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2018년 제4회 시니어 문학상 논픽션 부문 당선작]③노병의 증언/ 김길영

일러스트 전숙경(아트그룬)
일러스트 전숙경(아트그룬)

내가 속한 부대는 철원 북방지역을 향해 돌진 했다. 임진강 발원지인 고암산을 넘어 마식령산맥 남단에 있는 이천(伊川)에 도착한 후 이틀간 휴식을 취했다. 중부전선은 험준한 산악지역으로 승차이동이 불가능하여 오직 도보로 북진하는 수밖에 없었다. 보급품이 최전선에까지 도착하지를 못해 며칠씩 굶다보니 병사들은 지쳐 있었다. 수송용으로 끌고 다니던 소를 잡아 끼니를 때우는 비참한 광경도 벌어졌다. 채전 밭에서 무를 뽑아먹기도 하고, 산길 행군 중에는 소나무 껍질을 벗겨 먹었다. 전쟁이라는 게 그런 것이었다.

아군이 북진을 거듭할 때 적군은 맞서 싸우기보다 장기 매복 작전에 들어갔다. 좀체 나타나 싸우고자하는 기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 부대는 터진 봇물같이 돌진에 돌진을 거듭했다. 부대에 결손이 생기면 바로바로 병력을 보충해 주었다. 병력이 손실되고 보충되는 일이 잦다보니 누가 선임 병이고 누가 후임 병인지 헛갈리는 경우도 있었다. 잠시 조용한 틈을 타 부대원들을 돌아보았다. 처음 출발할 때 인원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고향친구 박준영이 유일하게 내 옆을 지켜주었다.

▶ 국경선 초산

50년 10월 16일. 국경선 초산까지 어느 부대가 먼저 들어가느냐 내기하듯이 시간을 다투었다. 실제로 압록강 강물을 어느 부대가 먼저 이승만 대통령에게 바칠 것인가 내심 경쟁 중이었다. 평양을 왼편으로 끼고 대동강을 따라 승호. 심동. 강동을 거쳐 밤늦게 성천 강변에 있는 북한 인민학교에서 야영준비를 했다.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여서 기습공격을 받을 경우 속수무책으로 당할 지형이었다. 부대는 경비병을 배로 늘리고 기습공격에 대비했다. 밤 열시쯤에는 날씨가 몹시 추웠다. 폭격으로 파괴된 가옥 폐자재와 학교주변의 울타리를 뜯어와 운동장 대여섯 군데에 모닥불을 피웠다. 모닥불이 타오르면서 갑자기 동시다발로 폭발물이 터지기 시작했다. 일시에 야영장이 아수라장으로 변해버렸다. 어느 모닥불에서는 5,6명이 목숨을 잃었고 10여명이 부상을 입었다. 넓은 운동장 전체가 피로 물드는 것 같았다. 이 순간 경비병이 배치된 곳에서는 격전이 벌어졌다. 적의 1개 중대는 부대가 야영하고 있는 진지를 향해 중화기와 따발총으로 공격해오고, 거기에 박격포 포탄이 떨어져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사상자가 늘어났다.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전열을 재정비하고 적을 쫓아 나섰다. 패주하는 적을 추격했는데 그 소탕작전이 이튿날 새벽까지 이어졌다. 기습공격을 당한 인민군은 성천군 일대에서 사복으로 위장하고 동굴이나 빈 가옥에 숨어 있었다. 16연대는 도주하는 인민군 일당과 숨어 있는 패잔병들을 샅샅이 뒤져 3백5십여 명을 생포하여 상급사단으로 후송 조치하는데 성공 했다.

