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남북회담 만찬장 장식한 '두무진에서 장산곶' 작가 신태수, 다시 서해 5도 찾아 평화를 그리다

삭막한 군 시설 사라져가는 서해 5도 찾아 화폭에 담아
4년 만에 찾은 바다는 평화가 흐르고

남북회담 만찬장 장식한
남북회담 만찬장 장식한 '두무진에서 장산곶'의 신태수 작가가 그림을 그리기 위해 서해 5도를 4년 만에 다시 찾았다. 곳곳에서 철책이 걷어져 4년 전보다 더 높고 넓은 시야로 풍경을 바라볼 수 있었다. 신태수 작가 제공
서해 5도를 4년 만에 다시 찾아 그린
서해 5도를 4년 만에 다시 찾아 그린 '서해, 두무진에서 장산곶'. 신태수 작가는 남북회담 만찬장에 걸린 그의 그림은 평화를 염원한 것이며 지금 자신의 뒤편에 걸린 그림은 평화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태수 작가 제공

"다시 본 서해 5도 바다가 그렇게 평온할 수 없었습니다. 마치 기다린 날이 온 것처럼…."

남북회담 만찬장을 장식한 '두무진에서 장산곶'을 그린 신태수(56) 작가는 최근 4년 만에 이 그림의 배경이 된 서해 5도(백령도·대청도·소청도·연평도·우도)를 찾았다.

신 작가가 다시 찾은 서해 5도는 그림을 그렸던 4년 전 모습과는 달랐다. 섬 곳곳의 철책이 걷어지고 군 시설과 민간인통제구역에서 지뢰 제거 작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초소경계를 서고 있어야 할 군 진지(陣地)들은 이미 사라지거나 철거되고 있었고 마을 곳곳이 여느 평온한 어촌마을로 변하고 있었다.

서해 5도는 불과 몇 년 전만해도 남북이 갈라져 있는 아픔의 상징이었고 총성이 오가며 싸워온 상흔이었다. 1999년과 2002년 두 차례 걸쳐 북한군이 서해 연평도 인근 북방한계선(NLL)을 넘어 대한민국 영해를 침범해 연평해전이 일어난 곳이며 이 해전에서 당시 안타까운 우리 해군 장병 6명이 전사하고 19명이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 또한 북한이 연평도에 170여 발의 포탄을 퍼부어 민간인 2명을 포함한 4명의 사망자와 26명의 부상자를 낸 '연평도 포격'이 23일이면 8주년을 맞는다.

2012년 신 작가가 처음 서해 5도를 찾았을 때 그 역시 이 바다에 대해 두려움과 암울함을 느꼈다고 한다. 그는 남북이 보이지 않는 경계를 바다에 그어놓고 누구도 넘어오지 못하게 그 바다에 총구를 겨누고 있었던 모습이 안타까웠다고 한다. 결국 그는 2014년, 1년 동안 서해 5도에 살면서 곳곳의 풍광을 화폭에 담아 이곳이 분단의 상징이 아닌 희망과 평화의 상징으로 다시 태어 날 수 있도록 노력했다.

서해 5도를 떠난 그는 그곳에서 그린 작품들의 전시회를 열고 서해 5도의 상징과 그 의미를 알리기 위해 관람객을 만났다. 그가 전시회를 연 이유는 단 하나. 서해 5도가 '평화의 바다'로 다시 태어나길 염원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올해 그가 그린 그림 중 '두무진에서 장산곶'이 4·27 남북정상회담 만찬장에 걸리게 됐다. 그는 그 모습을 보고 감동했고 서해 5도를 다시 찾아보기로 결심했다.

"4년 전에는 통제 때문에 더 깊이는 들어가지 못했는데 지금은 많이 달라졌더라고요."

신 작가는 4년 전 그가 그린 작품의 시선을 따라 다시 붓을 잡았다. 철책이 걷어져 4년 전보다 더 높고 더 넓은 시야로 두무진과 장산곶, 구지도, 모이도 등을 바라볼 수 있었다.

그는 작업실이 있는 안동에서 인천까지 왕복 500㎞가 넘는 길을 6개월 동안 수십번을 오갔고 뱃멀미약 때문에 탈수로 며칠 앓아누우면서도 손에서 붓을 놓지 않았다.

현장 느낌을 살리기 위해 바닷바람이 거센 돌 틈에 웅크려 그림을 그리기도 했고 작업을 하다가 배 시간을 놓쳐 마을 곳곳에서 쪽잠을 자기도 했다. 그 결과 그는 '서해, 두무진에서 장산곶' 등 10여 점의 작품을 다시 탄생시켰다.

그는 현재 새롭게 그린 그림으로 인천에서 전시회를 열고 있으며 다음 달쯤 안동에서도 전시회를 계획하고 있다.

그는 "먼 훗날 통일이 된다면 그때 서해 5도를 위해 즐겁게 붓을 다시 잡고 '행복의 바다'를 그리고 싶다"며 "서해 5도가 춤추는 그 날을 빨리 보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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