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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항제련소 용광로 폐쇄 29년째… 아직도 피해보는 주민들

1989년 용광로가 폐쇄된 충남 서천군의 장항제련소 굴뚝 모습. 현재 제련소 반경 4km 기준으로 토양정화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msnet.co.kr
1989년 용광로가 폐쇄된 충남 서천군의 장항제련소 굴뚝 모습. 현재 제련소 반경 4km 기준으로 토양정화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msnet.co.kr

충청남도 서천군 장항읍 장항리에 세워진 장항제련소. 1936년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광물자원의 수탈을 위해 세운 조선제련주식회사가 장항제련소의 전신이다.

이곳은 해방 이후에도 '장항제련소'로 이름을 바꿔 국·민영으로 운영되면서 경제개발의 동력이 되기도 했지만, 70여년의 운영 끝에 남은 것은 중금속으로 심각하게 오염된 토양뿐이다.

주민들은 제련소 때문에 발생한 질병으로 신음했고, 작물에선 중금속이 검출돼 전량 폐기됐다.

현재는 수천억원대의 예산이 투입돼 오염지역에 대한 정화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다.

매일신문은 봉화 영풍석포제련소와 닮은 장항제련소를 찾아 제련소 사업의 문제점과 실태에 대해 들여다 봤다.

◆자랑거리에서 재앙이 된 장항제련소

18일 찾은 충남 서천군 장항제련소는 뚝 떨어진 기온 만큼이나 썰렁하고 적막했다.

주로 금과 구리, 납 등을 제련하던 국내 유일의 비철금속 제련소였던 장항제련소는 1936년 설립 당시에는 연간 1천500t의 소규모 제련 능력을 갖추고 있었지만, 해방 이후 계속 확장됐다. 1976년에는 5만t으로 생산 규모를 늘렸고 검은 연기를 내뿜는 제련소 굴뚝과 함께 장항은 점점 활기를 띠었다.

식당에서 만난 마을 한 주민은 "제련소가 있을 때만 하더라도 인구가 6만명을 넘었다. 예전 중·고등학교 사회 교과서에 근대 산업화의 상징으로 장항제련소가 실릴 정도로 마을의 큰 자랑거리였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마을의 자랑거리였던 장항제련소는 어느 새부턴가 이상징후를 나타냈고, 이제는 마을 주민들의 '철천지원수'가 됐다.

주민 A(68) 씨는 "집밖에 빨래를 널어놓으면 어른 손톱만 한 이상한 덩어리가 붙어 빨래를 널기는커녕 창문도 열어 놓지 못할 정도였다"며 "콩이나 작물은 다 자라기도 전에 시들어 버렸고 어느샌가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지역까지 생겨났다"고 설명했다.

18일 오후 충남 서천군 장항읍 장항리에 한 시민이 길을 걷고 있다. 그 앞으로 1989년 용광로가 폐쇄된 장항제련소 굴뚝이 보인다. 김영진 기자 kyjmaeil@msnset.co.kr
18일 오후 충남 서천군 장항읍 장항리에 한 시민이 길을 걷고 있다. 그 앞으로 1989년 용광로가 폐쇄된 장항제련소 굴뚝이 보인다. 김영진 기자 kyjmaeil@msnset.co.kr

마을의 재앙이 된 장항제련소 탓에 제련소 인근 주민들은 대대로 살아온 집을 남겨둔 채 떠나야 했다. 이 때문에 제련소 주변에는 오후 시간에도 일하는 농민들을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특히 벽지 마을에 가면 으레 들려오는 동물들의 울음도 이 마을에선 들리지 않았다.

◆정화작업에도 불편과 피해는 여전
장항제련소 인근 농경지는 1급 발암물질인 비소와 이타이이타이병을 유발하는 카드뮴 등 유해한 중금속으로 오염돼 지역사회를 넘어 국가적인 토양오염 문제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 환경부는 지난 2009년 토양오염 개선 종합대책을 수립해 4천여억원의 사업비를 투입, 장항제련소 인근 4㎞ 구간에 대한 토양정화사업을 벌이고 있다.

18일 오후 충남 서천군 장항읍 장항리 인근에 포크레인이 오염토 굴착작업을 하고 있다. 장항제련소 반경 1.5km 구역은 중금속 종합오염지역으로 국가가 토지를 매입해 토양정화작업을 하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msnet.co.kr
18일 오후 충남 서천군 장항읍 장항리 인근에 포크레인이 오염토 굴착작업을 하고 있다. 장항제련소 반경 1.5km 구역은 중금속 종합오염지역으로 국가가 토지를 매입해 토양정화작업을 하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msnet.co.kr

그러나 주민들은 여전히 농작물에서 중금속이 검출되고 있다며 불만과 함께 불안감을 토로하고 있다.

농산물품질관리원에 따르면 장항제련소 인근에서 재배되는 일부 농산물에서는 중금속이 검출되는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일부 농산물에서는 중금속이 과다 검출돼 '식용 부적합' 판정까지 받는 것으로 확인됐다.

인근 주민들은 장항제련소로 인한 토양오염은 4㎞ 이상에 걸쳐 진행됐기 때문에 정화범위를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18일 오후 충남 서천군 장항읍 장항리 인근에 포크레인이 오염토를 굴착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장항제련소 반경 1.5km 구역은 중금속 종합오염지역으로 국가에서 토지를 매입해 토양정화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토양 깃발은 중금속 정도에 따라 여러색깔로 표시하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msnet.co.kr
18일 오후 충남 서천군 장항읍 장항리 인근에 포크레인이 오염토를 굴착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장항제련소 반경 1.5km 구역은 중금속 종합오염지역으로 국가에서 토지를 매입해 토양정화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토양 깃발은 중금속 정도에 따라 여러색깔로 표시하고 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msnet.co.kr

주민 B(71) 씨는 "장항제련소가 가동될 때는 장항읍은 물론 인근 서천, 기산, 마서, 종천에서도 농산물이 고사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는데 제련소 부근 4㎞ 토양만 오염됐다며 정화하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이에 대해 한국환경공단 측은 "법에 명시된 토양의 중금속 안전 수치 이하로 정화하고 있기 때문에 소량의 중금속이 남아 있을 수 있다. 또 벼는 비소를 빨아드리는 성질이 있어 검사 과정에서 중금속이 검출되는 경우가 있다"며 "정화구역 범위는 환경부의 토양 정밀조사 지침에 의해 선정됐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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