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호국 지워 평화 외치면…

정인열 논설위원
정인열 논설위원

"…그건 정말 눈물겨운 광경이었다. 장님의 아들이 군에 입대하는데 이웃 사람들이 전송을 나온 것이었다. 아버지가 앞을 못 보니 늘 길을 인도하던 아들이었다…눈먼 아버지는 대문을 나서는 아들을 도로 부르더니 마루 끝에 앉아서 아들의 얼굴을 손으로 만졌다…볼 수 없으니 아들의 얼굴을 손으로 만져 보는 것이다…'이 애비는 조금도 걱정하지 말고…잘 싸우래이…우째도 우리가 이겨야 하는 기라. 그래야 우리나라가 바로 서는 기라'…최인욱의 눈에서는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6·25전쟁으로 대구에 피란을 온 최인욱 작가는, 1951년 3월 9일 대구에서 처음 결성된 공군종군문인단의 덕산동 사무실로 가던 길에 본 장님 부자(父子)의 이별 장면을 잊을 수 없었고, 이는 뒷날 1983년 발간된 '한국문단이면사'에 실렸다. 부자의 재회나 후일담은 알 수 없지만 전쟁 속 대구 사람과 젊은이, 국민의 순수한 충정 사례가 될 만하다.

이 같은 가슴 저린 사연이 장님 부자만의 일일까. 3년 전쟁에 휩쓸린 모두 이런 아픔과 고통이었을 터이다. 나라 기틀이 잡히기 전 기습적인 남침인 데다 미군 철수, 북한 도발 때는 '해주에서 아침, 평양에서 점심, 신의주에서 저녁을'이라 큰소리친 이승만 정부(신성모 국방부 장관)의 무책임과 무방비의 결과였다.

특히 각료나 관료, 일부 정치인 연루의 전쟁 중 범죄, 즉 어린이 359명 등 주민 517명(뒷날 719명)을 총살한 거창 양민학살이나 5만 명(추정) 젊은이가 죽은 국민방위군 사건을 보면 국민적 희생은 거의 기적이다. 게다가 이런 치부를 감춘 정부가 외신 보도로, 마치 지난해 의성 쓰레기 산의 외신 전파로 대책에 나선 것처럼, 겨우 책임자를 추궁했으니 국민적 희생은 더욱 기릴 만하다.

이런 국민적 희생 위에 일어선 나라가 올해 6·25전쟁 70주년을 맞아 지난달 31일 '6·25전쟁 70주년 사업추진위원회'를 꾸렸다. 위원회는 '기억' '함께' '평화'의 3개 분과로 할 일을 나눴다. 정세균 총리가 공동 위원장인 이날 행사를 알린 보도자료 제목이 '평화를 위한 도약'일 만큼 평화가 부각됐다. 그러나 명심할 게 있다. 나라 지킨 호국(護國) 정신 없는 평화는 신기루와 같다. 북한을 의식한 평화 강조겠지만 호국 희생자를 기리는 일은 무엇보다 앞선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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