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헌 기자 davai@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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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매일칼럼] 역사의 암흑기를 넘어

    [매일칼럼] 역사의 암흑기를 넘어

    고대 그리스 역사가 플루타르코스가 쓴 '영웅전'의 그리스어 원래 제목은 '삶의 비교'(Bioi Paralleloi)이다. 알렉산더 대왕과 줄리어스 시저처럼 공통점이 있는 로마와 그리스 명망가를 묶어서 대비시켰다. 물론 그리스인 취향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저자는 애당초 인물 각자가 성취한 업적의 크기에는 관심이 없었다. 대신 그들의 본성을 비교함으로써 후세가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닮아야 하는지를 말하려 했다. 인간의 본질을 날카롭게 추구한 중국 사마천의 '사기 열전'(史記 列傳)과도 일맥상통한다. 과문한 탓에 훗날 어떤 평가가 내려질지는 모르지만, 요즘 각국 지도자 가운데 쌍(雙)으로 기록될 만한 이는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아닐까 싶다. 이른바 '스트롱맨'들이다. 집권 전에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는 공통점도 있다. 실제로 푸틴이 3선에 오른 2012년 러시아 한 일간지는 그를 톨스토이의 소설 속 목각 인형에 빗댄 만평을 실었다. 러시아판 피노키오인 '부라티노'의 머리 윗부분이 왕관 모양으로 자라는 그림이다. 전임자 보리스 옐친의 '인형'이 차르(황제)로 거듭난 걸 꼬집었다. 같은 해 최고 지도자에 오른 시진핑은 이미 2018년 헌법 개정을 통해 장기 집권 체제를 완성했다. 지난해 중화인민공화국 사상 첫 3연임에 성공, 2028년 3월까지로 임기가 늘어났다. 하지만 추가 연임을 위해서라면 대만을 침공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문제는 이들이 자국뿐 아니라 한반도에 영향을 미칠 국가들의 지도자란 사실이다. 특히 최근 북한과는 더욱 밀착하고, 한국은 대놓고 적대시한 경우가 잦다는 점에서 우려를 거둘 수 없다. 이달 중에 이뤄질 두 정상의 중국 회동을 주목하는 이유다. 상황이 심상치 않자 우리 정부는 경색 국면 해소에 애쓰는 모양새다. 주요 국가들이 보이콧한 푸틴 대통령의 다섯 번째 취임식에 이도훈 주러시아 대사가 참석한 게 이런 맥락이다. 또 조태열 장관은 13일 한국 외교 수장으로선 6년 반 만에 중국을 찾는다. 이달 말 한·중·일 정상회의를 앞둔 윤석열 대통령도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 한·러 관계 개선을 시사했다. "불편한 관계"라면서도 "가급적 원만하게 잘 관리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질문이 없었던 까닭에서인지 중국 관련 언급은 없어 아쉬움을 남겼다. 정부의 이 같은 외교 스탠스 변화는 바람직하다. 지난 2년간 한·미·일 공조를 다져 놓은 만큼 이제 중국, 러시아와의 관계에서도 전략적 자율성을 발휘해야 한다. 게다가 오는 11월 미국 대선 결과에 따라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국면이 펼쳐질 수도 있지 않은가. 물론 소원해진 관계 회복을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는 적지 않다. 우리 노력만으로는 풀 수 없을 정도로 국제 정세는 꼬일 대로 꼬여 있다. 총선 승리로 기세가 오른 야당이 '일본 라인 사태'를 두고 민족감정 공세에 나서는 등 국내 정치 상황 역시 녹록지 않다. 그럼에도 윤석열 정부는 '역사와의 대화'에 오롯이 집중해야 한다. 주변 열강(列強)들이 또다시 잘못된 판단을 내리지 않도록 국익을 챙기는 외교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남은 3년 동안 좀 더 유연해진다면 이 정권에 대한 후세의 평가는 결코 박하지 않을 것이다.

    2024-05-12 16:50:18

  • 매일 탑리더스아카데미13기 대마도 단합대회

    매일 탑리더스아카데미13기 대마도 단합대회

    매일신문 탑리더스아카데미 13기(회장 김혜정) 회원들은 지난 21일부터 22일까지 1박2일 일정으로 일본 대마도로 단합여행을 다녀왔다. 2020년 2월에 아카데미를 수료한 원우들은 4월 월례회를 겸한 이번 행사에서 대마도 곳곳을 둘러보며 우의를 다졌다.

    2024-04-22 15:02:00

  • [매일칼럼] 아뢰옵기도 송구하오나…

    [매일칼럼] 아뢰옵기도 송구하오나…

    국내 개봉 일본 영화 중 최고 흥행작인 '스즈메의 문단속'은 한 여고생의 무용담이다. 우연히 재난을 부르는 문을 열게 된 스즈메가 평화를 위해 필사적으로 문을 닫아 간다는 내용이다. "아뢰옵기도 송구한 히미즈의 신이여"로 시작하는 주문(呪文)이 꽤 인상적이다. 앞으로 한반도에 펼쳐질 대재앙의 문은 인구 절벽이 아닐까? 국가 소멸 위기까지 거론되는 각종 통계들을 보면 섬뜩하기만 하다. 심각한 저출생 고령화 현상의 지속은 우리 사회 모든 분야에서 파괴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물론 우리만 그런 것은 아니다. 미국 워싱턴대 연구에 따르면 2050년 세계 204개 국가 중 155개 나라가 인구 감소를 겪을 전망이다. 최근 일본 교토대 연구진은 100년 안에 자국 인구가 현재 1억2천만 명에서 3천만 명대까지 급감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럼에도 외신들이 큰 관심을 보일 정도로 한국의 국가로서 지속가능성은 우려스러운 수준이다. 수도권 쏠림까지 심화하면서 그야말로 사라질 처지에 몰린 지방자치단체들은 인구와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다소 '웃픈' 뉴스들에서조차 절박함이 느껴진다. 제22대 총선에서 여야 역시 저출생 관련 공약을 쏟아 냈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은 나란히 인구 대응 부처 신설을 내걸었다. 여러 부처에 흩어진 저출생 정책을 부총리급의 인구부로 통합해 국가 차원에서 대응한다는 구상이다. 이는 강력한 권한을 가진 인구 위기 대응 컨트롤타워 구성에 정치권이 동의한다는 의미다.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저고위) 기능에 한계가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저고위는 집행권, 예산권이 없어 각 부처 정책의 나열에 그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저고위는 조만간 저출생 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핵심은 역대 최저치를 매년 갈아 치우고 있는 합계출산율을 현재 0.72명에서 1명대로 끌어올리는 중장기 방안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쥐어 짜내기 식 아이디어로 얼마나 성과를 거둘지는 미지수다. 인구부 신설에 합의하더라도 정치권이 풀어야 할 과제는 적지 않다. 부처 간 업무 조정을 통해 새 부처의 역할을 설정하고, 관련 법률·제도를 정비해 명확한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업무 중복에 따른 비효율, 옥상옥(屋上屋) 논란만 이어질 터이다. 특히 정부 부처를 새로 만들려면 정부조직법을 고쳐야 하는 만큼 여야 합의가 필수적이다. 여성가족부의 존폐 여부가 이 과정에서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기존 저출생 정책에 대한 재평가를 놓고서도 여야는 충돌할 가능성이 있다. 각 정당이 공약으로 제시한 저출생 대책 상당수 또한 법 개정과 재정 투입이 전제이다. 육아기 유연근무 및 근로시간 단축, 신혼·출산 부부를 위한 주거 지원 등이 대표적이다. 이런 대변화를 두고 정치권이 당리당략에 매몰돼 맞선다면 저출생 극복은 요원해진다. 현 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대통령이 제1 야당 당수와 곧 회동한다. 국가 소멸 위기에 대한 논의야말로 지도자들이 가장 먼저 다뤄야 할 의제가 아닐까 싶다. 여야가 머리를 맞대 현실성 있는 저출생 대책을 제시한다면 정치에 대한 국민 시각을 바꿀 기회가 될 것이다.

