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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일상의 소중함…코로나가 바꾼 풍경들

점심시간에…한줄로 한칸 띄어 앉고, 포장된 이쑤시개 사용
쇼핑할 때는…베이커리 시식 줄이고, 화장품 테스터도 안 해
경조사 풍속도…사람 몰리는 결혼 미뤄, 장례식 조문 최소 인원
생이별 생활…혹시나 하는 감염 걱정, 딸이 출산했지만 못 봐

지자체가 소상공인을 돕기 위한 다양한 소비촉진 운동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횟집들은 승용차에 탄 손님을 상대로 직접 수산물을 판매하고 있다. 포항시 제공
지자체가 소상공인을 돕기 위한 다양한 소비촉진 운동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횟집들은 승용차에 탄 손님을 상대로 직접 수산물을 판매하고 있다. 포항시 제공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우리의 일상 생활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일상화하면서 대면 접촉을 자제하는 문화가 형성되고, 경조사를 비롯한 크고 작은 일상의 풍경까지 바꿔놓고 있다.

도서관이나 체육·문화·종교 시설 등 다중 이용시설이 문을 닫는 것은 물론 사회 곳곳에서 '비대면·비접촉'이 일상화되고 있다. 기업들도 기존의 영업, 근무 형태를 바꿨다. 이제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낯선 풍경들이다.

코로나로 결혼식을 미루는 커플이 늘고 있다. 사진은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하는 하객을 위해 유튜브 생방송 결혼식 모습. 연합뉴스
'비접촉'이 일상화 되고 있는 가운데 버튼을 누르는 부분이 손가락에 직접 닿지 않게 하기 위해 이쑤시개를 비치해 놓은 곳도 있다.

◆'비대면·비접촉' 일상화

대구시 한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에는 손 소독제가 놓였다. 코로나 상황의 심각성을 느낀 아파트 주민대표회가 마련해둔 손 소독제다.

엘리베이터에 탄 아이들이 호주머니에서 주섬주섬 무엇인가를 꺼낸다. 아이가 꺼낸 것은 어머니가 바느질 할 때 사용하는 '골무'. 버튼을 누르는 부분이 손가락에 직접 닿지 않게 하기 위해 엄마가 준비해줬다.

이쑤시개로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루는 아이도 있다. 한 아파트관리사무소 관계자는 "소독만으로는 부족하겠다 싶어 손 소독제를 비치해 놓았는데 주민들 반응도 괜찮은 것 같다"고 말했다.

코로나는 직장인들의 점심시간 밥 먹는 모습도 바꿔놓았다. 공공기관이나 기업들은 코로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구내식당 내 식탁을 재배치했다. 마주보지 않고 한 줄로 한 칸씩 띄어 앉거나 가림막을 하고 식사한다. 시내 음식점에서도 손님들은 식사 후 포장된 1회용 이쑤시개를 사용하고 있다.

마트나 베이커리에선 시식 상품이 맥을 못추고, '테스터' 사용자로 북적였던 화장품 매장에서도 '누가 썼을지 모른다'는 공포감에 테스터 사용이 부쩍 줄었다. 한 유통업체는 코로나 확산에 따른 이용자의 불안감을 덜기 위해 모든 주문 물량을 '비대면 언택트 배송'을 실시하고 있다. 모두 코로나로 바뀐 풍경들이다.

상가에서도 직접 찾아 조의를 표하는 조문객은 거의 없고 계좌이체로 부조금을 전하고 있다.
코로나로 결혼식을 미루는 커플이 늘고 있다. 사진은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하는 하객을 위해 유튜브 생방송 결혼식 모습. 연합뉴스

▷달라진 경조사 신풍속도=사회적 거리두기는 경조사를 비롯한 사회 풍속도까지 바꿔놓았다. 종교행사를 비롯한 대부분의 크고 작은 행사들이 취소되고, 경사나 애사에 직접 참석해 축하하거나 위로하는 미풍양속에도 변화가 일고 있다.

5월 초에 결혼식을 올리기로 한 예비 신부 김선아(가명·32) 씨는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갑작스런 코로나바이러스에 양가에서 결혼식을 미루자고 제안했기 때문이다.

초대하는 입장도, 초대받는 입장도 모두 부담스럽다는 게 양가 어른들 생각이다. 선아 씨와 예비 신랑은 지인들에게 청첩장까지 나눠준 상황이라 예정대로 결혼식을 진행하고 싶다는 바람이지만 양가 어른들과 이견이 좀처럼 좁혀지지 않으면서 속앓이만 깊어지고 있다.

선아 씨는 "평생 한 번뿐인 결혼식인데 신종 코로나 탓에 이도저도 하지 못하고 있어 너무 속상하다"며 "지인들도 내심 결혼식 참석을 부담스러워 하는 눈치라 결혼식을 뒤로 미루는 것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동산병원 구내식당에서는 직원들이 마주보지 않고 한쪽 방향으로 앉아 식사하고 있다.
상가에서도 직접 찾아 조의를 표하는 조문객은 거의 없고 계좌이체로 부조금을 전하고 있다.

장례식장 풍경도 크게 다르지 않다. 3월 말 친구 아버지의 장례식장을 찾은 김창호(가명·42) 씨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장례식장 조문객이 자신을 포함해 대여섯 명뿐이었다.

