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초(704~787)는 왕오천축국전에서 계빈국(罽賓國·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의 토착인은 호족(胡族)이고, 왕과 군사는 돌궐(突厥) 사람이라고 기록했다. 그리고 이 나라에 낙타, 소, 양, 말, 당나귀, 모직물, 포도, 보리, 밀과 울금향(鬱金香)이 난다고 했다. 수많은 꽃 중에 그가 울금향(튤립)에 주목한 것은 어쩌면 친숙한 꽃이었기 때문은 아닐까?
혜초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당나라 시인 이태백(701~762)은 술을 즐겼다. 시 '객중행'(客中行)에선 울금향 가득한 술을 마시며 어디가 고향인지 어디가 타향인지 알지 못할 만큼 술에 취하고 싶다고도 노래했다. 울금향은 나와 너, 혹은 자아와 초월적인 것이 합일의 상태에 이르도록 해주는 신비의 꽃이었다.
이태백에게 술을 마신다는 것은 초월적인 존재와 대화할 수 있는 지경에 이른다는 뜻이기도 했다. 도교의 색깔이 진하게 느껴지지만, 이슬람 수도자들인 수피(Sufi)들과의 교류 흔적이기도 하다. 이태백은 중앙아시아를 중심으로 실크로드 상권을 장악하고 있던 소그드족의 후예였다.
소그드를 합병한 돌궐은 낙원을 찾아 중앙아시아를 떠났다. 그들의 주요 교역품 가운데 하나였던 톈산산맥의 신비로운 꽃, 튤립을 안은 채였다. 그리고 마침내 아랍의 사막과 아나톨리아의 고원에 그들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최고의 낙원인 튤립 정원을 만들었다.
11세기에 이르면 튤립은 그들의 유목 예술에서 압도적으로 나타난다. 궁전의 색채 타일을 비롯해 도기와 직물에서도 그 문양을 볼 수 있다. 그리고 튤립은 실크로드의 서쪽 끄트머리, 오스만 투르크의 국화로 화려하게 피어났다.
돌궐은 수나라와 대결하면서 고구려와도 활발히 교류헸다. 9세기 중반에 등장한 이븐 쿠르다드비의 '도로와 왕국총람'에는 "중국 저쪽에 신라라고 불리는 금이 풍부한 나라가 있다. 그곳에 진출한 무슬림들은 자연환경의 쾌적함 때문에 정착해 떠날 생각을 아니한다"고 적혀 있다. 이는 신라를 언급한 이슬람권 첫 저술로서, 당시 중국에 거주하던 신라인이나 한반도를 다녀온 무슬림 동료들에게서 얻은 정보들이다.
실크로드를 통한 신라와 서역의 교역은 우연이 아니라 어쩌면 튤립을 향한 그들의 열망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증거는 신라를 배경으로 한 페르시아 서사시 '쿠쉬나메'(매일신문 8월 18일 자 11면)에서 볼 수 있다. "모든 정원은 튤립으로 가득했고, 튤립들은 향기로웠다"는 표현처럼 튤립향 가득한 신라는 서역인들이 꿈꾼 지상낙원이었던 것이다.
튤립의 매력은 이태백, 수피 시인 루미, 오마르 카이얌, 하피즈 등을 통해 자연을 움직이는 신비한 생명력의 보편적 상징으로 자리잡게 됐다. 그러나 엉뚱하게도 르네상스 유럽이 그 주인 행세를 하고 나섰다. 그들에게 튤립은 더 이상 자연의 신비로움이 아니라 돈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얻을 수 있는 투기의 대상이었다.
네덜란드를 중심으로 휘몰아친 튤립 열풍은 하지만 거품이 되어 순식간에 17세기 유럽 경제를 곤두박질시켰다. 튤립은 참으로 반란적인 꽃이어서 꽃은 알뿌리를 감염시킨 바이러스로 말미암아 병들었고, 교류의 길은 막히고, 세상은 증오의 공간이 되고 말았다. 근대가 가져온 실크로드의 모습이다.
이런 대재앙 속에서도 튤립은 더 아름답게 피어났다. 사실 바이러스 자체는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님을 튤립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바이러스를 퇴치하는 대신 자신의 뿌리 속에서 함께 자라도록 스스로 숙주 노릇을 했다.

그렇게 태어난 튤립이 '셈페르 아우구스투스'(Semper Augustus)라는 희귀종이다. 특정 색소를 만드는 단백질이 색소 유전자를 파괴시키는 바이러스로 말미암아 돌연변이를 일으켰다. 마치 붓으로 색칠한 것처럼 단색의 꽃잎 위에 또 다른 색의 무늬가 돋보이는 이 꽃 한 포기 값은 당시 집 한 채와 맞먹었다고 한다.
김중순 계명대 교수(실크로드중앙아시아연구원장)는 "튤립에 감춰진 역사와 상징적 의미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며 "실크로드는 교역의 길뿐만 아니라 팬데믹을 겪으며 인류가 함께 고통을 나눈 '상처 입은 길'이기도 하다. 그 길은 앞으로도 우리 인류를 한층 더 고양된 문명의 세계로 인도하게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지난 이천년 세월 동안 실크로드의 동쪽 끄트머리를 지탱해온 것은 화쟁(和諍)과 융합이라는 신라 특유의 개척정신이었다"고도 했다. 튤립이든 울금향이든, 모두 같은 뿌리에서 서로 다른 이름으로 피는 꽃들처럼 같고 다름은 대립항이 아니라 변증법적 합일을 위한 전제조건이며, 준비 단계라는 설명이다.
김 교수는 특히 "같고 다름은 적자생존 관계가 아니라 협력자 생존 관계로 설명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21세기의 우리에게 주어진 문명사적 과제는 실크로드의 동쪽 신라의 땅에서 또 한송이의 아름다운 튤립을 꽃피우는 일이라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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