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우는 감정노동자다. 주어진 역할에 따라 매번 새로운 인생을 연기하고 다른 성격과 표정을 보여줘야 한다. 그러다보면 역할에 지나치게 몰입해 힘든 상황에 처하는 경우도 적지 않게 발생한다. 연기라는 배우의 직접적 노동 그 자체만 해도 이 정도로 감정 소비가 크게 이뤄지는데 매번 타인(제작자나 감독 등)의 선택을 받아야 한다는 부담감도 만만치가 않다. 그러다보니 배우 본인도 자신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힘든 상황에 처하는 경우가 종종 생기곤 한다. 이를테면, 순간의 기분 때문에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한다거나 책임지지 못할 말을 내뱉고 후회하는 등의 케이스다. 더 나아가 술기운 때문에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하고 사고를 치기도 한다. 감정노동을 하므로 어떻게 보면 술과 더 가까울 수 있는 직업. 하지만, 술버릇 관리 잘 못하다가는 금세 나락으로 떨어지기 마련이다. 얼굴을 드러내고 살아가는 직업을 가진 것도 어차피 본인 스스로의 선택에 의한 것일테고 그렇다면 철저한 자기관리를 통해 프로페셔널의 모습을 보여주는 쪽이 더 현명하다.

# 김지수, 그놈의 술이 문제
최근 배우 김지수는 영화 '완벽한 타인'의 홍보를 위해 마련된 매체 기자들과의 인터뷰 자리에 만취 상태로 나타나 물의를 빚었다. 약 40분 가량 지각한 상태에서 자리에 앉자마자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혀가 꼬여 제대로 대화가 진행되지 못했다. 현장에 있던 취재진이 인터뷰 진행이 힘들 것 같다고 말하자 "기분 나쁘냐?"라고 맞받아쳐 분위기를 싸늘하게 만들었다. 결국 인터뷰는 무산됐고, 김지수는 관계자들에 이끌려 현장을 떠났다. 앞서 김지수 측은 '현장 매니저가 연락 두절돼 김지수가 직접 택시를 타고 오고 있다' 등의 변명으로 일단 상황을 무마하려 했지만 김지수가 심각한 수준으로 취해있어 결국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갔다.
김지수 소속사 측은 약 7시간 여 만에 사과문을 내놨는데 내용을 간략히 정리해보면 이렇다. '완벽한 타인'의 시사회 이후 좋은 평이 많이 나와 기분 좋게 뒷풀이 자리까지 갔으며 이 자리에서 술을 마시다 컨디션이 나빠져 문제가 발생했다는 말이다.
술자리 자체도 '오랜만'이라고 표현했는데 이건 앞서 김지수가 저지른 두 차례의 음주운전 사건을 의식한 듯 보인다. 김지수는 지난 2000년 무면허 상태에서 음주운전을 하다 인도 경계석을 들이받고 경찰에 걸려 논란의 중심에 섰다. 그리고 2010년에는 음주운전을 하다 택시를 들이받고는 자리를 떠나 또 한번 비난의 대상이 됐다. 말 그대로 음주 뺑소니 사건이다. 단아하고 차분한 이미지와 달리 의외로 음주운전 사고로 두 번이나 문제를 일으켰으니 소속사 입장에서 어쩔수 없이 '오랜만'의 술자리였다는 말까지 썼는데 결국은 이 변명이 상황을 더 구차하게 만들었다.
이후 김지수는 '완벽한 타인'의 모든 홍보 스케줄에서 제외됐다. 물론 '완벽한 타인'이란 영화는 김지수 한 명 때문에 이미 부정적 이미지가 생겨버린 뒤다. 이서진과 조진웅, 유해진, 염정아 등 쟁쟁한 배우들이 대거 출연해 눈길을 끄는데다 독특한 소재와 꽤 탄탄한 내러티브로 호평을 끌어내고 있던 가운데 발생한 일이다. 자신의 출연작 홍보를 스스로 망쳐버리는 주연배우라, 흔치 않은 일이다. 사실상 쓰리아웃 상황인데 어쨌든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은 케이스가 아니라서 활동에 큰 지장은 없을 듯 예상된다. 다만 앞으로 매체 기자들이 좋은 기사를 써주는 경우는 극히 드물 것 같다. 김지수가 발군의 연기를 보여주지 않는 한.

