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골로 간다’는 말이 유행했다. 서울의 화장터가 홍재동에 있을 때 응암동 고태골에 공동묘지가 있었다. 서울서 골로 간다는 말은 고태골 간다는 말이었고 대구서 골로 간다는 말은 가창골 간다는 말이었다. 골로 간다는 말은 죽으러 간다는 뜻이었다. 싸울 때는 ‘골로 보낸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6.25전쟁이 일어나자 50년 6월에서 10월 사이 대구형무소에 수감된 재소자 2천~3천명과 각지에서 예비 검속된 보도연맹 관련자 5천 명 등이 가창골, 경산 코발트광산, 앞산 빨래터, 학산공원, 신동재, 파군재 등에서 집단 사살되었다.
보도연맹이란 48년 12월 시행된 국가보안법에 따라 공산주의 사상을 가진 사람이나 좌익운동한 사람들을 사상 전향시켜 보호하겠다고 만든 단체였다. 그러나 북한이 침략해오자 다급해진 정부는 이들이 적이 될까 두려워 국군특무대, 헌병대, 반공단체 등을 개입시켜 정식재판도 없이 보도연맹 가입자들을 즉결처분한다. 정부의 공식발표에는 4천 934명이 죽었다고 한다. 전쟁 뒤 정부는 당시 무질서 했던 상황을 설명하고 학살 장소와 인원을 밝히고 억울한 사람들에게 보상도 해주었다.
정부의 이런 태도를 보자 종북 좌파들은 신이 났다. "북한은 전혀 이런 야만스런 짓을 하지도 않았고 인민을 보호했는데 정말 남한 정부 나쁜 놈들"이라고 입에 거품을 품었다. 정부가 잘못을 시인했다고 신이 났다. '게르니카' 그림으로 재미 본 피카소가 '한국에서의 학살'이라는 재목으로 한국전쟁의 참상을 그림으로 만들었다. 피카소야 누구를 편들기 보다 전쟁의 잔혹함을 말하고자 했을 것인데 종북 좌파들은 "미군이 황해도 신천에서 민간인 학살하는 장면"이라며 선전에 열을 올렸다. 북한은 우리 정부가 저지른 행위와는 비교도 하지 못할 엄청난 짓을 저질렀다. 그러나 티끌만치도 과오가 없는 사람들처럼 행세를 한다.
가창 댐 입구에서 조금 더 들어가면 왼편 산비탈에 암자가 하나 있고 그 부근에 비목(碑木)이 하나 있었다. 가창 댐이 만들어질 때 바닥에 있던 백골들의 옮겨 묻은 뒤 세운 집단 무덤의 표지였다. 세월이 지나면서 그 나무 표지판도 없어지고 집들이 들어서자 지금은 그 장소도 찾기 어렵게 되었다.
당시 총살 현장에 있었던 관계자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사격 직전 누군가가 선창하자 일제히 같은 노래 소리가 울려 퍼졌다고 한다. "달도 하나 해도 하나 사랑도 하나 이 나라에 바친 마음 그도 하나 이련만 하물며 조국이야 둘이 있을까 보냐 모두야 우리는 단군의 자손. / 물도 하나 배도 하나 산천도 하나 삼천리에 뻗힌 산맥 그도 하나 이련만 하물며 민족이야 둘이 있을까 보냐. 모두야 이 겨레의 젊은 사나이.(김건 작사, 이봉룡 작곡, 남인수 노래)"
서로 죽이기 위해 총을 쏘다 죽으면 덜 억울하다. 하지만 총도 없는 민간인들 특히 아녀자들이 죽는 건 비극이다. 왜 죽어야 되는지도 모르고 죽으며, 실체도 없고 진리도 아닌 사상의 노예가 되어 인간을 짐승처럼 죽이는 것이 전쟁의 비극이다.
지금은 전쟁이 끝났는데도 적패라고 죽이고, 밉다고 죽이고, 내편이 아니라고 죽이고 전쟁적 비극은 오늘도 한국에서 계속되고 있다. '달도 하나 해도 하나'의 노래가 미처 끝나기도 전에 요란한 총소리가 가창골짜기를 울려 퍼졌다. 그 이후 한 동안 대구시람 들은 어원도 잘 모르면서 골로 간다는 말을 쉽게 했었다.
전 대구적십자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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