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나의 예술, 나의 삶]사실주의 화가 곽현석

사실주의 화가 곽현석 작가가 자신의 화실 겸 아파트에서 자화상을 그리고 있다.
사실주의 화가 곽현석 작가가 자신의 화실 겸 아파트에서 자화상을 그리고 있다.

곽현석 작
곽현석 작 '像'

프랑스 작가 스탕달은 1817년 이탈리아 피렌체에 있는 산타크로체 성당에서 본 대가들의 명화를 보는 순간 아찔한 혼미상태를 경험한 일을 자신의 저서 '로마, 나폴리, 피렌체'에 묘사한 일이 있다. 이를 두고 유명한 미술품이나 예술품을 보았을 때 느끼는 정신적 충동을 일컬어 '스탕달 신드롬'이라고 한다.

사실주의 화가 곽현석(46)도 이와 유사한 경험을 겪었다. 대학 시절 렘브란트가 노년에 그린 자화상을 본 작가는 그 순간 렘브란트의 성격과 고집스럽게 힘겹게 살아온 일생이 주마등처럼 가슴 속을 파고 들었다고 한다. '인물화를 통해 한 사람의 내면을 표현할 수 있구나'하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고 이후 그는 인물화를 그리는 데 더욱 자신감을 얻게 됐다.

경북대 예술대(94학번)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곽현석은 대구시 동구 지묘동 한 아파트에서 작품 활동을 하며 사실주의적 화풍을 견지하고 있다.

"화폭을 통해 직설적으로 보여주는 걸 좋아합니다. 인물의 표정과 곁들인 사물의 표현만으로 내면과 성격, 삶까지도 나타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생후 6개월 즈음 받은 수술 후유증으로 두 다리가 불편한 작가는 유년시절 밖에서 놀기 어려워 그림을 접했고 주변에서 "잘 그린다"는 칭찬에 이후 그림은 그에게 놀이이자 장난감이 됐다. 어릴 때 미술학원에 갔다가 강사가 원생들에게 똑같은 그림을 똑같이 그리도록 하는 데 곧 싫증을 느꼈고, 초교 1학년 때는 아버지가 사준 데생 책을 보고 비너스의 누드상을 그려 학교에 제출해 교사를 깜짝 놀라게 만들기도 했다. 그림과외는 고3때 입시학원을 1년 정도 다닌 게 전부인데 당시 대건고에서 미술교사였던 박중식 화가에게 사사 받기도 했다.

"대학 다닐 때는 추상표현주의에 빠져 먹과 인물을 결합한 그림을 그렸고 2004년 당시 인터불고 쁘라도 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습니다."

곽현석에게 인물화는 한 사람의 내적인 세계와 살아온 시간들을 함축적으로 표현하는 매체이다. 따라서 그의 인물화에는 꼭 등장하는 오브제가 있다. 예를 들면 어머니 인물화에는 성모상과 예수성심상을 함께 그림으로써 어머니의 종교생활을 표현하고, 아버지 인물화에는 서예작품을 제시함으로서 서예를 즐기는 아버지의 단면을 드러낸다. 또한 언제나 그의 인물화에서 인물을 정중간에 배치하는데 이는 황금 분할을 무시하고 인물만을 최대한 부각시키기 위한 곽현석만의 조형문법이다.

"인물화를 그릴 때 나는 인간 내면의 심리와 성격을 표현하기 위해 밖으로 드러난 이미지에 집중하고자 노력하고, 심미적인 요소는 최소화하고 사람마다 지닌 외형을 관찰한 후 미세한 표정과 특징들을 섬세한 선과 묘사로 드러냅니다. 인물의 배경은 그 사람만의 이미지를 연상시킬 수 있는 사물이나 공간으로 구성하고 배치시켜 삶을 이야기 하듯이 풀어가고자 합니다."

작가는 또한 인물화의 세밀한 표현을 위해 그리자이유(Grisaille) 기법과 글레이징(Glazing) 기법을 즐겨 쓴다.

그리자이유 기법은 르네상스 시대 화가들의 모델링 기법을 회색조의 단색으로 세밀한 묘사와 명암단계를 표현하기 적합하며, 글레이징 기법은 투명효과를 위해 건조한 화면 위에 기름을 이용해 밑칠이 보이도록 얇게 칠하는 화법이다. 이 화법은 한 번에 두텁게 올라가는 색채와는 달리 색의 투명도가 좋고 명암조절을 위해 흰색을 거의 쓰지 않아 고유의 색상이 잘 살아나는 특징이 있다. 따라서 회색조의 물감으로 그리자이유를 만들고 다량의 기름을 사용한 글레이징 기법으로 채색과 건조를 반복해 여러 겹의 채색 층을 입히면 사실적이고 차분한 색감을 만들 수 있다. 그래서 인지 곽현석의 인물화와 풍경화는 묘사가 섬세하면서도 화면 전체의 분위기는 차분한 느낌이 많다.

2011년 4번째 개인전 주제는 '해암'(海岩)으로 이때부터 소나무와 바위가 등장하는 '상'(像)시리즈 연작물이 나온다.

"저는 실내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 시간 날 때마다 바다를 자주 갑니다. 언제가 해변에서 본 바위에 따개비 등 조개가 자라고 있었는데 어떤 바위에는 그 곁에서 소나무가 뿌리내린 것을 보고 생명력의 약동을 느꼈습니다."

작가는 척박한 해변에서 공생하는 바위와 소나무를 보고 인물화외 두 개의 오브제를 결합한 '상' 연작물을 10년째 그리고 있다. 바위와 소나무 풍경은 사진을 찍은 후 화면으로 옮길 때는 작가 스스로 새로운 공간을 형성, 전혀 다른 구도의 풍경화로 재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주의적 표현법은 2011년부터 시작됐으며 이때의 바위는 점묘법으로 주로 표현되어 왔다. 이후 5회 6회 개인전까지 '상' 연작이 이어졌고 2014년 이후엔 개인전을 쉬면서 그림에 대한 새 묘사법에 골몰하게 된다.

곽현석은 2015년부터 그의 사실주의적 표현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앞서 말한 풍경화인 '상'연작에서의 그리자이유와 글레이징 기법의 도입이다.

바위에서 자라는 풀과 소나무를 관찰하며 생물과 무생물, 부드러움과 강함의 서로 다른 특징을 지닌 두 대상이 열악한 환경에서 서로 의지하는 모습은 작가에게 단순히 그림의 대상 이상의 그 무엇을 느끼게 했고, 이를 모티브로 한 '상' 시리즈는 두 대상을 생명체처럼 결합시켜 제3의 공간인 화면에 배치함으로써 '곽현석류의 바위와 소나무'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1992년 창립한 영남지역 구상작가들의 모임인 '표상회'와 대구미술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작가는 향후 그림에 또 다른 변화를 주게 된다면 "인물화의 단순 범주를 떠나 대상의 설정부터 아주 자유롭고 표현의 범위도 구애받지 않고 그림을 그릴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사실주의 화가 곽현석의 또 다른 변화가 기다려진다.

글 사진 우문기 기자 pody2@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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