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효율적인 제작시스템을 만들어내며 국내 영화계에 활력을 주고 있는 감독 이준익이 유쾌한 청춘극을 들고 여름 극장가를 찾는다. 이준익 감독은 '소원' '동주' '박열' 등 치솟고 있는 한국 상업영화 제작비의 평균 수준도 안 되는 적은 예산으로 만든 작품을 줄줄이 히트작 대열에 올려놓은 인물이다. 그에 앞서 '왕의 남자'로 1000만 관객을 모으기도 했었고,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님은 먼곳에' '사도' 등 스케일 있는 작품을 병행하기도 했던 인물이다. '소원' 이후로는 저예산과 큰 규모의 작품을 병행하고 있는데, 특히 제작비를 크게 들이지 않고 알차게 만들어낸 영화로 자신의 작품세계를 보여주는 한편 흥행 면에서도 우수한 성적을 거둬 눈길을 끌고 있다. '돈 먹고 돈 먹기' 식으로 거대예산을 들여 단번에 흥행시장에서 어필하려는 영화가 많은 반면, '예산이 상업영화의 성공을 좌우하는 건 아니다'라는 자신만의 공식을 만들어가며 한국영화계를 이끌어가고 있다. 그리고 80년대 중반부터 영화 일을 하던 이준익은 환갑이 다 된 나이에 청춘영화 '변산'을 내놓고 대중과 교감하려 손 내밀고 있다.

#이준익, 충무로 터줏대감의 거침없는 행보
올해 이준익 감독은 환갑이 된다. 그리고 지금 충무로에서 이 나이까지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감독은 거의 없다. 2013년부터는 매해 신작을 내놓고 또 그 영화를 히트작 대열에 올려놨다. 작품 활동 주기와 히트율까지 고려하면, 60이 다 된 나이에 이런 성과를 내는 한국영화 감독은 정확히 말해 '없다'. 심지어 그보다 젊은 감독들 중에서도 해마다 신작을 내놓을 수 있는 능력자는 없다. 물론 빨리 찍어낸 영화가 좋다는 말이 아니다. 내놓는 작품마다 성공시켜야 옳다는 것도 아니다. 다만 한 편의 영화가 나오기까지의 공정을 최소화하고 '되는 방향'을 찾아 결국 성공으로 이끌어내는 이준익 감독의 능력을 치하하기 위해 꺼낸 말일 뿐이다.

다시 한 번 짚어보자면 이준익 감독이 최근 5년 동안 보여주고 있는 행보는 '충무로의 귀감'이라는 표현을 쓰기에 적합하다. 상업영화 한 편이 만들어지기까지의 지난한 과정, 감독은 욕심을 부리고 제작자는 효율을 기대한다. 배급사와 극장의 줄다리기도 치열하고 여기에 스타급 배우들의 기획사까지 붙어 한판 격렬한 신경전을 펼친 뒤에야 한 편의 영화가 세상에 나올 수 있다. 운 좋게 모든 일이 술술 풀려 수월하게 영화가 제작되는 케이스는 극히 드물다.

그러니 감독들은 가뭄에 콩 나듯 내놓는 작품에서 역량을 과시하려 힘을 잔뜩 준다. 그리고 종종 그 노력이 과해 부작용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준익 감독은 바로 이 지점에서 타 감독들과 궤를 달리한다.
이준익 감독은 80년대부터 영화홍보와 외화 배급, 한국영화 제작을 하다 연출까지 하게 된 인물이다. 누구보다 비용 대비 효율에 대한 생각이 뚜렷하다. 그리고 영화 연출을 할 때도 필요 이상의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누구보다도 철학이 뚜렷하고 만듦새에 대한 욕심까지 있는 사람이지만 그는 지금 스스로를 '예술가'라고 부르지 않는다. 오히려 '콘텐츠 생산자'로 규정하고 대중과 교감할 수 있는 우수한 콘텐츠 제작 작업에 몰두한다.

