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울진 스토리텔링 문화공모전 수상작 -대상 '도깨비의 금강주(金剛酎)'<3>

삽화 김진영 명덕창조의아침 원장
삽화 김진영 명덕창조의아침 원장

대상-단편소설 '도깨비의 금강주(金剛酎) 박효정

다음날 초저녁부터 울진의 다섯 우두머리 도깨비들이 후포항에 모였다.

모두 요술 방망이 대신 육각 방망를 들고 장대기는 자신의 귀물인 긴 장대를 들고 왔다. 벌써부터 표정들이 험하다.

"그래, 그놈이 있는 데가 어디고?"

김서방의 말에 장대기가 조용히 하라며 손짓하며 바닷가 갯바위 틈을 가리킨다.

"이제 나올 때가 됐다. 이놈은 요절을 내도 내가 낸다. 자네들은 가만히 보기나 하소."

장대기는 어제 일에 마음이 상했는지 다른 도깨비들을 나서지 못하게 한다.

산에서부터 내린 어둠이 바다에 깔리고 하늘에 첫 별이 뜨자 바위틈에서 붉은 안개가 피어오르더니 이윽고 철방망이를 든 오니가 흉측한 형상을 하고 기지개를 편다.

"네 이놈~~!"

오니가 나타나자마자 장대가 기다렸다는 듯 크게 소리쳤다.

"에구구 깜짝이야! 어? 친구 네놈이구먼. 같이 놀자고 해도 코빼기도 안 보이더니 오늘은 초저녁부터 웬일이야?"

"뭐? 야 이 사악하고 나쁜 요괴 놈아! 내가 왜, 네놈 친구냐? 내가 너더러 친구하라고 했나?"

"뭐, 아님 말고. 그런데 왜왔어? 시퍼렇게 성이나 와서 떡 줄 리도 없고… 왜 왔어?"

"너 잡으러 왔다 이놈아! 조용히 살던 곳에나 살 것이지 여기가 어디라고 사악한 활개를 치고 다니느냐. 이놈아!"

"키키킥. 활개는 무슨 활개. 모두 내가 무서운지 아무도 같이 놀아주지도 않는데…"

"그래 이놈아! 그럼 혼자서 무슨 나쁜 짓을 하고 다닌 것이냐?"

"키키킥. 나쁜 짓은 무슨 나쁜 짓? 매일 근처에서 멸치대가리나 주워 먹다가 며칠 전에는 날이 하도 더워서 요기~ 요 후포면 마을우물에 몸 한번 담갔다. 그리고 그 며칠 전에는 몸이 가려워 저기~ 저 서면 맨 꼭대기 골짜기에서 목욕 한번 했다. 그래 그게 뭐 잘못됐냐? 이놈아!"

"그랬구먼. 응 그랬어. 네놈이 거기다 뭔 고약한 것을 흘렸구먼. 너 때문에 온 고을 사람들 한꺼번에 줄초상 치게 생겼다. 이놈아, 이 사악한 놈아!"

"뭐? 사악? 그래 내가 본시 좀 사악하긴 하지. 그런데 흘리긴 뭘 흘리고 줄초상은 또 뭣이여? 이놈이 뜬금없이 나타나 생도깨비 잡네. 키키킥."

"안 되겠다 이놈! 일단 네놈을 요절내고 포박부터 해야겠다."

장대기는 더 이상 화를 참지 못하고 오니를 향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키키킥. 오냐 이놈아 얼마든지 오너라."

몸집이 집체만큼 커진 오니도 자신 있다는 듯 장대기와 맞섰다.

두 도깨비가 격돌하자 일대 바닷가엔 돌풍이 몰아치고 파도가 미친 듯 방향도 없이 출렁거렸다. 장대기는 일격에 쓰러트릴 생각으로 장대에 한끝 힘을 실어 오니를 후려치려 했다. 그러나 휘어진 장대가 오니의 목에 닿으려는 순간, 장대의 한중간이 '뚝'하고 꺾여 버린다.