    2024-04-21 16:41:54

  • [매일 칼럼]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라고?

    [매일 칼럼]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라고?

    미국의 수도 워싱턴DC는 연중 이맘때 가장 붐빈다. 북미 최대 벚꽃 축제인 '내셔널 체리 블로섬 페스티벌'을 보러 150만 명 이상이 찾는다. 1912년 일본이 양국 우호의 상징으로 벚나무 3천 그루를 기증한 게 그 시발점이다. 그런데 워싱턴DC가 행정·입법·사법 중심지가 된 데에는 반전(反轉)이 있다. 시위대의 '방해' 없이 국정을 논하려고 일부러 외진 곳을 새 도읍지로 택했다는 것이다. 독립전쟁을 치르면서 월급을 못 받은 군인들이 수시로 필라델피아에 몰려와 불만을 쏟아내면서다. 결국 '건국의 아버지들'(Founding Fathers)은 새 수도 건설을 결정했고,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은 1793년 국회의사당 머릿돌을 놓았다. 하지만 새 도시에 만족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관료는 물론 의원들 스스로도 황무지와 늪지에 들어선 입지를 비난했다. 출범 20년이 되도록 인구 5천 명에 그칠 정도로 외면받던 새 수도에 대한 국민들의 태도가 바뀐 것은 국가적 비극이 계기였다. 1814년 영국군의 공격으로 백악관, 국회의사당 등이 불타 버렸다. 애국심으로 뭉치자 수도를 다시 정하자는 여론은 수그러들었다. 관광객뿐 아니라 전 세계 로비스트들이 몰려드는 워싱턴DC의 현재 위상에서 이런 역사를 떠올리기는 쉽지 않다. 세계 정치·외교의 핫 플레이스가 시위대를 피하려고 만든 도시라니? 더구나 우리 정치권이 세종특별시의 롤 모델로 삼는 도시가 아닌가! 올해 출범 12년째인 세종시가 느닷없이 총선 이슈로 떠올랐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국회의 완전한 세종시 이전'을 공약으로 발표하면서다. 야당은 물론 대통령실까지 거들고 나서면서 선거에서 누가 이기든 추진할 분위기는 조성됐다. 그러나 과정이 순탄하진 않을 전망이다. 우선 헌법재판소의 행정수도 이전 위헌 결정과 배치될 소지가 있어 개헌이 필요하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11개 국회 상임위원회를 '세종시 국회 분원'으로 이전한다고 돼 있는 국회법도 고쳐야 한다. 국가 재정에 빨간불이 들어온 상태에서 예산 확보 역시 문제다. 일부 이전을 전제로 하는 국회 세종의사당 건립 추정 예산이 3조6천억원인데 완전 이전에는 훨씬 큰돈이 필요하다. 법사위·외교통상위가 세종시로 가면 법무부, 외교부, 통일부도 옮겨야 한다. 무엇보다 '잿밥' 때문에 급조된 공약이 아닌지 우려스럽다. 실제로 한 위원장은 "여의도와 그 주변의 개발 제한을 풀어서 서울 개발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했다. 국가 백년대계를 국회 서울 48석, 충청 28석과 수도권 개발의 지렛대로만 생각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물론 한 위원장은 행정 비효율 해소, 국가균형발전 촉진, 지역 경제 활성화라는 당위성도 제시했다. 하지만 이왕 하려면 홍준표 대구시장 등의 지적처럼 대법원, 감사원의 지방 이전도 함께 검토하는 게 마땅하다. 이는 헌재의 행정수도 이전 위헌 결정과도 무관하다.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다'라는 식으로 중대한 국사를 툭 던지는 모습은 곤란하다. 지방균형발전, 지방분권 차원에서 차분히 접근하지 않고 얼렁뚱땅 밀어붙였다가는 역효과를 초래할 수 있다. 선거가 끝나고 벚꽃이 지고 나면 그냥 없던 일로 할 건가?

    2024-03-31 17:57:30

  • [매일칼럼] 가여운 대한민국 민주주의

    [매일칼럼] 가여운 대한민국 민주주의

    15세기 중반에서 16세기 후반에 걸친 센고쿠시대(戰國時代)는 일본 최대의 난세였다. 지역을 분할해 다스리던 다이묘(大名)들의 야망이 충돌하면서 전란이 끊이지 않았다.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 등이 모두 다이묘 출신이다. 그런데 이 시대를 평정한 도쿠가와의 세력이 처음부터 강했던 것은 아니다. 토호(土豪) 출신이라고는 해도 이웃 다이묘들에게 인질로 끌려가 청소년기를 보내야 했을 정도였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강한 자'라는 말을 증명한 셈이다. 그는 젊은 시절 오다에게 패한 뒤 수치심에 자결하려 했으나 고승의 가르침을 받고 재기했다. 자신의 군기(軍旗)에도 적은 '염리예토 흔구정토'(厭離穢土 欣求淨土)였다. 어지러운 현세를 극락정토로 만들겠다는 웅대한 포부 덕분에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우거지상(相)'이란 초상화도 이런 그의 성격을 보여준다. 다케다 신겐에게 대패한 뒤 비참한 모습을 오래 기억하고 반성하기 위해 그리게 했다고 한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 역시 창사 이래 최대 적자를 냈던 재작년 이 그림을 내걸고 사과한 바 있다. 지난 일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면 큰 뜻을 이루기 어렵다는 것은 동서고금의 진리이다. 자신의 역량을 인정하고 더욱 분골쇄신(粉骨碎身)하는 것도 대업을 꿈꾸는 이가 마땅히 가져야 할 자세다. 인생의 목표를 멀리 높게 둬야 눈앞의 시련들을 견뎌 낼 수 있다. 그러나 총선 공천이 막바지에 이르면서 온갖 잡음이 나오고 있는 우리 정치권의 정신세계는 완전 딴판이다. 가랑이 밑을 기어가는 치욕(袴下之辱)을 언급하며 승복한 이도 있지만, 명분이 없어 보이는데도 뜬금없이 단식에 나서거나 탈당하는 이들이 속출한다. 비명횡사(非命橫死)가 아니라 비명횡사(非明橫死)할 수 있다는 것도 예상 못 한 일이 아니다. 대선 때 내걸었던 불체포특권 포기 공약마저 손바닥 뒤집듯 하는 이들 아닌가. 불공정 여론조사에 따른 후폭풍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제1 야당 내부에서 쏟아진다. 특히 위성정당 재연에 따른 폐해는 앞으로 4년을 벌써부터 짜증 나게 한다. 다시는 안 봐도 될 줄 알았던, 검증되지 않은 금배지들의 요설(妖說)과 탐욕의 난무는 민주주의를 더욱 초라하게 만들 것이다. 역대 최악의 국회는 아직 시작하지도 않았을까 봐 두렵다. 상식을 뒤엎는 꼼수는 중도·실용을 표방한 제3지대에 대한 기대마저도 버리게 했다. 개혁신당은 위성정당 창당은 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위장결혼'에 이어 보조금 먹튀 논란을 자초했다. 보조금자진반납법을 발의한다지만 이미 유권자의 마음은 돌아섰다. 국민의힘 또한 정치 개혁을 이끌기에는 역부족이다. 위성정당이란 기형적 제도를 막지 못한 정치력 부재부터 책임져야 한다. 대선 승리 이후 2년 동안 자중지란에 빠져 민주주의를 바로 세울 기반을 닦지 못한 채 야당의 자책골만 기다리는 모습이 안쓰럽다. 통계청의 '국민 삶의 질 2023' 보고서에 따르면 시민들이 느끼는 '정치적 역량감'은 10년래 최저였다. 유권자들의 정치에 대한 실망이 포기 수준이다. 샤를 드골은 "정치는 너무나 중요해서 정치인에게만 맡겨 둘 수 없다"고 했지만 이제 우리는 누구를 믿어야 하나.

