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마약공화국'

이대현 논설위원
이대현 논설위원

마약 투약 혐의로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손자가 구속됐다. 하늘에서 손자를 내려다보며 정 명예회장이 이렇게 한탄할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물려준 돈이 독(毒)이 됐구나!"

한국이 '마약공화국'으로 전락했다. 인구 10만 명당 마약 사범이 20명을 넘지 않으면 유엔 범죄마약국(ODC)이 마약 청정국으로 분류한다. 우리나라는 기준선인 1만 명을 2015년부터 4년간 넘었고 올해도 초과할 것이 확실하다. 한 해 마약 사범이 1만2천 명에서 1만6천 명이나 검거된다. 최근엔 경찰이 마약 범죄 집중 단속에 나서 두 달 만에 1천746명을 검거했다.

연령, 직업을 가리지 않고 마약이 전방위로 퍼져 나간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재벌 3세와 연예인은 물론 대기업 임원, 일용직 노동자, 미취업 청년과 주부까지 마약에 빠져들고 있다. 마약 중독자가 20만~40만 명에 달하고 마약으로 인한 경제적 피해가 7조원으로 추산된다.

마약에 대해 무감각해진 사회 분위기를 보여주는 현상이 김밥과 같은 음식에 마약 수식어가 붙는 것이다. 맛있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것이지만 마약에 대한 경각심을 허물어뜨린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향정신성의약품으로 분류된 프로포폴을 성형과 미용을 이유로 유행처럼 투약하는 것도 문제다. 국민 5명 중 1명이 자신이 마약의 위험성에 노출돼 있다고 느낀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한 사람을, 한 국가를 망가뜨리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 마약이다. 마약 범람은 망국(亡國)을 불러온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는 것이 청나라다. 19세기 청나라는 마약의 일종인 아편 때문에 영국과 두 차례 전쟁하며 망국의 길을 걸었다. 당시 4억 인구의 20%가 아편에 취했다. 펄 벅의 '대지'와 영화 '연인'에서 아편 중독으로 몰락하는 중국이 생생하게 그려졌다.

1997년 IMF 외환위기, 2009년 금융위기 때 마약 사범이 크게 늘었다. 올해 1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전기대비 -0.3%를 기록했다. 10년 3개월 만의 최저치이자 1분기 기준으로는 16년 만의 마이너스다. 추락하는 경제에 대한 걱정과 함께 마약이 더욱 확산할 것으로 보여 우려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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