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김병준의 꿈

박병선 논설위원
박병선 논설위원

"처음 대화를 나누다 보면 합리적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말솜씨가 대단하고 인간관계도 좋지요. 유머 감각까지 갖췄습니다."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만나본 사람들의 일반적인 평가다. 김 위원장은 정치인이라면 갖춰야 할 덕목을 두루 겸비한 인물로 보인다. 교수 출신답지 않은 유연함과 폭넓은 안목까지 갖고 있기에 미래가 기대되는 정치인이었다. 경북 고령 출생으로 대구상고영남대를 졸업한 지역 출신에, 고향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대단한 것도 강점이었다.

그가 지난 7월 한국당 비대위원장에 영입되자, 김병준의 미래를 그리는 이들이 하나둘 생겼다. 본인이 '대망론'을 입에 담은 적은 없다. 그렇지만, 그의 지인들은 그가 대권을 꿈꾸고 있다고 했다. 노무현 정부 때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일했고, 박근혜 정부 막판에 국무총리로 지명받았으니 꿈꿀 자격은 충분했다.

며칠 전만 해도 대권 쟁취는 몰라도, 도전에 나설 가능성은 없지 않았다. 지난달 초 전원책 변호사를 조직강화특별위원에 전격 영입할 때만 해도 호시절이었다. 별다른 역할을 못 한다고 비판받던 와중에 전 변호사 영입을 통해 단번에 여론을 바꿨으니 승부사 기질까지 있는 듯했다.

지난 9일 전 변호사를 조강특위 위원에서 해촉하면서 김병준의 이미지도 함께 무너졌다. 한국당의 인적 쇄신이 물 건너간 듯 보였기 때문이다. 그의 위기관리 능력은 낙제점을 받았고, 지도력마저 치명상을 입었다. 이런 상태에서 내년 2월 비대위원장 임기가 끝날 때까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가 올 초 인터넷 신문에 34년 전 교수 생활을 시작할 때를 회고하며 쓴 기고다. "이문열의 소설 '필론의 돼지'가 생각났다. 현자(賢者) 필론을 태운 배가 큰 폭풍우를 만났다. 모두 우왕좌왕, 아수라장이 되었건만 바닥에 누운 돼지 한 마리는 세상 모른 채 자고 있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필론, 그는 돼지에서 자신의 모습을 본다."

그가 34년 전에는 정권의 폭압에 의해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자신의 욕심과 실책에 의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될지 모른다.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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