    2024-02-25 18:11:50

  • [알립니다] 본사 경영직 사원 채용 최종 합격자

    [알립니다] 본사 경영직 사원 채용 최종 합격자

    ◆본사 경영직 사원 채용 최종 합격자 김성협, 이응규, 이한수

    2024-02-13 17:09:42

  • [인사] 매일신문

    [인사] 매일신문

    ◇매일신문 인사(13일 자) ▲문화사업국장 김주호 ▲문화사업국 부국장 겸 문화사업부장 성일권 ▲독자서비스국장 최원우 ▲독자서비스국 마케팅부장 정진호

    2024-02-12 15:54:23

  • 매일 탑 리더스 아카데미 13기 회장 이·취임식

    매일 탑 리더스 아카데미 13기 회장 이·취임식

    매일 탑 리더스 아카데미 13기는 지난 22일 호텔 인터불고 대구(수성구 만촌동)에서 회장 이·취임식을 열었다. 양덕균 제3대 회장(스타디움컨벤션웨딩 대표)이 물러나고, 김혜정 제4대 회장(㈜김혜정산후조리원 대표)이 취임했다. 김 신임 회장은 "무한한 책임감과 사명감으로 회원들의 단합에 앞장서겠다"고 약속했다.

    2024-01-24 16:45:14

  • [매일칼럼] 투표하지 않을 용기

    [매일칼럼] 투표하지 않을 용기

    누군가의 묻혀 있던 실력이 활짝 꽃피는 것을 보는 건 꽤 흥미로운 일이다. 아이돌, 트로트, 크로스오버, 록밴드, 스트리트댄스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TV 오디션 프로그램을 즐겨 보는 이유다. 이 땅에 재능 있는 음악인이 이토록 많다는 사실이 늘 놀랍기만 하다. 그런데 내겐 팬덤(fandom)이 될 자질은 애초 없는 듯하다. 1라운드 이후에는 관심이 줄기 시작해 종영할 때쯤이면 호기심이 영 사라진다. 그 과정에서 각자의 인생 스토리, 음악에 대한 열정과 실력은 충분히 알게 되기에 우승 여부는 흥밋거리가 되지 않는다. 경연 프로그램의 덕목은 기회 제공이라 생각한다. 불공평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세상에는 능력이 있어도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는 사람이 반대의 경우보다 훨씬 많다. 그들에게 타고난 재능과 노력을 널리 알릴 시간을 줌으로써 우리 사회는 더 발전할 수 있다. 물론 중국 전국시대 사람 모수(毛遂)처럼 자신이 '주머니 속의 송곳'임을 알릴 기회를 모든 사람이 갖는 것은 아니다. 혹 주머니 속에 있다 하더라도 마부 백락(伯樂)의 안목이 없다면 천리마로 거듭나기 어렵다. 혼자 힘만으로 성장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총선이라는 큰 판이 펼쳐지면서 낭중지추(囊中之錐)를 자처하는 각 정당 영입 후보들이 속속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눈길을 확 사로잡을 만한 인재는 딱히 눈에 띄지 않아 아쉽다. TV 오디션 프로그램이라면 초반부터 흥행에 참패한 꼴이다. 여기에는 여러 원인이 있을 것이다. 정치 피로도가 쌓이면서 뛰어난 신예들이 여의도의 러브콜을 외면했거나 인재풀이 고갈됐을 수 있다. 그간 각 정당의 나팔수 역할에 그친 '새 얼굴'들에 대한 실망감이 국민들에게 기시감으로 작용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21대 국회를 두고선 역대 최악이란 평가가 많다. '내로남불'과 권력 투쟁에만 몰두한 야당, 존재감이라곤 없이 줄서기에만 급급한 여당을 바라보는 민심은 결코 우호적이지 않다. 국회의원은 더 큰 부와 명예를 위한 스펙 쌓기용이란 의구심이 지워지지 않는다. 기존 정당의 혁신에 대한 낮은 기대감 탓에 관심은 제3지대에 모이는 듯하다. 구체적인 비전도, 참신한 새 인물도 아직 내놓지 못했지만 감동 없는 권력형 물갈이보다는 신당들의 합종연횡이 더 호기심을 자극한다. 지리멸렬할 공산도 당연히 있다. 일단 굵직한 분파만 '개혁신당' '새로운미래' '미래대연합' '한국의희망' '새로운선택' 등 5개에 이른다. 최대공약수 찾기조차 쉽지 않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는 지난 20일 중앙당 창당대회를 마친 뒤 '빅 텐트' 구상에 대해 "골든타임은 이미 지났다"고도 했다. 우리 정치사에서 명멸을 거듭했던 제3지대가 이번에는 어디를 본진(本陣)으로 할지도 궁금하다. 앞서 김종필의 자민련은 영남, 안철수의 국민의당은 호남에서 다수의 의석을 차지한 바 있다. 이번에는 수도권 표심이 달라질 수 있다는 관측이 적지 않다. 성공의 관건은 제3지대가 가치 지향성을 보여 주느냐이다. 적어도 각자의 정치생명 연장을 위한 이합집산이 아니라는 점에 유권자들이 동의할 정도는 돼야 한다. '이삭 줍기'를 통한 도토리들의 몸집 키우기로만 비친다면 투표하지 않을 용기가 필요할지도 모를 일이다.