평소 발 넓고 인간관계 좋은 친구인 데다 형제도 여럿이고 고인 역시 적잖이 사회생활을 했던 터였다. 조화만 가득한 채 장례식장은 텅 비어 있었다. 상주 김영식(가명·42) 씨는 "장례식장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모이느냐로 고인이 살아생전 얼마나 잘 살았는지를 알 수 있다는 말을 들어왔기에 더 허무하다"고 했다.

영식 씨가 연락을 취한 건 몇백 명에 달했지만 직접 장례식장을 찾은 사람은 수십 명에 그쳤고 가까운 이들조차 전화나 조화로 조문을 대신했다고 했다.

장례지도사 박달수(가명·57) 씨는 "장례지도사로 일하는 수 년 동안 장례식장 전체가 이렇게 텅텅 비는 일은 처음 본다"며 "방문한 사람도 마스크 낀 채로 절만 하고 얼른 자리를 털고 일어선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코로나 이산가족'=코로나 확산으로 가족간 생이별 생활을 하고 있는 안타까운 이들도 늘고 있다.

감염 우려 때문에 왕래를 중지하면서 '코로나 이산가족' 신세로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이숙희(가명·67) 씨는 지난달 말 대전에 사는 딸이 손자를 출산했지만 아직 얼굴을 보지 못했다. 이 씨는 "보건소에서 실시한 코로나 검사에서 음성 판정을 받았지만 혹시나 싶어 도저히 손자 보러 갈 엄두를 못 냈다"고 했다.

정명원(72) 씨 부부는 한 달에 한 번 서울에 사는 딸네 집을 방문해 손자 재롱을 보는 것이 낙이었지만, 당분간 마음을 접었다. 정 씨는 "며느리가 '괜찮으니 오라'고 하는데, 그렇다고 이런 시국에 좋다고 달려갈 부모가 어딨느냐"고 전했다.

학교에서는 새학기를 맞아
동산병원 구내식당에서는 직원들이 마주보지 않고 한쪽 방향으로 앉아 식사하고 있다.

▷책 대여·생선회 판매 …'드라이브 스루' 일상화=코로나 확산을 막기 위해 선별진료소에 도입한 '드라이브 스루'(drive-through:소비자가 매장에 들어가지 않고 차에 탄 채로 주문해 받는 방법) 방식이 책 대출이나 생선회 판매 등 일상생활에 스며들고 있다.

대구시 중구 동인동 한 안심식당에서 손님들이 한쪽 방향으로 띄엄띄엄 앉아 식사하고 있다.매일신문 DB
학교에서는 새학기를 맞아 '워킹 스루'를 통해 교과서를 배부하고 있다.매일신문 DB

임시 휴관 기간이 길어짐에 따라 도서관은 '워킹 스루 예약 대출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다.

대출하고 싶은 책을 도서관 홈페이지를 통해 신청한 다음 문자 메시지를 통해 안내문을 받은 뒤 신청 도서관을 방문해 책을 대출받는 방식이다.

책 반납은 해당 도서관의 무인 반납함을 이용하거나 재개관 시 도서관에 일괄적으로 반납하면 된다. 도서관 관계자는 "책을 읽으려는 시민들을 위해 직원과 이용자 간 접촉을 최소화하려고 이 서비스를 도입했다"고 했다.

횟집에서도 '드라이브스루' 서비스가 이뤄지고 있다. 미리 전화로 주문한 고객이 차량에 탄 채 판매장 앞에서 회 도시락을 전해 받고 있다. 고객이 전화로 미리 주문하고 안내받은 시간에 맞춰 가면 차 안에서 바로 회 도시락을 받고 결제를 하는 방식이다.

대구시 중구 동인동 한 안심식당에서 손님들이 한쪽 방향으로 띄엄띄엄 앉아 식사하고 있다.매일신문 DB

◆"소소한 일상의 소중함 깨달아"

시민들은 이번 코로나 사태는 많은 것을 깨닫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다고 했다. 주부 이정미(37) 씨는 "소소한 일상의 소중함이 얼마나 귀중한지를 새삼 깨달았다. 가족을 비롯한 가까운 친구, 지인, 부모님이 얼마나 소중하고 신경써야 했는지를 실감했다"고 말했다.

회사원 이일우(43) 씨는 "이번 코로나 사태는 소중한 가치를 잊고 세상 속에서 조급하게 살아가던 저에게 소중하고 가치있는 일을 위해서라면 그렇게 조급하게 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고 했다.

이 씨는 "코로나 이후에도 바쁠수록 차분히 저를 돌아보면서 상대방을 탓하기보다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먼저 생각하고, 또 저녁 일정을 잘 조절해 가족들과 함께 저녁시간을 즐겁고 행복한 대화로 보내려고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코로나로 생활방식이 변화하자 우리사회에 불편함을 주는 제도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며 이후에도 우리 사회에 많은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코로나를 경험하면서 우리사회에는 많은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그 변화들이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변화의 과정에서 좋은 방법을 찾게 될 것"이라며 "획일화된 제도가 변화를 가로막지 않도록 유연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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