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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부] 홍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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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향래 논설위원
조향래 논설위원

1960, 70년대만 해도 홍역을 앓다가 속수무책으로 죽는 아이들이 많았다. 홍역을 흉한 귀신의 장난으로 여겼던 어머니들은 장독대 앞에 정화수 한 그릇을 떠 놓고 어린것의 쾌유를 빌고 또 빌었다. 옛날에는 홍역이 유행하면 한 집 건너 한 아이는 앓다가 거의 죽다시피 했으니 마을 산 중턱에 아총(兒塚)이 흔했다.

마진(痲疹)이라 불렸던 홍역은 치료제가 개발되기 전에는 이렇게 공포와 외경의 대상이었다. 몹시 곤욕을 치르거나 어려움을 겪었을 때 쓰는 '홍역을 치렀다'는 말이 생긴 연원이다. 홍역에 대한 우리의 첫 역사적 기록은 삼국사기이다. 고려 때도 홍역이 널리 유행했다는 기록이 있고, 조선 시대에는 홍역이 창궐할 때마다 1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죽었다고 한다.

'조선, 홍역을 앓다'는 조선 후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의 홍역 치료 역사를 다룬 책이다. 전통의학을 통해 홍역과 맞섰던 인물과 그들이 남긴 문헌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마과회통'도 그때 나온 홍역 전문 의서이다. 홍역은 1879년 지석영이 종두 사업을 본격 시행하면서 감소 추세를 보였다. 1962년 홍역 백신을 소개하고 대대적인 예방접종을 실시하면서 홍역은 마침내 공포의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미국의 경우도 남북전쟁 당시 홍역이 수천 명의 목숨을 앗아가며 부대 단위가 해체되기도 했다.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스칼렛의 첫 남편이 참전하자마자 세상을 떠나는 장면도 그래서 나온 것이다.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는 홍역을 앓는 자녀를 돌보느라 혁명의 성난 물결에 적절한 대응을 못 해서 쫓겨나고 말았다고 한다.

꺼진 불도 다시 보라고 했던가. 최근 홍역이 되살아나면서 방역 당국을 긴장시키고 있다. 특히 20, 30대 감염자가 많은 것은 1회 접종에 그친 세대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대구에서 첫 확진자가 신고된 후 홍역이 전국으로 확산되는 추세이다. 그야말로 또다시 '홍역'을 치르지 않으려면 개인이건 당국이건 예방에 허점이 없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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