    2024-01-21 17:21:21

  • [기고]청렴과 적극,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아야

    [기고]청렴과 적극,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아야

    지난 연말 국민권익위원회가 발표한 2023년도 공공기관 청렴도 평가에서 경상북도와 대구시가 높은 평가를 받았다. 올해 종합청렴도는 공공기관과 업무 경험이 있는 민원인 15만7천 명과 내부 공직자 6만7천 명 등 222만4천여 명이 참여한 설문조사 결과인 '청렴체감도', 각 기관의 올해 '청렴노력도', 그리고 부패 사건이 발생한 현황인 '부패 실태 평가'를 합산해서 산정했다. 전체 대상 기관 중 가장 우수한 1등급을 2년 연속 받은 기관은 질병관리청, 경주시, 여주시, 보성군, 부여군, 구로구 등 5곳이었다. 광역자치단체 중에서는 1등급이 전년에 이어 한 군데도 없었다. 경북도·대구시·세종시·제주도가 2등급으로 분류됐다. 경북도는 4년 연속으로 종합청렴도 2등급을 받아 최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특히 지난해 청렴노력도 분야에서는 광역자치단체 가운데 유일하게 1등급을 달성했다. 반부패정책 총괄 플랫폼인 '청백리 회의'를 출범시켜 이철우 도지사의 강력한 의지 속에 다양한 시책을 추진한 것이 주효했다. 아울러 부패 취약 분야 심층 면접 등의 분석을 바탕으로 ▷반부패 청렴 추진 체계 재정립 ▷정책 소통을 통한 청렴 역량 내재화 ▷부패 취약 분야 집중 개선 ▷청렴문화 확산 4대 전략, 12대 과제, 35개 세부 과제를 추진했다. 대구시는 지난해 대비 2단계 상승, 2등급으로 도약했다. 이는 광역자치단체 중에서는 등급이 상승한 유일한 기관이라는 점에서 관심을 받는다. 대구시는 지난 2년 연속 4등급의 부진을 벗어나기 위해 홍준표 시장이 직접 '파워풀 대구 청렴 간부회의'를 주재해 '청렴정책 종합계획' 추진 상황을 점검했다. 또한 부패 차단을 위해 건설·인사 분야 비리 원스트라이크아웃제를 시행하는 등 맞춤형 시책을 강도 높게 추진했다. 경북도와 대구시의 이러한 성과는 기관장의 관심과 공직자의 지속적인 노력, 열정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나 청렴도에만 집중하면서 공직자가 복지부동과 소극행정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공공기관뿐만 아니라 국민 모두가 청렴한 행동과 태도를 보여주고, 부패에 대해 묵인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면 청렴도는 점점 높아질 것이다. 이제부터는 청렴도를 기반으로 주민과 소통하고 문제에 적극 대응하며 혁신을 추구하는 적극행정을 추진해야 한다. 이는 국민의 신뢰와 만족을 얻는 방법이다. 따라서 청렴과 적극,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 길을 개척해야 할 것이다. 적극행정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다음을 염두에 두고 각각에 맞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첫째, 국민의 목소리를 듣고 피드백을 반영해야 한다. 이를 통해 행정 서비스의 품질과 접근성을 개선할 수 있다. 둘째, 직접 문제를 찾고 해결해야 한다. 자체적으로 문제점을 진단하고 개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셋째, 혁신을 추구해야 한다. 창의적이고 효율적인 일 처리 방식을 개발하고 시행해야 한다. 디지털화와 빅데이터, 메타버스 등을 활용하여 행정 서비스를 혁신해야 한다. 넷째, 청렴도와 적극행정을 조화시키려면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해야 한다. 공직자들은 정부의 핵심 가치와 역할을 명확히 이해하고, 이를 실천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청렴도와 적극행정의 조화는 결코 쉬운 과제가 아니다. 그러나 공직자에게 요구되는 청렴도와 적극행정은 불가피한 도전이다. 이는 동시에 혁신과 발전의 계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진정한 도전의 시작이다.

    2024-01-11 15:42:35

  • [매일칼럼] 달콤한 마지막 브라우니를 먹으려면…

    [매일칼럼] 달콤한 마지막 브라우니를 먹으려면…

    크리스마스 즈음 TV에 자주 나오는 영화 가운데 하나가 '노팅 힐'(Notting Hill)이다. 톱스타 여배우와 평범한 책방 주인의 동화 같은 사랑 이야기가 옆구리 시린 계절에 딱이기 때문이리라. 촬영 무대인 런던 포토벨로 마켓은 로맨스를 꿈꾸는 이들로 늘 가득하다. 남자 신데렐라 이야기인 만큼 영화는 상투적인 설정의 연속이다. 얼떨결에 남주인공 가족의 생일 파티에 초대된 여배우의 넋두리부터 그렇다. 가장 불쌍한 인생에게 마지막 브라우니 조각을 양보하자는 제안에 선뜻 자신의 민낯을 낯선 이들 앞에 드러낸다. 그는 10대부터 다이어트하느라 굶주려 왔고, 남자 친구 복이 없어 폭행당하기도 했다고 털어놓는다. 예쁜 얼굴을 가지려 고통스러운 수술을 여러 차례 받았다고도 고백한다. 나이가 더 들면 한때 유명했던 사람으로만 기억될 것이라며 불안해한다. 그런데 현실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십중팔구는 상대를 '관종'(關種)이라 생각할 것이다. 타인의 관심을 끌고 싶은 욕구가 질환 수준이 아니고서야 스스로 치부를 홀라당 들춰낼 리 없다. 행여 정말 안타까운 사연이 있다 하더라도 의심부터 하기 마련이다. 총선이 다가오면서 '불쌍한 인생 호소인'들이 넘쳐난다. 화려한 스펙으로 무장한 채 어두운 뒷골목에서 권력을 좇던 무리들이 느닷없이 깨어 있는 양심인 척한다. 호의호식(好衣好食)하며 누가 봐도 꽃길만 걸어온 이들이 서민 코스프레에 바쁘다. 사법 처리를 앞둔 야당 인사들은 죄다 자신에겐 잘못이 없다며 비(非)사법적 명예 회복을 외친다. 직군 대표라는 본래 역할보다 정치 퇴행에만 앞장선 일부 비례대표들은 반성은커녕 지역구 자리를 기웃거린다. 수오지심(羞惡之心) 따위는 애당초 포기한 부류다. 염치없기는 여당 후보들 역시 마찬가지다. 임기 내내 줄서기에만 급급해 놓고선 "미워도 다시 한번"을 읍소한다. 더불어민주당 초선 4명이 앞다퉈 불출마를 선언하는 동안에도 용퇴 의사를 밝히거나 험지 출마를 선언한 '솔직한' 초선이 아직 한 명도 없다. 가장 가관인 것은 그동안 시련을 많이 겪었다며 출마를 준비 중인 이른바 '올드 보이'들이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예비후보 등록까지 마쳤다. 도덕성 논란이 있었거나 유죄 판결을 받았다가 사면·복권된 인사들마저 정치적 박해 운운하는 모습에 말문이 막힌다. 크리스마스 캐럴처럼 때만 되면 등장하는 정당들의 혁신위원회, 비상대책위원회에 유권자들의 절망은 깊어진다. 이미 나와 있는 정답을 지키지 않아 사달이 났는데도 모르는 척 또다시 가장무도회를 연다. 자정(自淨) 능력이 없는데 성과가 나올 리 만무하다. 서울 강서구청장 보선 결과는 물론 각종 여론조사에서 앞서가는 야당은 그렇다 치고 국민의힘은 더 절박해져야 한다. 총선 패배는 정권 레임덕을 넘어 보수 진영 궤멸의 시작이다. 비대위 얼굴마담에 누구를 앉히느냐는 승부를 뒤집을 카드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해법은 국민 신뢰를 되찾는 것뿐이다. '마탄의 사수에겐 시간이 없다'라는 제목으로 지난해 7월 이 지면에 쓴 어쭙잖은 글에서 말한 대로 실수는 있을 수 있다. 마지막 브라우니를 먹으려면 하소연만 늘어놓을 게 아니라 공정과 상식이란 시대적 사명에 화답해야 한다.

