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사랑에도 균형이 필요하다

김정희 대구사이버대 상담심리학과 외래교수

1년 전 그와의 만남은 유난히도 아픈 만남이었다. 내 곁을 떠난 사촌동생의 미소와 닮아서인지, 만족스러운 효과를 보기 전에 상담이 중단되어서인지 모르지만, 지금도 마음 한 편에 자리잡고 있다.

김정희 대구사이버대 상담심리학과 외래교수
김정희 대구사이버대 상담심리학과 외래교수

그에 대한 특별한 기억은 소리없는 눈물과 붉어진 콧망울 그리고 가끔 짓는 억지웃음이다. 그 웃음이 자신을 달래는 자기 위안이었는지, 듣는 이가 걱정할까봐 애써 웃어주는 것 인지 알 수 없으나, 미소짓는 모습에 내 마음마저 애잔했다. 아픈 사연을 아무도 모를 만큼 해맑은 얼굴을 하면서 사람들 사이를 이리저리 분주하게 다녔다. 모든 결과가 자신이 부족한 탓이라며, 자기개발서를 교본 삼아 스스로를 채찍질하면서 말이다. 아무도 없는 곳이나 모두가 잠든 밤이 되어서야, 자신의 힘듦과 외로움을 들여다봤다. 무엇이 이토록 혹독하게, 무엇이 이토록 그를 외롭게 하는 걸까.

그를 생각하면 영화 '밀리언 달러 베이비'가 떠오른다. 영화의 주인공은 여자 복싱선수. 복싱을 하겠다며 체육관에 들어선 그녀는 푸대접을 받는다. 그리고 여느 영화처럼 혹독한 자기관리와 함께 훌륭한 코치를 만나면서 성공한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이 영화는 성장과 행복한 결말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녀의 성공은 자기 성장이 아니라 가족의 희생양으로 살아온 결과이기 때문이다.

가족애로 시작한 주인공의 자발적인 노력은 성공이라는 문을 통과하면서, 파렴치한 가족을 위한 과도한 자기희생으로 변한다. 어쩌면 영화의 제목 '밀리언 달러 베이비'는 가족의 소중한 아기가 아닌, 경제적 가치의 존재일 뿐이라는 씁쓸한 메시지를 전하는지도 모르겠다. 마치 아침드라마 제목인 '큰언니'와 같은 느낌이랄까.

이처럼 왜곡된 가족애는 자신과 가족을 아프게 한다. 예를 들면 부부애가 모성애보다 강할 때, 든든한 보호자의 부재로 자녀는 사회적응이 어려워지고 높은 불안을 갖게 된다. 가족보다 개인의 삶을 더 중시하는 젊은 부부 사이에서 볼 수 있다. 또 효도가 모성애보다 강할 때, 한국 사회의 바람직한 자녀상으로 강화되면서 어느 순간 부모와 자녀의 위치가 바뀌는 경우도 있다. 나약한 부모를 보살피는 영화의 주인공처럼 말이다.

억지웃음의 그는 어머니의 희생과 보살핌에 대해, 사회적으로 훌륭한 사람이 되어 효도하고자 애쓰는 경우이다. 폭군 아버지로부터 생존한 동지애를 가진 두 모자는 자신을 돌보기보다 서로를 위해 살아왔다. 그를 살리기 위해 어머니는 청춘을 다 받쳤을 것이다. 어머니에게 효도하고자 하는 마음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러나 자기 돌보기가 없는 이타적인 사랑은 겉으로 억지웃음을 보일 뿐, 남모르는 외로움과 힘듦을 숨기게 되는 불균형을 만든다.

사랑에도 질서와 균형이 필요하다. 일방적인 짝사랑은 때론 낭만적이고 애틋하지만 완전한 사랑일 수 없다. 건강한 가족 만들기는 가족간의 위계질서 속에서 자신과 가족 돌보기가 균형을 이룰 때 비로소 가능해지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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