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안동산불 "급한데"…차 세운 채 사진 찍고 '불구경'

산불진화 동원 차량 발 묶어…협조요청 문자에도 효과없어
세계유산 병산서원 경관 훼손…시 "피해규모 추산 대책 마련"

안동 산불이 큰 피해를 남기고 진화된 가운데 지난 26일 남후면 인근에서 불 구경꾼들이 길에 차를 세운 채 사진을 찍고 있다. 독자 제공
안동 산불이 큰 피해를 남기고 진화된 가운데 지난 26일 남후면 인근에서 불 구경꾼들이 길에 차를 세운 채 사진을 찍고 있다. 독자 제공

큰 피해를 남긴 안동 산불이 26일 가까스로 진압된 가운데 일부 구경꾼들 탓에 주민 대피와 진화가 늦어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장에 투입됐던 한 공무원은 "차를 타고 화재 현장으로 가던 중 앞서 달리던 차량들이 갑자기 비상등을 켜고 정차를 해 혼잡한 도로에서 사고가 난 줄 알고 내려보니 사람들이 산불 사진을 찍고 있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일부 구경꾼은 도로, 교량 위에 차량을 세운 채 산불진화 헬기가 물을 긷고 뿌리는 장면을 휴대전화로 찍거나 SNS로 중계했다. 교통이 혼잡한 차도를 무단횡단하는 바람에 위험한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정작 산불 진화에 동원돼야 하는 차량이 제때 현장에 도착하지 못하거나 구경꾼 통제에 인력이 낭비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발생했다. 또 대피령이 떨어진 뒤에는 남후면 고하리, 단호리 주민들의 피난행렬과 겹쳐 산불 현장 일대 통행에 큰 어려움이 있었다.

헬기 등이 투입돼 안동 산불 진압에 나선 모습을 보려 사람들이 몰려 있다. 윤영민 기자
헬기 등이 투입돼 안동 산불 진압에 나선 모습을 보려 사람들이 몰려 있다. 윤영민 기자

안동시가 불 구경 자제를 당부하는 안내방송·문자까지 내보냈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안동시는 당시 안전안내문자를 통해 "남후면 일대 산불 현장에 불특정 다수 차량으로 인해 진화작업 및 주민 대피에 매우 어려움을 겪고 있으니 즉시 차량 이동 바랍니다"라며 협조를 요청했다.

부모님을 모시러 단호리를 찾았던 A(45) 씨는 "고향에 큰 불이 나 정신없이 왔는데 차량이 들어가지도 나가지도 못하는 일이 벌어져 피가 마르는 것처럼 답답했다"며 "산불 현장에는 옷과 신발이 녹아내릴 정도로 쫓아다닌 봉사자들도 있었는데 남의 피해를 구경만한 사람들은 반성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경북 안동 산불로 풍천면과 남후면 일대가 화마에 휩싸인 뒤 부모 산소를 찾은 한 시민이 지푸라기로 봉분을 덮고 술을 올리고 있다. 독자 제공
경북 안동 산불로 풍천면과 남후면 일대가 화마에 휩싸인 뒤 부모 산소를 찾은 한 시민이 지푸라기로 봉분을 덮고 술을 올리고 있다. 독자 제공

한편 산불이 진압된 뒤 둘러본 풍천면과 남후면 일대는 까만 재로 뒤덮인 앙상한 산들만 남아 안타까움을 더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병산서원은 다행히 직접 피해는 면했지만 경관이 훼손됐다. 세계유산은 건조물과 주변 경관을 같이 지정하는데 산불이 발생한 병산서원 강 건너편 일부 역시 유산구역이다. 안동시는 정확한 피해 규모를 추산한 뒤 대책을 마련할 예정이다.

잿더미로 변한 산소를 찾은 후손들은 지푸라기를 모아와 산소를 덮고 술을 따르며 사죄하기도 했다. 자식처럼 키우던 돼지들이 대부분 폐사한 가운데 살아남은 몇 마리의 돼지라도 살리려고 동분서주하는 농장주도 있었다.

산불 현장 인근 식당에서는 교대근무 뒤 뒤늦은 식사를 하러 온 소방대원들에게 업주가 서비스를 주는가 하면 다른 손님이 미리 계산하고 가는 따뜻한 나눔도 이어졌다. 안동시 용상동에 사는 한 시민이 안동시청과 소방서 공무원들에게 간식을 전달하자는 글을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리자 많은 시민들이 참여하겠다는 댓글을 달았다.

산림청은 27일 오후 현재 잔불이 남아 뒷불로 번지는 사태를 방지하고자 감시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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