    2023-12-17 19:08:24

  • [매일칼럼] 연민도, 존경도, 사랑도…

    [매일칼럼] 연민도, 존경도, 사랑도…

    1847년 초연된 주세페 베르디의 오페라 '맥베스'는 여러 면에서 독특하다. 우선 당시로서는 드물게 테너가 아닌 바리톤이 남자 주연을 맡았다. 풍부한 성량과 넓은 음역에다 연기력까지 갖춰야 해 바리톤 최고의 배역으로 꼽힌다. 맥베스가 최후를 예감하며 부르는 아리아 '연민도, 존경도, 사랑도' 역시 명곡이다. 권력을 향한 욕망이 부질없음을 한탄하는 가사가 인상적이다. "연민도 존경도 사랑도 노년의 안위도 다 사라진다. 오직 저주만이, 불행했던 기억만이 나의 만가(輓歌)가 되리라." 또 하나의 특징은 오페라 사상 유례가 거의 없는 '익명'의 여주인공이다. 셰익스피어의 원작대로, 이름 없이 맥베스 부인으로만 소개된다. 하지만 나약한 남편을 부추겨 결국 왕위를 찬탈하는 그에게 이름 따위는 애당초 중요하지 않았으리라. 셰익스피어와 동시대에 조선에는 김개시(가희)라는 궁녀가 있었다. 이름을 두고선 광해군이 '개똥'이란 천한 본명 대신 '가희'라고 불렀을 것이란 학설과 시(屎)가 '똥 시'이면서 '끙끙거릴 히'로도 쓰여 음차(音借)였을 것이란 해석도 있다. 아무튼 김개시는 맥베스 부인 못지않은 권력욕의 화신(化身)이었다. 개혁 정치와 실리 외교를 폈던 광해군을 혼군(昏君)으로 이끌어 끝내 폐위의 빌미를 제공했다. 그에게 임금 입맛에 맞는 음식을 올려 승진했다는 '산삼 정승' '잡채 판서'가 등장할 정도였으니…. 다만 김개시의 최후는 국정 농단 측면에서 쌍벽을 이루는 연산군의 장녹수와는 달랐다. 반정 세력에 포섭돼, 쿠데타를 두려워하던 주군을 오히려 안심시켰다. 어리석은 욕망에 병든 영혼이 사직(社稷)을 위태롭게 한 것도 모자라 배신까지 한 최악의 사례다. 소수 측근에만 의지하는 리더와 이에 영합하는 참모의 존재가 얼마나 위험한지는 역사가 증명한다. 우리도 참모의 그릇된 권력관이 야기한 비극을 여럿 봤다. 반대로 참모의 적절한 발탁과 활용은 그 시대의 성공을 좌우하는 결정적 요인이었다. 당연히 참모의 역할은 시기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새로운 리더십 구축이 우선일 때도 있고, 안정 추구가 시급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느덧 내년이면 집권 3년 차를 맞는 용산 대통령실에 필요한 인재는 어떤 덕목을 갖춰야 할까? 가장 먼저 통찰력 있는 어젠다 설정과 적절한 정책 개발을 꼽을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 다양한 분야에서 변화가 추진됐으나 국민들이 느끼기에는 아직 많이 부족하다. 특히 대한민국의 미래가 걸린 노동·교육·연금 개혁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참모들이 도덕성과 청렴성, 소통과 포용의 리더십까지 갖춘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현 정부 들어 국회의 인사청문보고서 미채택률은 절반에 육박한다. 거대 야당의 '근육 과시' 탓이기도 하지만 부실한 인사 검증도 원인이다. 대통령실이 대규모 인적 쇄신을 준비 중이다. 총선에 나설 '어공' '늘공'의 빈자리도 메워야 하고, 집권 3년 차 개혁 드라이브 선봉에 설 인물도 찾고 있다. 대통령은 최근 "내가 모르는 사람이어도 좋다"며 인재 풀 확보를 지시하기도 했다고 한다. 물론 지역과 성별에 따른 안배도 살펴야겠지만 필요충분조건은 아니다. 보여주기 식 깜짝 발탁은 대중의 호기심만 자극할 뿐이다. 한가하게 MBTI 검사나 해서는 안 된다.

    2023-11-19 19:53:57

  • [매일칼럼] 당신이 'Quisling'입니까?

    [매일칼럼] 당신이 'Quisling'입니까?

    영어에는 배신자의 뜻을 가진 단어가 의외로 많다. 흔히 쓰이는 traitor, betrayer 말고도 apostate, collaborator, colluder, defector, fraternizer, renegade, turncoat 등등이 유의어로 사전에 나온다. 종교·민족·영토 문제가 얽히고설킨 영향이 아닐까 싶다. Quisling도 그런 의미로 사용되는데 흥미롭게도 원래는 인명이었다. 우리로 치면 을사오적(乙巳五賊)쯤 되는 20세기 노르웨이 정치가 비드쿤 크비슬링이다. 자신의 이름을 밝히는 그에게 히틀러가 진짜 이름을 대라고 윽박지르는 풍자만화도 당시에 있었다고 한다. 설명을 좀 보태자면 크비슬링은 장래가 촉망되던 군인이었다. 하지만 러시아 혁명 이후 반공을 기치로 내건 '노르드민족부흥'이란 정당을 만들고, 점차 파시즘에 심취했다. 꼭두각시 수반으로서 나치에 철저히 협력했던 그는 결국 1945년 10월 24일 총살됐다. 요즘 우리 정치판에도 배신자의 동의어가 쏟아지고 있다. '수박'(겉은 더불어민주당 속은 국민의힘)과 '내부 총질'이 대표적이다. 야당 지지자 사이에선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 투표에서 찬성 표를 던진 민주당 의원을 겨냥한 '가결 유다(Judas)'란 멸칭도 등장했다. 미국 역시 '배신자' 때문에 국정이 마비될 위기다. 이달 초 권력 순위 3위인 하원 다수당(공화당) 소속 하원의장이 미 의회 사상 처음으로 해임 결의안 투표로 물러났다. 하지만 반란을 주도한 같은 당 강경파의 반대 탓에 아직도 후임 의장을 선출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배신자가 넘쳐 나는 것은 정치 실종 시대의 씁쓸한 단면이다. 그러나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 나가느냐는 대형 선거를 앞두고 꽤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임에 틀림없다. 한국은 내년 4월에 국회의원 선거를, 미국은 내년 11월에 대통령 선거를 치른다. 당장 이재명 대표의 당무 복귀 이후 행보에 관심이 모인다. 한동안은 통합을 강조하겠지만 친명계와 비명계가 골육상쟁(骨肉相爭)을 벌여온 만큼 가결파 징계는 어느 정도 불가피해 보인다. 특히 공천을 둘러싼 치열한 경쟁이 이들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 것이다. 지난해 '내부 총질' 징계로 촉발된 여당의 내분 역시 종착점이 궁금하다. 비윤계가 공천에서 불이익을 받게 될지, 분당(分黨)까지 이어질지, 외부 중도 세력과의 연합전선으로 확대될지…. 적어도 거대 정당들의 선택이 총선 결과에 영향을 미칠 것만은 자명하다.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이후 민생(民生)이 갑작스레 정치권 화두로 떠오른 걸 보면 선거가 다가오긴 했나 싶다. 그렇지만 유감스럽게도 유권자들은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좌파 진영이든 우파 진영이든 어차피 지키지 않을 공염불임을. 투표권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정치권에 감히 바라는 바는 오직 하나뿐이다. 대한민국을 치유 불가능한 갈등 사회로 더 이상 퇴행시키지 말아 달라는 것이다. 적대적 공생(共生)으로 구차하게 연명하는 대신 단 하루라도 국민 상식에 걸맞은 정치를 해 보겠다는 결의를 가져야 한다. 먼 훗날 '시대의 배신자들'이란 오명을 듣기 싫다면.