# 윤제문, 음주운전에 음주 인터뷰
김지수에 앞서 윤제문도 술 때문에 여러 사람 힘들게 만들고 그 스스로 나락으로 떨어졌던 인물이다. 본인이 그렇게까지 생각하고 있는지는 물론 모르는 일이다.
윤제문이 음주운전을 하다 적발된 사례만 3건. 2010년, 2013년, 2016년에 걸쳐 세 차례 음주운전으로 문제를 일으켰다. 음주운전으로 수차례 논란의 중심에 서면서도 꾸준히 연기활동을 하긴 했는데, 주연급으로 나선 경우에는 매체와의 접촉을 피할 수 없으니 이런 문제적 인물에게 있어 난감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결국엔 지난해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 '아빠는 딸'의 개봉 전 언론 시사회에서 검은 정장 차림으로 90도 인사를 하며 사죄의 말을 남겼다. 세 번째 음주운전 사고 이후 9개월 정도가 지난 시점이었다.

그런데 꽤나 진심이 느껴지는 듯 보였던 이날의 사과는 얼마 지나지 않아 수포로 돌아갔다. 윤제문이 인터뷰 자리에 만취 상태로 나타나 기자들과 실랑이를 벌인 게 문제였다. 술 냄새를 풍기며 모자를 푹 눌러쓴 채 인터뷰 석상에 앉은 윤제문은 만사가 귀찮은 듯 단답식으로 질문에 답했고 무성의한 태도에 쉬는 게 좋겠다고 권유한 기자들 앞에서 "그만 합시다"라고 소리 높이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버렸다. 그러고는 현장에 있던 관계자들에게 인터뷰 모두 취소하라고 소리 지르고 기자들을 보며 "기사 쓰라고 해"라며 시비 거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연기 잘 하는 배우라고 해서 술 먹고 저지르는 실수가 모두 용납되는 건 아니다. 사석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이나 술버릇까지 문제삼을 건 아니지만, 이렇게 대놓고 공식석상에서 문제를 일으키면 말이 달라진다. 또 하나 안타까운 일은 마침 술 하나로 번번이 문제 일으키는 김지수, 윤제문 두 배우의 소속사가 같다는 사실이다. 소속사 관계자들이 무슨 죄인가.
# 자기 관리 철저해야 배우 생명 지속돼
프로페셔널이 '꼭 해야할 일'과 '하지 말아야할 일'을 구분 못하고, 또는 '센 척' 해도 될 때와 그렇지 못할 때를 혼돈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자기 잘난 덕분도 있겠지만 결국엔 대중의 지지를 등에 업은 채 하고 싶은 일을 지속하고 부를 축적하는 배우들은 특히나 자기 관리에 철저해야 한다. 물론 인간적인 관점에서 술주정 정도는 이해해 줄 수 있겠지만 술 먹고 운전대를 잡는다거나 공식석상에서 사고를 치는 등의 행위를 저지르고 자비를 바라는 건 망종의 극치다.
술버릇 고약한 배우들은 사실 연예계에 즐비하다. 이름만 들어도 놀랄만한 톱스타급도 여럿인데 그중에서는 취하면 마주 앉은 대상에게 시비를 걸고 주먹다짐하는 술주정으로 유명한 인물도 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매번 술자리에서 주먹질을 하거나 얻어맞는 일이 생기는데도 일에 있어서는 철저해 적어도 공식석상에서는 완벽한 프로페셔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과거 한 여배우는 술에 절어 꼭 가야할 공식행사 자리에 참석하지 않았는데, 당시 소속사에서 임기응변을 발휘해 이 여배우를 아픈 사람으로 둔갑시켰다. 이 사실을 아는 사람도 극히 드물었으며 또 일부 매체에 알려진 뒤에도 기사화되진 않았다.

김지수 역시 소속사에서 미리 빼돌려 차라리 인터뷰 현장에 나타나지 못하게 잘 막았더라면 최소한 난감한 술버릇으로 인해 비난을 듣진 않았을 것이다. 술 덜 깬 김지수를 막지 못한 소속사 관계자들을 탓하는 게 아니다. 다행히도 술에 취해 행사를 펑크내고도 무사했던 모 여배우, 그리고 술자리에서 주먹질을 하면서도 알려지지 않은 그 톱스타를 옹호하는 것이 아니다. 사석에서 술을 먹고 성질을 부리는 것까지야 어떻게 하겠냐마는 공식석상에서까지 물의를 일으켜선 안 된다는 말이다. 주연급 배우가 홍보의 의무를 저버리고 자신의 출연작에 찬물을 끼얹는 말도 안 되는 행동을 하는 건 프로답지 못하다는 말이다. 차라리 술 때문에 행사에 못 가겠다고, 소속사 관계자들에게 둘러대고 알아서 막아달라고 했던 그 여배우가 차라리 낫다. 앞서 얘기한 그 여배우와 술 먹고 주먹 잘 쓰는 그 톱스타는 최소한 음주운전은 안 했다.
정달해(대중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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