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에세이 산책] 가을바람

김일광 동화작가

김일광 동화작가
김일광 동화작가

간밤에 잠을 설쳤다.

가을바람치고는 제법 세게 불었다. 나뭇가지를 흔드는 소리도 그랬지만 바람이 몰고 다니는 낙엽 구르는 소리에 문득문득 잠을 깨곤 했다.

일찌감치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텃밭 구석에는 바람이 몰아다 놓은 낙엽이 자욱했다. 아직 묶지 않은 배추들을 들여다보았다. 찬바람과 맞서서 더욱 푸른 얼굴을 하고 있다. 그 곁에는 아직 가녀린 양파가 줄기를 바람에 맡기고 있다. 바람 찬 겨울을 이기고 나면 더욱 매운맛으로 봄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나뭇가지는 눈에 띄게 앙상했다. 키 낮은 가시오가피 빈 가지 사이로 뭔가가 눈에 들어왔다. 손바닥 하나를 오므린 크기의 작은 새집이었다. 일 미터 남짓한 높이에 새집이 있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나의 의심을 알아챘다는 듯 아기 새 깃털 한 점이 바람을 타며 파르르 손짓을 보냈다. 얼마 전까지 살았음이 분명했다. 가만히 손을 얹어 보았다. 고물고물 아기 새의 움직임과 체온이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그런데 바로 그 나무 밑은 길고양이들이 수시로 드나드는 곳이었다. 길고양이가 마음만 먹으면 큰 힘 들이지 않고도 앞발이 충분히 닿을 수 있는 지점이었다. 그런데 용케도 그곳에 터를 잡고 오가피의 잔가지와 가지를 끌어당겨서 집을 매달았다. 그곳에서 작은 어미 새는 알을 낳고, 품어서 새끼를 얻었다. 어미 새는 사람과 길고양이와 매들의 눈을 피하여 몰래몰래 드나들며 새끼를 키웠으리라. 드나드는 것도 조심스러웠을 것이며, 소리조차 감추어야 했을 것이다. 무성한 잎에 집을 숨기고, 오가피의 잔가시를 울타리 삼아서 예쁜 새끼들을 먹이고 지켜냈다. 새집을 들여다보니 어미 새와 아기 새 사이에 이루어졌을 아름다운 동심의 교류가 그림처럼 가슴에 와 닿는다. 우리 모두는 제각기 가슴 밑바닥에 흐르는 동심을 잊고 있다. 하찮게 여기는 동심이 어쩌면 우리에게 다시 인간다운 삶을 돌아볼 용기와 힘을 줄지도 모른다.

찬바람이 불어 잎이 다 떨어지기 전에 어미 새는 아기 새를 데리고 겨울을 보낼 따뜻한 곳으로 거처를 옮겨 갔다. 나뭇잎이 찬바람에 떨어지듯이 지난 계절 동안 생명을 품어준 새집도 바람에 흩어져 갈 것이다. 자연의 신비다. 자연은 가르치려 들지 않아서 좋다. 온몸으로 느끼게 하는 게 참 좋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기 새들은 어느 하늘에서 날고 있을까.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시간의 운행이 느껴진다. 바람이 음악처럼 흐른다. 바람과 시간의 흐름이 가슴을 적신다. 아기 새가 되어 엄마의 육아낭에서 잠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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