    2023-10-22 18:48:54

  • [매일칼럼] 철면피 카르텔을 깨부수려면…

    [매일칼럼] 철면피 카르텔을 깨부수려면…

    중국 송나라에 조변(서기 1008~1084)이라는 관리가 있었다. 그와 관련해선 두 가지 일화가 전해지는데 하나는 청빈한 삶이고, 다른 하나는 강직한 성품이다. '옳지 않음을 아는 사람'(知非子)이란 아호(雅號)에서부터 범상치 않은 기개가 엿보인다. 어느 해 큰 가뭄이 들자 그는 백성 구휼(救恤)을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토호·사찰의 지원을 이끌어내 굶어 죽는 이가 없도록 했다. 하지만 자신은 물욕이 없어 가야금 하나와 학 한 마리가 전 재산이라는 뜻의 일금일학(一琴一鶴)이란 고사성어를 남겼다. 젊은 시절에는 전중시어사(殿中侍御史)라는 감찰 벼슬을 맡아 부정 척결에 힘썼다. 권세가들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12차례나 탄핵 상소를 올려 무능한 재상을 물러나게 하기도 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붙여준 별칭이 철면어사(鐵面御史)였다. 1천 년 전 이야기를 꺼낸 건 철면어사는 사라지고 철면피들만 득시글대는 요즘 정치판 때문이다. 정명한 처신으로 귀감이 되겠다는 공명심(功名心)은 애당초 없었던 듯하다. 선출된 권력 운운하며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오만을 떠는 모습에 말문이 닫힌다. 국회의 국무총리 해임건의안이 지난 21일 헌정사상 처음으로 가결됐다. 조변이 재상 탄핵 사유로 꼽았던 불학무술(不學無術·학식이 넓지 못하고 재능이 부족함)이 한덕수 총리에게도 해당하는지는 모르겠다. 물론 그에게 과실이 없지는 않으나 뜬금없다. 현 정부 들어 해임 건의는 박진 외교·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이어 벌써 세 번째다.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도 탄핵 소추 직전까지 몰렸다가 물러났다. 헌정사상 첫 법관 탄핵, 첫 검사 탄핵 역시 제21대 국회가 남긴 진기록이다.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은 해임·탄핵 카드를 마치 전가보도(傳家寶刀), 치트키(Cheat Key)처럼 휘두른다. 국정을 바로잡을 최후의 수단을 너무 자주 빼들고 있다. 여론전이 필요할 때마다 정부·여당 압박용으로 써먹지만 체감 위력은 갈수록 줄 수밖에 없다. 이재명 대표의 체포동의안 가결로 대혼란에 빠진 민주당이 얼마나 더 이 전략을 밀어붙일지 알 순 없다. '개딸'들의 요구대로 대통령 탄핵까지 불사할지도 두고 볼 일이다. 이 대표는 단식 중이던 지난 5일 "링 위에 올라가 있는 선수들이 국리민복에 반하는 행위를 하면 끌어내려야 하고, 그게 민주주의"라고 분위기를 띄운 바 있다. 민주주의를 지킬 헌법 장치인 줄로만 알았던 해임 건의·탄핵소추권이 남발되는 현실 앞에서 200일도 채 남지 않은 내년 총선의 중요성이 새삼 느껴진다. 결국 누가 정치를 하느냐가 관건이기 때문이다. 어느 당이 다수당이 되느냐와는 다른 이야기이다. 솔직히 공공선(公共善)에 대한 인식 없이 개인의 영달만을 좇는 부라퀴들을 걸러낼 능력을 기존 정치권에서 기대하긴 어렵다고 생각한다. 건강한 정당의 존재는 민주주의 발전에 필수 요소이지만 그들은 굳건한 '철면피 카르텔'인 탓이다. 후원금을 횡령하고, 돈 봉투를 나눠 갖고도 검찰의 조작이라 우기고, 가짜 뉴스로 유권자를 현혹하는 이들을 보라! 결국 유권자의 몫이다. 내년 총선에서 정당 혹은 무소속 후보들은 또 눈속임하려 하겠지만 국민들이 냉철한 판단으로 새로운 정치 구조를 만들어 내야 한다.

    2023-09-24 19:05:39

  • [매일칼럼] 이번에는 다를까?

    [매일칼럼] 이번에는 다를까?