▶함정에 빠지다

한편 억류하고 있던 군관 몇 명을 심문한 결과, 지형적으로 국군이 이곳에서 야영할 것이라는 정보를 토대로 인민군 1개 중대 병력을 사복으로 갈아입혀 산속에 배치했다는 것이다. 사복으로 갈아입은 그들은 주민으로 위장하고 우리 부대가 이곳에 당도하기 전에 이미 대기하고 있었다. 주민을 가장한 몇몇 사람들이 가까이 다가왔다. 그들의 손에는 태극기가 들려 있었고, 우리 부대를 향해 환영한다는 모양새를 보였다. "우리는 대한민국을 지지 합니다." "쌍수 들어 환영합니다." 능청스럽게 외쳐댔다. 몇몇은 대한민국만세를 삼창까지 외치곤 천연덕스럽게 눈물을 글썽거리기도 했다. 인민군을 향해 온갖 욕설을 퍼붓던 그들이 폭발물을 장치하리라곤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영천전투에서 살아남아 2천리를 북상하던 전우들이 목숨을 많이 잃었다. 우리부대는 북진을 거듭하면서 감격에 도취되어 있었다. 전술전략도 허술했다. 항상 경험을 먼저하고 후회가 뒤따랐다. 패주하는 그들이 그런 묘책까지 쓸 줄은 아무도 몰랐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천의 참혹한 교훈을 깊이 새기기로 했다.

▶북진! 북진!

국군이 북진하면서 성천전투 다음 큰 저항을 받지 않았다. 작전명령은 선발사단인 우리부대에게 중국과 접해 있는 국경선까지 북진할 것을 거듭 명령했다. 우리 8사단은 묘향산맥의 험준한 북창을 거쳐 맹산에 도착하고 고원지대인 덕천을 순차로 점령했다. 그 일대 잔당을 소탕하라는 작전에 돌입했다. 묘향산맥의 백산. 영원 등 깊은 골짜기 일대를 수색하면서 산발적인 교전이 있었다. 교전 때마다 많은 전과를 올렸다. 험준한 고산지대에서 패주하는 적을 찾아낸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작전이 아닐 수 없었다. 쫓기는 자와 쫓는 자, 생목숨을 담보로 하는 싸움이다. 피아를 막론하고 먼저 발견한 쪽에서 승리하게 되어 있다. 쫓기는 자가 불리할 수밖에 없는 것은 지휘계통이 무너져 있고, 무엇보다 중요한 사기(士氣)가 떨어져 있으며, 각종 무기와 장비를 보급 받지 못한 약점이 있었다. 소탕작전은 4일 만에 종결짓고 우리부대는 평안남도 도경계를 넘어 청천강 상류 강변에 위치한 구장(球場)에 도착했다. 작전명령을 기다리며 보급품과 장비검열을 받았다. 전투 없는 휴식이 며칠간 지속되었다. 못다 잔 잠도 실컷 잤다. 생사를 넘나들기를 반복하다가 모처럼 한가한 시간이 주어졌는데도 머릿속에서는 죽은 동료가 눈에 아른거렸다. 바위틈에서 고개 내민 인민군 병사를 내가 먼저 발견하고 사살해버린 일들이 순간 스쳐갔다.

▶작전하나

50년 11월 13일. 우리부대는 청천강 건너 북방으로 30킬로미터 지점에서 운산. 회천을 연결하는 방어선에 배치됐다. 이 전선이 바로 중공군을 격퇴하라는 방어선이었다. 진지 참호 속에서 적을 기다리던 중 작전하나가 떨어졌다. "부대원 중에 일본 말 할 줄 아는 사람은 일본 말을 하라."는 지시였다. 아마 중공군이 일본군을 겁낸다는 데서 나온 심리작전으로 생각했다. 당시 정황은 유엔군이 제공권을 장악하고 있었다. 운산과 회천지역에 B26, B29폭격기 등 폭격기를 총 출동시켜 밤낮으로 중공군 남하지역을 연일 폭격했다. 참호 속에서 포탄이 떨어지는 광경을 지켜본 나는 곧 전쟁은 끝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렇게 쏟아 붓는 포탄에 살아남을 자가 있을까 싶었다. 벌써 마음은 고향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전선은 아군의 집중 포화로 중공군 야간 공습이 1주일 정도 주춤했다.

<12월4일 자 시니어문학상 면에는 논픽션 당선작이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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