰어넘어 미국이 요구하는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에도 합의할 수 있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김 위원장의 속도전에는 지난 2000년 미국 대선 뒤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이 무산된 경험을 반복하지 않으려는 의도 또한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소속인 클린턴 행정부 말기인 2000년 10월 북한 조명록 국방위 제1부위원장, 미국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부 장관이 각각 상대 측을 방문해 사전 정지작업을 하는 등 정상회담 직전까지 갔으나 그해 11월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 소속 조지 부시 후보가 당선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2001년 9'11 테러 발생 뒤 미국이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북한은 핵시설 재가동을 선언하면서 북미 관계는 완전히 파탄 났다.
김 위원장은 이 같은 과거 사례를 교훈으로 삼아 한미 정부의 국정 장악력이 떨어지는 임기 말기나 대선 직전이 아닌 한미 모두 집권 2년 차인 현 시점이 관계 개선을 안정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적기라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우리 측도 '호기 놓칠라' 속도전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한 '운전자'를 자처한 문 대통령 역시 정상회담 후속 조치를 서두르고 있다. 더욱이 트럼프 미 대통령도 북미 정상회담 시기를 이달로 상정, 비핵화 논의가 속도전으로 흐를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크다.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의 신년사를 기점으로 평창동계올림픽'남북 정상회담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남북 접촉을 통해 북미 담판의 가교 역할을 충실히 하면서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인 평화체제 정착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에 따라 세계열강 사이에서도 남북문제 해결은 이번이 최적기라고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남북 정상회담 후속 조치는 청와대가 진두지휘하고 있으며 가장 파급력이 큰 경제 부문에 대한 구체적 방안을 이미 만들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실제로 문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남북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신(新)경제 구상'을 김 위원장에게 제안했다고 청와대가 지난달 30일 밝혔다.
청와대 관계자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주재한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김 위원장에게 신경제 구상을 담은 책자'PT(프레젠테이션) 영상을 정상회담 때 건네줬다"며 "그 영상 속에 발전소와 관련한 내용이 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회담 당일 도보다리를 산책하면서 김 위원장에게 '발전소'라고 말하는 듯한 장면이 생중계 화면에 포착됐다는 보도에 대해 참석한 한 참모가 질문하자 이같이 설명했다. 다만 문 대통령은 "구두로 그 내용을 (김 위원장과) 논의한 적은 없다"고 했다.
정상회담 당일 김 위원장과의 공동발표 자리에서 "10'4 정상선언의 이행과 남북 경협사업의 추진을 위한 남북 공동조사 연구작업이 시작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는 언급의 의미에 대해 문 대통령은 "현실적으로 북미 회담이 끝나기를 기다려야 하는 것은 여건이 조성되길 기다려서 하는 것이고, 그렇지 않은 것들, 즉 대북 제재 문제와 관련 없는 것은 빨리빨리 당장 실행해 나가자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다만 앞으로 진행해야 할 비핵화 방법론에 대한 틈새를 좁히는 문제는 문 대통령에게 주어진 과제로 볼 수 있다. 그 첫 단계가 5월로 예정된 한중일 정상회담, 한미 정상회담이다. 모두 북미 정상회담 이전에 열리는 것으로, 문 대통령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관련국 정상을 만나 북미 간 비핵화 합의 타결 가능성을 높이는 데 주력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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