    2019년 국내에서 열린 한 포럼에서 해외 석학들의 논쟁이 내기로 이어졌다. 영국 출신인 니얼 퍼거슨 하버드대 교수와 세계은행 부총재를 지낸 린이푸 베이징대 교수가 당사자들이다. 주제는 20년 뒤 중국 경제가 미국을 추월할 수 있느냐였다. 퍼거슨이 "역사적으로 볼 때 자유민주주의는 전체주의를 앞서 왔다"고 하자 린이푸는 "중국이 미국을 앞지를 것"이라고 반박하며 200만 달러를 걸겠다고 했다. 그는 투자·교역 확대, 풍부한 자원, 넉넉한 외환보유고 등을 꼽으며 중국의 매년 6% 성장을 자신했다. 반면 퍼거슨은 레버리지 성장 전략의 한계, 기업가 활동 위축 등으로 중국의 성장은 더뎌질 것이라고 맞섰다. 또 "경제가 성장해도 민주주의로 이행이 안 돼 비전이 밝지 않다"고도 했다. 다만 내기 금액은 부담스럽다며 2만 위안(약 366만 원)으로 낮췄다. 이들은 20년 뒤 만나 결과를 확인하기로 하고 헤어졌다. 하지만 시장은 벌써부터 퍼거슨의 손을 들어 주는 분위기다. 지난 40년 동안 급성장을 거듭해 온 중국 경제가 정점을 찍고 내리막에 들어섰다는 '피크 차이나'(Peak China)라는 개념까지 유행이다. 'G2' 중국을 위협하는 요인들은 무엇일까?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팬데믹 방역 비용, 미국과의 기술 전쟁, 과부하가 걸린 부동산시장, 인구 감소 등을 제시했다. 중국이 미국을 앞서는 날은 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까지 있다고 꼬집기도 했다. 실제로 암울한 통계는 쌓여만 가고 있다. 수출·물가·소매판매·산업생산·실업률 등 중국의 최근 경제지표는 부진하기만 해 경기침체 속에 물가까지 하락하는 디플레이션 공포에 휩싸였다. 대형 부동산업체들의 부실은 알려진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관측도 나온다. 중국이 6년 만에 자국민의 한국 단체 관광을 허용한 것 역시 그만큼 위기라는 방증이다. 껄끄럽기만 한 미국·일본에도 빗장을 풀어 준 걸 보면 관계 정상화 차원은 분명 아니다. 마오쩌둥 시대 이후 첫 3년 연속 5% 미만 성장이란 참사를 막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시한폭탄이라고 평가한 중국의 침체는 우리에게도 위기다. 수출 감소, 환율 상승 등으로 경기 회복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 대(對)중국 견제망을 공고히 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한·미·일 정상의 캠프 데이비드 회의 이후 중국의 경제적 압박이 더 커질 가능성도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올해 광복절 경축사에서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과의 연대와 협력은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가 번영하고 발전하는 토대가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2년 연속 1%대 성장이 유력한 한국 경제가 외교만으로 재도약할 순 없다. 대외 전략 못지않게 진영 갈등 속에 사라져 버린 우리 내부의 역동성을 되살릴 개혁이 시급하다. 중국 리스크에 대비할 단기 대책은 물론 미중 경쟁 이후 상황도 고민해야 한다. 임기 내 과업에 대한 결정과 함께 임기 이후에도 경제 근간이 될 일들을 해 둬야 한다. 미국 경제학자 케네스 로고프와 카르멘 라인하트는 공저 '이번엔 다르다'(This time is different)에서 부채로 일군 호황은 늘 금융위기로 막을 내리지만, 사람들은 그때마다 '이번에는 다르다'는 착각을 한다고 지적했다. 위기 징후를 발견해도 비현실적으로 낙관하면서 미리 대처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결코 자만에 빠지지 않길 기도한다.

    2023-08-28 06:30:00

  • [매일 칼럼] 이번에는 다를까?

    [매일 칼럼] 이번에는 다를까?

    2019년 국내에서 열린 한 포럼에서 해외 석학들의 논쟁이 내기로 이어졌다. 영국 출신인 니얼 퍼거슨 하버드대 교수와 세계은행 부총재를 지낸 린이푸 베이징대 교수가 당사자들이다. 주제는 20년 뒤 중국 경제가 미국을 추월할 수 있느냐였다. 퍼거슨이 "역사적으로 볼 때 자유민주주의는 전체주의를 앞서왔다"고 하자 린이푸는 "중국이 미국을 앞지를 것"이라고 반박하며 200만 달러를 걸겠다고 했다. 그는 투자·교역 확대, 풍부한 자원, 넉넉한 외환보유고 등을 꼽으며 중국의 매년 6% 성장을 자신했다. 반면 퍼거슨은 레버리지 성장전략의 한계, 기업가 활동 위축 등으로 중국의 성장은 더뎌질 것이라고 맞섰다. 또 "경제가 성장해도 민주주의로 이행이 안돼 비전이 밝지 않다"고도 했다. 다만 내기 금액은 부담스럽다며 2만 위안(약 366만원)으로 낮췄다. 이들은 20년 뒤 만나 결과를 확인하기로 하고 헤어졌다. 하지만 시장은 벌써부터 퍼거슨의 손을 들어주는 분위기다. 지난 40년 동안 급성장을 거듭해 온 중국 경제가 정점을 찍고 내리막에 들어섰다는 '피크 차이나'(Peak China)라는 개념까지 유행이다. 'G2' 중국을 위협하는 요인들은 무엇일까?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팬데믹 방역비용, 미국과의 기술전쟁, 과부하가 걸린 부동산시장, 인구 감소 등을 제시했다. 중국이 미국을 앞서는 날은 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까지 있다고 꼬집기도 했다. 실제로 암울한 통계는 쌓여만 가고 있다. 수출·물가·소매판매·산업생산·실업률 등 중국의 최근 경제지표는 부진하기만 해 경기 침체 속에 물가까지 하락하는 디플레이션 공포에 휩싸였다. 대형 부동산업체들의 부실은 알려진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관측도 나온다. 중국이 6년 만에 자국민의 한국 단체관광을 허용한 것 역시 그만큼 위기라는 방증이다. 껄끄럽기만 한 미국·일본에게도 빗장을 풀어준 걸 보면 관계 정상화 차원은 분명 아니다. 마오쩌둥 시대 이후 첫 3년 연속 5% 미만 성장이란 참사를 막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시한폭탄이라고 평가한 중국의 침체는 우리에게도 위기다. 수출 감소, 환율 상승 등으로 경기 회복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 대(對) 중국 견제망을 공고히 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한·미·일 정상의 캠프 데이비드 회의 이후 중국의 경제적 압박이 더 커질 가능성도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올해 광복절 경축사에서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과의 연대와 협력은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가 번영하고 발전하는 토대가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2년 연속 1%대 성장이 유력한 한국 경제가 외교만으로 재도약할 순 없다. 대외전략 못지않게 진영 갈등 속에 사라져버린 우리 내부의 역동성을 되살릴 개혁이 시급하다. 중국 리스크에 대비할 단기 대책은 물론 미중 경쟁 이후 상황도 고민해야 한다. 임기 내 과업에 대한 결정과 함께 임기 이후에도 경제 근간이 될 일들을 해둬야 한다. 미국 경제학자 케네스 로고프와 카르멘 라인하트는 공저 '이번엔 다르다'(This time is different)에서 부채로 일군 호황은 늘 금융위기로 막을 내리지만, 사람들은 그때마다 '이번에는 다르다'는 착각을 한다고 지적했다. 위기징후를 발견해도 비현실적으로 낙관하면서 미리 대처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결코 자만에 빠지지 않길 기도한다.

