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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의 착각과 오만/ 토머스 프랭크 지음, 고기탁 옮김/ 열린책들 펴냄

노동자, 평등가치 외면했던 민주당, 대중도 힐러리를 ‘외면’했다

이 책은 2016년 미국 대선에서 패배한 민주당의 패배원인을 분석하고 있다. 사진은 당시 민주당 대선후보로 출마한 힐러리 빌클린턴. 매일신문 DB
이 책은 2016년 미국 대선에서 패배한 민주당의 패배원인을 분석하고 있다. 사진은 당시 민주당 대선후보로 출마한 힐러리 빌클린턴. 매일신문 DB

2016년 11월 8일 미국 대통령 선거. 대부분의 정세분석가, 정치학자들은 민주당의 승리를 확신했다. 젊은 세대, 소수자, 백인 전문직 종사자들의 확고한 지지를 업고 있었고 여론조사에서도 힐러리의 인기는 트럼프를 압도했기 때문이다.

인구통계학적으로, 여론조사상으로 도저히 '질래야 질 수 없는 게임'이라고 여겨졌던 대선에서 민주당은 참혹한 패배를 맛보았다. 저자는 미 민주당의 패배와 위기는 핵심지지층에 대한 전략적 오판에서 비롯되었다고 진단한다. 노동자와 진보지지층, 평등 같은 핵심 가치를 스스로 포기해 위기를 불러들였다는 것이다.

◆노동자, 평등주의 외면 지지층 이탈=민주당이 '민중의 당'이라는 계급적 정체성을 다졌던 때는 1930년대 뉴딜 시기였다. 당시 미국은 대공황으로 실업자가 넘쳐나고 국내적으로 계급 갈등이 극에 달하던 때였다.

민주당 대선후보로 나서 승리한 프랭크 루스벨트는 국가 주도의 대규모 경기 부양책을 시행했다. 동시에 블루칼라, 서민들을 위한 복지 정책과 노동친화적 정책을 도입해 대중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저자는 1970년대에 민주당의 위기가 찾아왔다고 분석한다. 풍요의 시대를 맞아 '뉴딜과 작별하고 미래를 준비해야 할 때'라는 목소리가 힘을 얻으면서 핵심지지층인 노동계급과 핵심가치인 평등주의를 버렸다는 것이다. 1968년 민주당 대선 후보 휴버트 험프리(Hubert Humphrey)가 대선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보냈던 노동자 계급을 하루아침에 버렸던 일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대신 그들은 백인 중상층 출신의 전문직 종사자들로 그 자리를 메워 나갔다. 그들은 능력주의 시대가 요구하는 최고의 인재들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흐름이 한 세대 넘게 지속되면서 월 스트리트, 실리콘 밸리와 같은 특정 도시를 기반으로 한 소수의 전문직 종사자들은 더욱 번창한 반면, 블루칼라 노동자들은 불평등의 정책들에 그대로 노출되었다. 더 이상 '민중의 당'에 민중은 없었던 것이다.

◆최악의 금융위기 때도 자본의 편에=이 책은 민주당 클린턴과 오바마 집권기를 배경으로 한다. 저자는 이 시기 경제적 불평등 문제가 사회적 의제나 당(黨) 강령에서 뒷전으로 밀렸다고 분석했다. 특히 2008년 최악의 금융위기로 최상위계층에 대한 대중의 분노가 들끓던 오바마 집권기, 민주당은 경제적 불평등 문제에서 전혀 해답을 내놓지 못했다.

또한 전통적인 진보주의의 목표, 곧 기회를 늘리고, 사회 정의를 위해 싸우고, 노동자들에게 공정한 대우를 보장하는 일에 사실상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고 비판한다. 기회가 부족해서도 아니었다. 민주당은 24년 중 16년을 집권했기 때문이다.

오바마는 금융위기 때 모럴해저드를 보였던 은행들에게 막대한 구제금융을 제공했지만 노동자들의 단결권에 유리한 '노동자유선택법'은 방치했다. 환생한 루즈벨트로 여겼던 오바마가 루즈벨트의 길이 아닌 부자의 길을 선택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는 민주당의 패배 원인을 분석하며 그 이유를 조목조목 따지고 있다. '실패하고 싶어도 실패할 수 없는 상황'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실패에 가까운' 국정운영을 하게 된 것은 왜 일까. '내비게이션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고, 엔진룸에서 심상치 않은 소리가 들려와도 자동차를 세우고 확인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양당제 구도 한국 정치권에도 반면교사=빌 클린턴 집권 시기 주식가격이 치솟을 때만 해도, 버락 오바마가 '담대한 희망'을 부르짖으며 백악관에 입성할 때만 해도 미국 정치사에서 민주당의 전성기는 계속될 것 같았다. 인구 분포로 봐도 젊은 세대, 소수자, 전문직 종사자가 지지하는 민주당이 대선에서 공화당에 질 리 없다고 여겨졌다. 그러나 이 책에서 보여 줬던 민주당의 약점들은 현실이 되었다. 민주당이 '달리 갈 곳 없는 사람들'로 분류했던 노동 계급은 아무리 갈 곳이 없더라도 민주당한테만은 가지 않았던 것이다.

미국 민주당의 이야기는 비슷한 양당제 구조의 한국 정당들에게도 특별한 메시지를 던진다. 양당제하에서 포퓰리즘을 표방한 진보 정당은 언제든 기로에 서게 된다. 어떤 국가적 사업을 진행하더라도 계급적 이익의 충돌은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부자들을 비난하면서 표를 구한 정당이 거꾸로 부자에게 보탬이 되는 정책을 펴면 대중들은 속았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실리콘밸리의 식자층을 중심으로 경제혁신 및 성장모델을 설파하는 민주당의 노선에선 지금도 노동자 계급이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민중 정당을 표방했던 당의 중심에 대중이 아닌 돈, 권력이 서는 순간 대중은 철저히 그들을 외면한다는 사실을 그들은 아직도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미 민주당의 대선 패배 교훈은 한국에서도 유효하다. 지방선거 참패의 상흔을 딛고 일어나야 할 자유한국당이나, 압도적 승리에 도취한 더불어민주당이 타산지석으로 삼아야할 교훈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397쪽, 1만7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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