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 기초자치단체장 가운데 유일하게 집권 여당으로 당선된 더불어민주당 장세용(65) 구미시장은 소설같은 삶을 살아왔다.
그는 구미 인동에서 태어나 인동초·인동중을 졸업하고, 대구상고를 다녔다. 영남대 역사학과를 졸업한 뒤, 정치사상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도시재생 전문가인 그는 부산대 한국민족문화연구소 정교수에 임용되면서 도시재생이론 연구를 시작했다.

그의 인생은 굴곡의 연속이었다.
1970년대 영남대 학부시절 학생운동에 몸을 담았으며, 박사학위를 마치고 영남대에서 시간강사를 할 때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장악한 영남대재단 퇴진운동에 앞장 섰었다.
이러한 전력 때문에 번번이 영남대 교수 임용에서 탈락했다.
2003년 영남대 연구교수로 어렵게 임용되고, 2006년 부산대로 옮겼다.
그는 "지역을 바꿔야 사회가 바뀐다"는 일념으로 경산에서 청년운동과 시민운동을 이어갔다.
경산신문도 창간을 해 기자 생활도 했다.
1983년부터 시간강사만 20여년을 한 그는 "비정규직이 얼마나 차별을 받고 서러운 지를 실감했다"며 "시간강사와 교수의 편차가 굉장히 컸다. 그래서 시간강사 노조를 만들고, 시민운동 등 다양한 사회경험을 하면서 세상 보는 눈을 넓혔다"고 소희를 밝혔다.
그는 가톨릭 신자이다. 중학교때부터 성당을 다녔다. 대봉성당에서 영세를 받았다. 세례명은 유스티노이다.
결혼도 대봉성당에서 하성호 신부의 주례로 했다.
그는 "당시 대봉성당 보좌신부가 서경돈·하성호 신부였는데 하성호 신부가 첫 주례를 맡아 주었다"고 했다.
제9대 경북도의원이었던 김창숙 여사와는 1982년 결혼을 했다. 대구 시지동 방 2개짜리에 신혼살림을 차렸다.
그는 "부인이 수녀원에 가기 위해 모든 준비를 마쳤는데, 부모님의 권유로 선을 보라고 해서 만났다"며 "첫 눈에 마음에 들었다"고 했다.
결혼은 했지만, 박사 학위를 받기 위해 공부를 해야 했다.
신혼집에는 사회운동을 하는 후배들이 수시로 집에 드나들어 생활형편이 좋지 못했다.
한겨울에 연탄불을 피우지 못할 정도로 어려운 생활을 했지만, 김창숙 여사는 불평불만 한마디 하지 않고 그를 내조했다.
그는 "신앙심이 없었다면 힘든 시기를 견뎌내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그동안 고생만 시킨 부인한테 항상 미안한 마음이 많이 든다"고 했다.

구미시장 출마에 대해서는 "2014년 총선 준비를 했었다"며 "그렇지만 집안 어르신들의 반대와 총선 출마 준비를 전혀 하지 못해 포기를 했었다"고 했다.
이어 "이번 6·13 지방선거에서 도시재생 정책으로 승부를 걸어보자는 생각으로 시장 출마를 결심했다"면서 "시민들에게는 도시재생이란 말이 생소하게 들릴 것이다. 그러나 공업도시 50년인 구미가 새로운 도약을 하고 발전을 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도전이 필요할 때"라고 강조했다.
그는 "선진국들이 도시재생을 시작한 지가 오래됐다. 미국의 사례가 인구 43만 명인 구미에 꼭 맞다고 보지는 못하지만, 앞으로 구미에는 반드시 필요한 정책"이라며 "국비를 받아내 구미공단 재생사업에 활력을 불어넣어 침체된 경제를 살리겠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대구취수원 구미 이전에 대해서 그는 "시민들의 뜻이 가장 중요하다"며 "전문기관에 수질 및 수량 문제 등에 대해 정밀조사를 한 뒤 객관적인 입장에서 검토해 볼 사항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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