"엥? 이게 무슨 변고지?"

장대기가 깜짝 놀라자 오니가 배를 잡고 깔깔거리기 시작한다.

"키키킥 킥키킥. 야, 이놈아 이 바보 같은 놈아. 얼마 전 너한테 그렇게 혼났는데 또 당하라고? 내가 바보냐?"

그렇다. 지난번 장대기한테 패한 오니가 장대기의 귀물을 훼손시켜 놓은 것이다. 귀물의 손상으로 힘이 꺾여버린 장대기는 악을 쓰며 싸웠지만 오니의 상대가 되지못했다. 그러다 오니가 철방망이로 장대기의 다리를 부러뜨리려는 순간, 참다못한 이대감이 불같이 나섰다.

"네 이놈~~!"

화난 이대감의 천둥 같은 목소리에 또 다시 바람이 회오리쳤고 어느 순간 도깨비들이 오니의 사방을 둘러쌌다.

"어잉? 뭐야 한 놈만 온 것이 아니잖아?"

오니가 깜짝 놀라자 다른 도깨비들이 나설 사이도 없이 이대감이 오니에게 달려들었다.

"이놈의 붉은 도깨비. 내가 너의 목을 비틀고 허리를 돌려 꺾을 것이다."

"그래, 오냐. 얼마든지 상대해주마."

오니도 자신 있다는 듯 이대감과 몸을 부딪치며 맞섰다. 하지만 그동안 부지런히 힘을 기른 오니도 이대감을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 나쁜 잡귀 놈! 너 같이 악한 잡귀는 내 생전 처음 본다. 으아악!"

이대감이 오니를 잡고 팔뚝이 터져라 첫 번째 힘을 쓰자 그 굵던 오니의 목이 엿가락처럼 늘어졌다.

"감히 내 친구를 능멸하고 원한도 없이 숫한 사람들 죽이려해? 으아악!"

이대감이 두 번째 힘을 쓰자 오니의 허리가 돌아가 엉덩이가 배꼽 밑으로 와 버렸다.

"아이고, 아이고. 오니 죽네 오니 죽어. 살려 주시오 살려 주시오. 내 뭐든 시키는 대로 다 할 테니 살려만 주세요."

오니가 목이 터져라 애걸하자 김서방이 가져온 금줄을 꺼내 오니를 꽁꽁 묶었다.

"가자. 빨리 가자. 장대기는 몸이 성치 않으니 여기 남고 우리는 빨리 영감에게 가자."

김서방과 나머지 도깨비들은 바지게에 오니를 싣고 지체 없이 정령에게로 갔다.

도깨비 일행이 대왕소나무가 있는 소광리 골짜기 앞에 다다르자 정령이 이미 도깨비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바지게 위에서 내동댕이쳐진 오니가 정령 앞에 무릎을 꿇었다.

"네 이놈! 바다건너 남의 나라에 와서 어찌 이리 극악한 장난질을 일삼았느냐. 내 너를 용서할 수 없으니 너의 귀물을 부수고 불태워 없애리라. 이 못된 요괴의 귀물을 당장 가져오너라."

김서방이 오니의 귀물을 정령에게 건넸다. 오니의 귀물은 다름 아닌 작은 손거울. 조금 전 이대감에게 당한 흔적으로 거울은 이미 상단과 중간부분에 금이 가 있었다. 손거울을 받아든 정령이 거울을 땅에 놓고 지팡이로 내려치려 하자 오니가 자지러지듯 애원하기 시작했다.

"에구구 에구구 정령님, 만물과 미물까지도 굽어 살피는 정령이시지 않습니까? 인자하신 정령께서 어찌 저를 소멸시키려 하십니까? 제발 살려주세요."

"네 이놈! 미물은 만물을 상하게 하여서는 안 되는 법. 너와는 인과도 없는 인간을 수없이 해하려 하고서도 그 죄를 뉘우치지 못한단 말이냐?"

