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달해의 엔터인사이트] 시리즈 영화의 부활

공공의 적
공공의 적

캐릭터의 매력은 시리즈 영화 성공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다. 물론 '여고괴담'이나 '가문의 영광' 시리즈처럼 특정 캐릭터 없이 포맷의 일관성을 유지하며 브랜드만 이어가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완성도 높은 캐릭터 없이 그저 타이틀만 가져와 유사한 내용의 이야기를 반복하다보면 결국 망가질 만큼 망가져 회생 불가능한 상태에 이르고 만다. 실제로 '가문의 영광' 시리즈가 그랬다. 반면 잘 다듬어진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운 경우는 고정 팬층을 형성하고 이들의 지지 속에 후속편을 만들 수 있어 안정적이다. 형사 강철중을 내세운 '공공의 적' 시리즈가 지금도 후속편 제작에 대한 기대를 얻고 있는 대표적인 케이스다. '조선명탐정' 시리즈 역시 캐릭터의 힘으로 3편까지 제작돼 흥행에 성공했다. 최근에는 마동석 주연의 '범죄도시'가 속편 제작 계획을 알렸다. 마동석이 연기한 마석도 형사 캐릭터가 강한 인상을 남긴다. 이처럼 할리우드에 비해 드물었던 충무로의 시리즈 영화가 속속 기획되고 있어 눈길을 끈다. 매력적인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워 시리즈의 브랜드를 대중에 어필하고 있다.

범죄도시
범죄도시

# '공공의 적' '장군의 아들', 국내 대표적인 시리즈물

충무로에는 할리우드에 비해 시리즈 영화가 많지 않았다. 90년대부터 지금까지 대표적인 예라고 꼽을 수 있는 건 '장군의 아들'과 '공공의 적' '투캅스' '가문의 영광' '조폭마누라' 등 몇 편의 시리즈가 전부다.

임권택 감독이 연출하고 박상민이 주연을 맡은 '장군의 아들'은 흥행과 평가 양면으로 고루 성과를 올리며 선례를 남겼다. 3편까지 제작됐으며 매번 많은 관객을 극장으로 끌어들여 흥행에 성공했다. 김두한 캐릭터의 매력을 부각시켜 대중의 호감을 샀다. 그 외에도 신현준이 연기한 악역 하야시, 그리고 이일재가 맡은 김동해 등 강한 인상을 남긴 캐릭터들이 많았으며 시리즈가 이어지는 동안 각 인물들의 활약상을 차츰 부각시켜 팬들의 기대에 부응했다.

장군의 아들
장군의 아들

'공공의 적'은 잘 알려진 것처럼 강철중이라는 인상적인 캐릭터 하나로 단번에 한국영화 팬들을 휘어잡은, 국내 시리즈영화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단순무식한데다 집요하고 기운이 펄펄 넘치는 형사 강철중이 지독한 악당에 맞서는 내용을 담았다. 주인공 캐릭터를 '전형적인 선인'이 아닌 속물로 묘사해 공감대를 형성했으며, '누가 봐도 철저히 나쁜 놈'을 악당으로 내세워 관객들로 하여금 반대 진영에 서 있는 강철중을 응원하게끔 유도했다. 2편에서 강철중 캐릭터를 검사로 설정했다가 재미가 없다는 말을 들은 뒤 3편에 이르러 다시 형사 캐릭터로 되돌렸다. 강우석 감독이 연출하고 설경구가 강철중 역을 소화했다.

'투캅스'는 강우석 감독이 만들어낸 또 다른 히트 브랜드 시리즈다. 1편에서 안성기-박중훈의 콤비 플레이를 코믹하게 묘사해 큰 성공을 거뒀으며, 2편에서 박중훈-김보성을, 3편에서 김보성-권민중을 내세워 시리즈를 이었다. 현재 강우석 감독이 '공공의 적'과 '투캅스'를 새로운 모습으로 보여줄 수 있는 영화를 기획 중이다.

