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학부모 교육, 부모됨의 길을 묻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휴식이 주는 에너지

임재양(임재양외과 원장)
임재양(임재양외과 원장)

쉬거나 여행이 좋은 이유는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기 때문이다. 시각이 달라지고 평소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이고 깨달음이 온다. 이제는 이렇게 살아야겠다고 다짐을 하고 일상으로 돌아오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또 지루하게 반복되는 일상으로 돌아온다. 그래서 일상의 작은 휴식은 중요하다. 깨달음이 있고 작은 궤도 수정이 있기 때문이다.

나도 하루 종일 환자를 진료하고 아픔을 함께 하는 반복적인 일상을 살고 있다. 그래서 적당한 때가 되면 일상의 일탈을 시도한다.

몇 달에 한 번씩은 하루 종일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오로지 잠만 잔다. 영화관에 가서 편하게 자리를 잡고 영화를 보다 자다 깨다를 반복한다. 영화 스토리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가을이면 바람 많은 제주도 들판을 밤늦게까지 걷다가 허름한 방에 돌아와 정신없이 자기도 한다. 비가 오면 뒷산에 올라가 떨어지는 빗줄기를 하염없이 쳐다보기만 할 때도 있다. 이러한 작은 일탈은 매일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반복되는 힘든 일상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기도 하고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준다.

요즘 아이들은 불쌍하다.

아침부터 밤까지 정해진 일상이 도를 넘어섰다. 학원이나 과외 과목도 늘어나고 시작하는 나이도 점점 낮아지고 있다. 아이들이 알아야 하고 해야 할 일은 자꾸 많아진다. 과거에는 경쟁을 거치면서 통과한 학생들만 공부에 매달렸는데 이제는 모든 학생들이 경쟁에 매달려야 한다.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렇게 시키고 있다. 부모들의 태도가 이해되는 부분도 있고, 어떻게든 해결해야 하지만 딱히 방법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런데, 단순한 의문이 든다. 그렇게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반복되는 일상을 10년 이상 해 나가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내 경험으로는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부모가 시키는 대로 공부만 하는 아이가 정상인가? TV도 보고 싶고, 게임도 하고 싶고, 떡볶이도 사 먹고 싶다. 공부를 하다가도 슬럼프에 빠지면 아무 일도 안하고 빈둥거릴 때도 있다.

나도 공부는 안 되고 왜 이런 갈등이 생기는지 나 자신이 한심해 주먹으로 벽을 치면서 통곡한 경험이 있다. 성적은 안 오르고 끝은 안보여서 절망스런 현실에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그게 당연한 방황이고 성장의 과정이다. 현재 부모들은 그런 갈등 없이 그 시절을 보냈는가?

우리 아이들에게 한 번씩 숨 쉴 수 있는 시간을 주자. 가끔 아이들의 고민도 이해하고 들어주자. 때로는 아무 일도 안하고 무엇을 하던지 그냥 놓아 주자. 게임을 하겠다면 하루는 밤새도록 하도록 두자. 밤늦게 학원에서 돌아오면 '힘들지?'라고 한 마디 하면서 꼭 안아주자. 한 번씩 휴일에는 어설프더라도 함께 음식을 만들면서 가족과 눈과 손을 맞추는 여유를 가지자. 아이가 힘들어 하면 눈을 맞추고 아무 말 없이 공감의 신호를 보내자.

잘하는 아이는 가족의 응원에 더욱 힘을 내서 잘 할 것이고, 그렇지 않더라도 최선을 다하는 자신을 가족이 이해해 준다고 생각해서 더 열심히 하려고 할 것이다.

지금의 경쟁사회에서는 다들 그렇게 해야 하니까, 다른 부모들도 시키니까, 어쩔 수 없다 하지 말자. 중요한 것은 아이들 각자의 페이스이다. 가끔 갈짓자로 방황하더라도 자기의 페이스대로 조금씩 나아가도록 시간을 주자.

임재양(임재양외과 원장)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