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오늘도 우린 관객과 놀지요"…청춘어울극단 인생 2막

"무대 서는 자체가 행복, 청춘으로 돌아간 기분"
"여단원뿐, 주로 남자역 매번 설레는 대본 리딩"
"더 큰 무대에도 서보고 싶어 기회 되면 드라마·영화 출연"

청춘어울극단 단원들이 연습에 들어가기 전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최재수 기자 biochoi@imaeil.com
청춘어울극단 단원들이 연습에 들어가기 전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최재수 기자 biochoi@imaeil.com

연극을 통해 노년의 일상을 활기차게 보내는 어르신들이 있다. 대사를 주고 받는 호흡이 끊기기도 하고 가끔은 대사를 잊기도 하지만 연기에 대한 열정만은 뜨겁다. 마당놀이극에서는 무대 아래로 내려가 관객과 함께 호흡하는 여유를 발휘하기도 한다.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연극을 시작하면서 삶의 활력을 찾았다"고 말했다.

◆ 공개 오디션 거쳐 입단

지난 6일 오후 대구 북구 어울아트센터의 공연장. 실버 극단인 '청춘어울극단' 단원들이 4월 말 공연 예정인 트로트 뮤지컬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 연습에 한창이다. 이들은 무대 위에서 대사와 동선, 간단한 율동을 체크하며 호흡을 맞췄다. 대사를 읊는 단원들의 눈빛이 사뭇 진지했다. 청춘어울극단 이수연(75) 회장은 "4월 말 공연예정이지만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때문에 더 늦어질 것으로 보이지만 어떻게 될지 몰라 열심히 연습하고 있다"고 했다.

청춘어울극단은 문화 활동에 참여하고 싶지만, 기회를 갖지 못했던 지역 은퇴 어르신들에게 연극 활동을 통해 자신감 회복과 사회적 역할을 부여하기 위해 2016년 7월 창단됐다. 현재 단원은 12명, 공개 오디션을 통해 뽑은 단원들로 모두 여성 단원이다. 이 회장은 "초기에는 남자 단원이 몇 명 있었지만 현재는 여성 단원만 있다. 여성 단원이 남장으로 분장해 출연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남자 단원의 적극적인 지원을 바란다"고 했다.

현재까지 공연한 작품은 연극 '시집가는 날'를 비롯해 트로트 뮤직컬 '울고 넘는 박달재', 정극 '맹진사댁 경사', 마당놀이 '내 사랑 애랑' 등을 공연했다. 지난해 11월에는 동국대 서울캠퍼스 이해랑예술극장에서 열린 대한민국생활연극제에도 참가했다. 단체 은상. 조민숙 단원이 연기상을 수상했다. 현재 트로트 뮤지컬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를 준비 중에 있다. 이 회장은 "관객과 흥겹게 놀아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극단을 이끄는 이는 원로연극인이자 한국생활연극협회 대구지회장을 맡고 있는 채치민 씨다. 그는 극단 감독으로 연출과 연기 지도 등 연극 전반을 맡고 있다. 채 감독은 "단원들은 결혼과 동시에 생업을 책임지면서 자식들 뒷바라지에 젊은 꿈을 접었던 아쉬움을 노년에 무대에서 맘껏 펼칠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 무작정 청춘연극단에 입단해 끼와 재능을 펴고 있다"며 "아직까지 외웠던 대사를 잊어버리거나 동선이 헷갈리는 등 실수를 연발하지만 열정만은 대단하다"고 말했다.

◆"연극은 생활의 활력소"

단원들은 이제까지 인생 전반전이 본인 선택이 아닌 생업과 가족을 위해 불꽃처럼 바쁘게 살았다면 인생 후반전인 연극 무대에서는 오롯이 내가 선택한 삶을 살고 있다는 자긍심에 어느 때보다 만족한 삶을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또 연극을 통해 관객들이 울고, 웃고, 공감하고 소통하는 것을 보며 나도 타인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나 만의 삶이 아닌 함께하는 삶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친구 따라 우연히 단원이 된 김선자(62) 씨는 "이 나이에 뭔가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한 일"이라며 "연기에 몰입하다보면 다시 청춘으로 돌아간 기분이 들어 즐거운 마음으로 재미있게 연습하고 있다"고 했다. 김 씨는 "극중에 다른 사람이 되어 보는 것도 재미있고, 무대에 올라 관객들과 함께 웃고 울면서 소통하고 공유할 때 가장 행복하다"고 말했다.

조민숙(59) 씨는 "상상하지 못했던 연극배우로 활동하면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것처럼 늘 설렘 속에 대본을 접하면서 매일매일 더 노력하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고 했다. 조 씨는 "목소리가 허스키해 감독님이 남자 역할을 주로 시키는데, 다음에는 미모를 살려 여자 역할을 해보고 싶다"며 활짝 웃었다.

창단 멤버인 이순난(65) 씨는 "대사를 외우는 데 집중하다보니 정신이 맑아진다"며 "모두가 끼가 있어 함께하면 재미있고 활동을 많이 하게 돼 더 젊어지는 기분"이라고 했다. 이 씨는 "처음엔 연극에 소질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해보니 즉석에서 액션과 리액션을 주고받는 게 정말 재미있다"고 말했다. 이 씨는 "연극을 한 뒤 표정도 밝아졌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면서 "연극은 생활의 활력소"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여숙이(60) 씨는 "아직도 대사 외우는게 어렵지만 너무 재미있다. 무엇보다 사람 사귀는 것을 배웠다. 연극 이후로 대인관계가 많이 넓어졌다"고 했고, 극단 막내 우경희(56) 씨는 "아이도 엄마를 많이 자랑스러워해 선택을 잘한 것 같다"며 만족해했다.

어릴 적 탤런트가 꿈이었던 이수연 회장은 "하다보니 욕심이 생긴다. 지금보다 조금 더 큰 무대에 서고 싶고, 기회가 닿으면 드라마나 영화에 출연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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