물론 전작 중 감독 본인의 연출 의도와 대중 정서가 맞아떨어지지 않아 아쉬운 결과가 나온 케이스도 있다. 은근히 미쟝센과 스타일에 치중했던 적도 있고 자신감이 넘쳐 대중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하고 흥행에 참패한 적도 있다. 하지만, 분명 필모그래피에서 실패 케이스보다 성공 사례가 월등히 많고 최근 5년은 특히 그렇다. 무엇보다 그 성공 케이스가 흥행 뿐 아니라 퀄리티와 의미에 대한 호평까지 함께 안고 있다는 점에서 대단하다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돈을 들여 스타를 캐스팅하고 완성도를 높일 수 있지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달하는데 집중하고, 비용을 줄이되 최대한의 퀄리티를 확보하는 방식. 그렇다고 이준익 감독이 내놓는 영화가 흔히 말하는 '예술영화'도 아니다. 분명 '상업영화'다. 6억 원대 초저예산 영화 '동주', 26억 원대 '박열'을 연달아 성공시키며 충무로에 새로운 흥행시스템을 만들어낸 감독. 시행착오를 거쳐 현재의 작업방식을 만들어내고 승승장구하는 이는 정말로 이준익 한 명 뿐이다.

#'변산', 환갑 맞은 노감독의 발랄한 청춘영화
이번에 내놓은 영화 '변산'도 많은 제작비가 투입된 케이스가 아니다. 총제작비가 공식적으로 알려지진 않았지만 영화계에서 들리는 말에 의하면 약 200만 명 정도의 관객이 들어올 경우 손익분기점을 맞출 수 있을 듯하다.
더 재미있는 건 이 영화의 소재와 내용이다. '변산'은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청춘물이다. 좌충우돌하는 청춘들의 성장기를 담고 있다. '즐거운 인생'에서 중년들의 밴드활동을 보여주며 '브라보 마이 라이프'를 외쳤던 이준익 감독이 이번엔 한층 더 연령대를 낮춰 청춘들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그것도 환갑이 된 지금에. 게다가 BGM은 온통 랩으로 가득 채워버렸다. 40대 중년들도 접근하기 쉽지 않은 랩을 60대 이준익 감독이 적극 활용했다. 결과적으로 나이는 그저 숫자에 불과한 모양이다.
영화는 아버지에 대한 미움을 가진 채 고향을 등지고 서울로 올라와 래퍼로 활동하는 인물 학수를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인기 랩 오디션 프로그램 '쇼 미 더 머니'에 무려 여섯 차례나 도전한 언더그라운드 래퍼다. 실력은 있지만 부각되지 못한 '20대 남자 사람'이다. 어느 날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전화를 받고 어쩔 수 없이 고향을 찾게 되는데, 이때부터 어린 시절 함께 보낸 고향 사람들과 좌충우돌 한바탕 소동극을 벌이게 된다. 결과적으로 '변산'은 청춘들이 갈등하고 화해하고 성숙해지는 과정을 다룬다. 그 사이에 우정, 사랑 등 인물들이 느끼는 갖가지 감정을 통해 웃음과 감동을 자아낸다. 등장인물들이 보여주는 해학 넘치는 연기와 대사 때문에 영화는 시종일관 즐겁다. 혹 안타까운 이별의 순간이 묘사될 때도 이준익 감독은 억지로 눈물샘을 자극하지 않는다. 그래서 60대 감독의 이 청춘영화는 상당히 쿨하게 느껴진다.
영화의 주인공으로 나선 배우는 이준익 감독이 '동주'에 캐스팅한 후부터 세상에 제대로 알려진 박정민이다. '은교' '도깨비'의 김고은이 상대역으로 동반 캐스팅됐다. 박정민은 랩을 직접 소화하며 반항기와 재능을 고루 갖춘 인물 학수를 연기했다. 뜻대로 풀리지 않는 세상살이에 '바라보고 싶은 것'들만 보고 그 외의 일을 외면하다 비로소 배짱 좋게 '맞장' 뜨는 법을 배우게 된다. 김고은은 학창시절부터 학수를 좋아했던 동창생 선미 역을 맡았다. 글 잘 쓰고 감성 넘치는 학수를 동경하다 소설가로 데뷔 신고식을 치르게 된다. 김고은은 '특별할 것 없는 외모'를 가진 캐릭터를 만들어내기 위해 8kg이나 체중을 늘렸다. 앞뒤 잴 것 없이 배역 하나에 푹 빠져 역할을 소화해낸 두 주연배우들로 인해 영화의 몰입도 역시 높아진다. 여름철에 꽤 쏠쏠한 재미를 주는 볼만한 영화다.
정달해(대중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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