'가문의 영광'도 무려 5편이나 만들어진 충무로 대표 시리즈물이다. 하지만 이 시리즈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갈린다. 후속작들이 1편의 완성도를 따라가지 못했고, 그저 명절 특수를 노려 억지웃음을 끌어내는 코미디로 어필해 새로운 시리즈가 나올 때마다 혹평을 들어야했다. 심지어 시리즈 4편에서는 제작자가 직접 감독으로 나서 최악의 완성도를 보여주기도 했다. 다만 매번 혹평을 들으면서도 흥행 면에서 쏠쏠한 재미를 본 건 사실이니 상업영화로서 전략 자체에는 점수를 주지 않을 수 없다. '조폭 마누라' '두사부일체' 등의 시리즈물도 '가문의 영광'과 마찬가지로 내놓는 후속작마다 엉성한 만듦새 때문에 욕을 먹었다. 당시 흥행성과 때문에 무분별하게 이런 종류의 시리즈물을 만들어내던 영화인들에 대한 질타가 이어지기도 했다.

더 시간을 거슬러 80년대로 가면 꽤 괜찮은 성과를 보였던 시리즈물이 있다. 전영록 주연작 '돌아이' 시리즈다. 뛰어난 무술실력을 갖춘 데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격의 '석아'가 주인공이다. 당대 최고 스타 전영록을 주연으로 3편까지 제작됐으며, 이후 최재성을 캐스팅해 4편을 만들기도 했다. 경쾌한 전개와 속 시원한 액션이 이 시리즈의 성공요인이었다.

그 외 '영구와 땡칠이' '우뢰매' 등 아동영화 시리즈도 있다. 둘 다 주연을 맡은 심형래의 캐릭터를 내세워 여러 편의 후속작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70년대 초반부터 80년대까지 이어진 '용팔이' 시리즈도 있다. 고 박노식이 맡았던 용팔이 캐릭터는 80년대로 들어와 이대근이 이어받아 연기했다.

조선명탐정2
조선명탐정2

#충무로에도 시리즈 영화 기획 왕성

길게 설명했지만 사실 충무로의 시리즈 영화 계보는 사실상 위에 말한 정도가 전부라고 해도 무방하다. 시리즈 영화 제작이 원활하지 않았던 이유를 굳이 따지자면 후속작에서 전작의 인기를 이어받을 만큼 탄탄한 시나리오를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일 텐데, 여기에서 '가문의 영광' 등 '탄탄하지 않아도 그냥 만들어낸' 케이스는 제외한다.

어쨌든 한 편의 시나리오가 탄탄하게 만들어내기까지는 그 과정이 복잡하고 지난하다. 게다가 전편의 성공에 힘입어 만들어지는 속편의 경우 그 부담감이 월등히 커질 수밖에 없다. 이런 경우 전편에서 캐릭터가 확실하게 구축됐다면 상황이 월등히 유리해진다. 이미 대중에 매력을 어필하며 입지를 굳힌 캐릭터로 인해 이야기를 풀어내기가 한층 수월해진다.

탐정 리턴즈
탐정 리턴즈

후속편 기획 사실을 밝힌 '범죄도시'가 좋은 예다. 마동석이 연기하는 마석도 형사 캐릭터의 활약상을 부각시켜 관객을 홀리는, 전형적인 캐릭터 중심 영화다. 마석도는 불법적인 행위를 어느 정도 눈감아주며 뒷돈도 챙기는 속물 캐릭터라는 점에서 강철중과 어느 정도 겹치는 부분이 있다. 격투실력과 거침없는 추진력까지 비슷하다. 하지만 파워와 액션 면에서는 강철중보다 한층 업그레이드된 모습을 보여준다. 성격적으로도 주변까지 챙기는 인간적인 면모가 돋보인다. '공공의 적'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선과 악의 양 진영에 서 있는 캐릭터들이 탄탄하게 잘 만들어져 서로 대치하며 시너지효과를 낸다. 1편이 큰 예산을 쓰지 않고도 흥행에 성공해 화제가 됐으며, 1편 개봉 당시부터 '시리즈로 가도 좋을 영화'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최근 흥행에 성공한 '탐정: 리턴즈'는 처음부터 시리즈물로 기획된 영화다. 1편이 260만 명을 모아 손익분기점을 넘겼고 2편은 '전편보다 낫다'는 말을 들으며 관객 수 300만 명을 넘어섰다. 권상우와 성동일의 콤비플레이가 돋보인 영화다. '조선명탐정' 시리즈 역시 김명민과 오달수의 캐릭터로 3편까지 흥행에 성공했다.

캐릭터가 돋보인 영화 중 현재 강동원 주연작 '전우치'의 속편이 기획되고 있으며, 하정우가 주연을 맡았던 '베를린' 역시 2편에 대한 말이 나오고 있다.

정달해(대중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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