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유물로 읽는 동서양 생활문화] 세종과 문재인의 차이…국민주권 거세

김문환 역사저널리스트

세종 어진
세종 어진

김문환 역사저널리스트
김문환 역사저널리스트

◆피로 물든 경복궁… 창덕궁 인정전의 역사

이성계가 1394년 개성에서 한양으로 천도하며 1395년 경복궁을 완공시켰다.

흔히 조선 첫 궁전인 경복궁에서 조선 500여 년 역사가 펼쳐졌을 것으로 여기지만 그렇지 않다.

1398년 이방원이 이복동생인 세자 이방석과 정도전 등의 충신들을 죽이면서 권력을 잡는다. 경복궁은 문을 연 지 3년 만에 골육상쟁의 피로 물든 거다.

이에 2대 임금 정종(이방과)은 1399년 수도를 다시 개성으로 옮겼다. 하지만, 1400년 이번에는 개성에서 이방원과 손위 형 이방간 사이에 권력을 놓고 피비린내 나는 대활극을 펼쳤다.

승리한 이방원이 그해 11월 3대 태종이 됐고, 개성을 떠나 한양으로 재천도하면서 핏기 서린 경복궁을 피해 창덕궁을 1405년 완공시켰다. 이후 그의 아들 4대 세종 이후 조선의 왕들은 창덕궁 인정전에서 정사를 펼쳤다.

◆세종, 인정전에서 과거 문제를 내다.

'御仁政殿, 出文科策問題: 왕이 인정전에 나가 과거 시험 문제 제목을 내었다'.

세종 9년 즉 1430년 음력 3월 16일 세종실록 35권 기사 제목이다.

세종이 창덕궁 인정전 뜰에서 각지에서 모인 인재들에게 낸 과거 시험 문제는 무엇일까? '王若曰(왕은 이렇게 말하노라)…'로 시작하며 세종은 중국 하나라 우임금의 공법(貢法), 은(상)나라 조법(助法), 주나라 철법(徹法)은 물론 진나라, 한나라, 당나라, 명나라 제도를 논하며 백성에게 전제(田制·토지 제도)와 공부(貢賦·세금과 부역)만큼 중한 것이 없으니 응시생들이 숨김없이 제도에 대해 진술하면 채택, 시행하겠다고 밝힌다.

세종의 식견과 지식인들로부터 조언을 구하는 수렴 정치 정신이 돋보인다.

세종이 과거 시험 문제로 세법을 공론화한 지 3년 만에 첫 결실이 맺어졌다.

세종실록 47권에 나오는 1430년 세종 12년 음력 3월 5일 기사를 보자. 호조는 "그동안 답험(踏驗)손실법으로 세금을 매길 때 관리가 사정에 이끌리거나 아전들 횡포로 폐단이 적지 않았으니, 이제부터 공법(貢法)에 따라 전답 1결(結)에 10말을 거둬 백성의 생계를 넉넉하게 하고, 재해로 농사를 그르칠 경우 세금을 면제하시라"고 보고한다.

3년간 숙의 과정을 거쳐 나온 정액 세금 제도에 세종은 시행 어명을 내렸을까? 그러면 세종이 아니다. "수도 한양의 모든 관리, 전국 각도의 관리는 물론 여염(閭閻)의 세민에 이르기까지 모두 가부를 물어서 아뢰라." 관리는 물론 '여염의 세민' 즉 모든 백성의 의견을 물어보라는 지구촌 왕정 사상 전무후무한 여론조사 요구다.

◆찬성 9만8천657명, 반대 7만4천149명

다섯 달 뒤 1430년 음력 8월 10일 자 세종실록 49권 기사를 공직자들이 꼭 읽어 보길 권하고 싶다. 주권재민 정치철학이 스민 치세의 요체가 담겨, 읽는 이를 숨 가쁘게 만든다.

호조는 한양의 지돈녕부사 안수산부터 전현직 관리들의 찬성과 반대 그리고, 이들이 낸 구체적인 이유와 대안을 자세히 소개하고, 각 도별로 민간인 상대 여론조사 결과를 맨 끝 문장에 전한다. '可者, 凡九萬八千六百五十七人, 否者, 七萬四千一百四十九人: 찬성, 9만8천657명, 반대 7만4천149명' 57% 찬성이지만, 세종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양한 보완을 거쳐 1437년 전라도와 경상도부터 실시한 뒤, 1444년에야 정식 세제로 확정한다. 1427년 과거 시험 문제로 공론화 17년, 여론조사 14년 뒤다. 전국 제도로 정착된 것은 세종의 증손자인 성종 20년 1489년 때다.

◆왕정 시대 민주 정치, 민주주의 시대 왕정 복고

부동산 문제로 민심이 들썩였다. 8월 23일 자 중앙일보를 보면 안철수는 진중권과 대담에서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23타수 무안타 0할0푼0리'라고 깎아내렸다. 더불어민주당은 야당과 토론도 않고, 부동산 세법을 7월 30일과 8월 4일 두 번에 걸쳐 날치기 통과시켰다.

7월 20일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의 느닷없는 '행정수도 세종시 이전 완성' 거론 뒤, 정부와 민주당은 행정수도 이전을 밀어붙인다. 이어 7월 23일 의대 정원 4천 명 증원을 발표했다. 현재 의대 정원 3천58명보다 2배나 많은 숫자를 늘리는 데 아무런 공론화 과정도 없다.

자치경찰제, 공수처, 검찰 직접 수사권 축소… 논란의 중심에 선 어느 정책도 국민과 대화, 공론의 장을 통한 여론 수렴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

7월 28일 '나라가 니꺼냐'는 외침이 인터넷 실검 1위에 올랐지만, 모르쇠다. 완장 찬 함량 미달 민주당 의원만 일부 어용 언론을 통해 프로파간다를 쏟아낸다.

검찰 직접 수사 축소를 언론으로 바꿔 말하면 자체 탐사 보도 금지다. 정부 보도 자료만 전하라는 관치 언론화다. 권력 수사에서 손 떼는 애완 검찰을 의미한다. 세종은 왕정 시대 민주 정치로 국민주권을 일궈냈다. 문재인 정부는 민주주의 시대 왕정 복고로 국민주권을 거세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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