"아닙니다. 오해십니다 오해. 저는 맹세코 고의로 사람을 다치게 한 적도 죽인적도 없습니다. 제발 살려주세요."

"엥? 오해라니 이놈아! 앞에 계신 이 분은 억겁을 살아오신 산의 정령이시다. 정령께서도 한 번 보지 못한 괴질이 네놈이 오고서부터 온 고을에 퍼졌는데, 그러고도 오해냐 이놈아?" 오니가 눈물과 콧물 범벅으로 애원하자 듣고 있던 두방이 오니의 머리를 쥐어박으며 말했다.

"흐흐흑 아니야. 정말로 오해야. 정령님 그리고 이 땅 도깨비야 제발 내말 좀 들어봐."

"그래 너를 벌하는 것이야 급할 것 없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어디 한 번 해 보거라."

정령의 말에 오니가 흐느끼며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보시다시피 저는 누군가의 질병으로 생겨난 도깨빕니다. 그래서 제가 가는 곳이면 늘 사람들에게 병을 옮깁니다. 그런데 제가 살았던 곳에서는 하루 이틀 정도면 털고 일어나는 잔병에 불과한데 이곳에서 이렇게 큰 사단이 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맹세코 이곳 사람들을 일부러 해하려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제발 믿어 주세요."

"네 이놈! 왜국과 이곳은 하늘과 땅이 다르고 산과 물이 다르다. 왜국의 연약한 홀씨가 여기서는 대지를 뒤덮기도 하고 거목의 씨앗이 싹조차 띄우지 못할 수도 있다. 너희의 작은 고뿔이 여기선 몹쓸 괴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진정 몰랐단 말이냐?"

"에구구 몰랐습니다. 진짜 몰랐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나 역시 너를 멸하여 마음 편한 것 없다. 너 같은 도깨비는 분명 병도 약도 다 가지고 다닐 터, 지금 당장 그 처방을 고하거라."

"있지요. 있지요. 처방이 분명 있지요. 알려드릴 것이니 제발 살려면 주세요."

"그래, 그럼 지금부터 그 처방을 소상히 고하거라."

정령이 한층 누그러져 말하자 오니는 큰 한숨을 쉬고 처방을 말하기 시작한다.

"독한 술을 담아야 합니다. 그것도 아주 독한 술을 한 번에 담아내야 합니다. 일단 고두밥 일곱 말, 누룩 일곱 말을 넣고 물 여섯 말을 섞어 삼일 간 숙성하여 탁주를 만듭니다. 탁주가 만들어진 다음에는 작은 불을 피워 두 번 증류해야 합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고두밥과 누룩을 섞어 술독에 앉힐 때 반드시 오래된 소나무 속에 박힌 관솔을 파내어 함께 넣어야 합니다. 그러면 아주 독한 소주가 2말 나올 것입니다. 그것을 사람들에게 먹이면 병에 걸리지 않은 사람은 병을 피해갈 것이고 걸린 병도 삼일 안에 씻은 듯이 낫게 될 것입니다."

"네 이놈, 그 술은 원래 죽은 소나무의 목신을 거두어 신선들께서 만들어 먹던 금강주1) 가 아니더냐. 네 놈이 어떻게 그것을 알고 있단 말이냐?"

듣고 있던 정령이 갑자기 미간을 찌푸리며 다시 격노하며 말했다.

"에구구. 용서해주세요. 언젠가 이곳 신선이 우리 땅에 오신 적이 있는데 그때 신선들의 이야기를 잠시 엿들었습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우리 신선께서 왜국까지 갔단 말이냐?"

"예, 오셨습니다. 오래전 우리왜국에 수많은 역병으로 나라가 환란을 격자 이곳 신선이 오셔서 환란을 다스려 주신 적이 있습니다. 그때 가지고 오신 것이 바로 그 금강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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