    2023-08-21 06:30:00

  • [포토뉴스] 잼버리를 위한 K팝 공연

    [포토뉴스] 잼버리를 위한 K팝 공연

    1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폐영식에서 스카우트 대원들이 K팝 슈퍼라이브 콘서트를 즐기고 있다. 연합뉴스

    2023-08-11 21:56:38

  • [매일칼럼] 우주에 가보지는 못하더라도…

    [매일칼럼] 우주에 가보지는 못하더라도…

    지난해 7월 미국항공우주국(NASA)은 제임스웹 우주망원경(JWST)이 촬영한 사진들을 공개했다. 지구에서 7500광년 떨어진 용골자리 성운 등의 환상적인 모습에 세계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빌 넬슨 NASA 국장의 표현처럼 우주에 대한 인류의 시각이 달라졌다. 인류는 오는 10월에는 태양계 밖 하늘에 대한 역대 가장 상세한 지도를 갖게 된다. 지난 1일 유럽우주국(ESA)이 쏘아올린 유클리드 우주망원경이 첫 이미지를 보내온다. JWST가 가장 멀리 보는 망원경이라면 유클리드는 최대 20억 개의 은하를 넓게 관측한다. 우주의 비밀을 풀어줄 첨단망원경은 이뿐만이 아니다. NASA는 2027년 낸시 그레이스 로먼 우주망원경을 발사한다. '허블 우주망원경의 어머니'로 불리는 미국 여성 과학자의 이름을 딴 이 우주망원경은 허블보다 100배 더 넓은 시야로 관측할 수 있다. ESA 역시 플라토 우주망원경을 2026년을 목표로 개발 중이다. 인류가 거주할 수 있는 행성 발견이 주요 임무 중 하나라고 한다. 이밖에 일본항공우주개발기구(JAXA)는 우주 급팽창 흔적을 찾을 라이트버드를 2027년에, 중국국가항천국(CNSA)은 우주 구조를 탐구할 신톈 우주망원경을 내년에 우주로 보낼 예정이다. JWST와 유클리드가 배치된 곳은 지구에서 150만㎞ 떨어진 라그랑주 포인트 L2지점이다. 지구와 달 사이(38만5000㎞)보다 약 4배 먼 거리에 있다. 지구와 태양의 중력이 원심력과 균형을 이루는 점으로, 우주 관측에 최적 장소로 알려졌다. 여의도 국회는 어떤 면에서 보면 라그랑주 포인트 L2지점 같다. 이 지점의 물체가 태양과 지구에 대해 항상 고정된 궤도를 그리듯이 아무리 정권이 바뀌어도 민심과는 동떨어져 있는 탓이다. 거대 정당 일부 강경파들의 목소리만 넘쳐나고 대의(代議)는 늘 뒷전이다. 우주항공청 설치 특별법도 처리가 늦어지고 있는 현안이다. 여야 모두 입법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모양새'를 두고 힘겨루기가 이어지고 있다. 세계적 추세에 맞춰 윤석열 정부가 국정과제로 채택했지만 연내 우주항공청 설치는 불투명한 상태다. 이 법안은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하지만 KBS 수신료, 방송통신위원장 교체 등을 둘러싼 갈등으로 논의는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파행 사태 두 달 만에 지난 26일 열린 과방위 회의에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불참했다. 결국 민주당의 요구대로 특별법은 과방위 안건조정위원회에 회부됐다. 여기에서 민주당이 찬성하면 본회의 통과까지 무난하다. 그러나 위원장 선출을 두고 여야가 대립하면서 안건조정위 첫 회의조차 무산돼 향후 순탄한 일정을 낙관하긴 어렵게 됐다. 세계는 지금 치열한 우주 경쟁을 벌이고 있다. 체제 우수성을 선전하기 위한 전략이었던 냉전 시대와 달리 경제적 이익 추구가 목표다. 지구와 달 사이 공간을 뜻하는 시스루나(Cislunar)에선 달과 소행성에 묻힌 희귀 자원 채취 같은 계획이 이미 추진 중이다. 2022년 누리호 발사 성공으로 우리 국민은 '우주 G7'이란 자부심을 갖게 됐다. 하지만 민간 영역으로까지 확대된 선진국의 '뉴 스페이스 시대'에 비하면 가야 할 길이 너무도 멀다. 인류의 가장 경이로운 지적 성취를 위한 대장정 앞에서 정치권의 각성이 절실하다.

    2023-07-29 17:34:56

  • [매일칼럼]투본 강의 뱃사공들

    [매일칼럼]투본 강의 뱃사공들

    베트남 중부의 다낭은 요즘 한국인 관광객들로 북새통이다. 현지인들의 서툰 한국말 호객 소리가 어딜 가나 들릴 정도다. 저렴한 물가, 다양한 직항 노선, 호이안·후에 등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과 최신 리조트·놀이공원의 공존이 인기 요인으로 꼽힌다. 한류(韓流) 체험의 하이라이트는 '투옌퉁 투어'이다. 바구니 모양의 전통 대나무배를 타보는 관광 코스로 소개되지만 실상은 수상무도장(水上舞蹈場)이다. 투본강 곳곳에 설치된 조악한 무대에서 한국 트로트 유행가에 맞춰 뱃사공과 관광객이 춤판을 벌인다. 아무리 베트남의 한류가 거세다곤 해도 그 풍경이 충격적이었던 건 다낭과 한국의 '특별한' 인연 때문이다. 대구의 자매·우호도시이기도 한 다낭은 베트남전쟁 때 우리 청룡부대가 주둔한 곳이다. 미담만 있었으면 좋겠지만 '불편한 진실'도 없지 않았다. 그 가운데 하나가 다낭 인근에서 벌어진 '퐁니·퐁넛 학살'이다. 이 마을 민간인 70여 명은 안타깝게도 1968년 2월 12일 한국군에 의해 생명을 잃었다. 베트남에서 미군이 저지른 만행의 대표적인 예로 꼽히는 '미라이 학살'과 비견되는 흑역사이다. 55년 전 벌어진 이 사건에 대해 우리 법원은 지난 2월 '피고 대한민국'의 책임을 처음으로 인정했다. 1심 재판부는 한국군의 명백한 불법행위라며 3천만100원을 피해자 응우옌티탄 씨에게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국가 배상 소송의 최소 신청 금액은 3천만 원이다. 국방부가 항소하면서 한국 정부의 책임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는 잊을 만하면 나오는 일제강점기 관련 일본의 망언에 대응하는 우리 정부의 자세와 비교하면 모양새가 빠지는 일이다. 현 정부가 내세우는 '글로벌 중추 국가'다운 행보도 아니다.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윤석열 대통령의 베트남 순방 동안 과거사 문제는 논외였다. 보 반 트엉 국가주석은 "서로를 지지하는 중요한 파트너"라고 했고, 권력 서열 1위 응우옌 푸 쫑 공산당 서기장은 "한국은 베트남이 닮고자 하는 최적 모델"이라고까지 치켜세웠다. 양국은 대신 '포괄적 전략동반자 관계' 이행을 위한 행동 계획에 합의했다. 경제·안보협력 강화가 서로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한국은 2030년까지 유상 원조 40억 달러를 지원하고, 2024~2027년에는 무상 원조 2억 달러를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렇다고 베트남 정부가 투본강의 뱃사공들처럼 한류에 푹 빠졌다고 착각해선 곤란하다. 윤 대통령 방문 직후인 지난달 27일 팜 민 찐 총리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 "전면적 전략협력 동반자 관계를 구축하길 원한다"고 밝혔다. 시 주석 역시 "양국은 호혜와 공영의 동반자이며 친한 친구"라고 맞장구쳤다. 결국 베트남은 중국과 미국의 경쟁 속에서 자신의 지정학적 특징을 활용해 실리를 챙기고 있는 것이다. 지난달 미군 항공모함이 베트남전 종전 이후 세 번째로 다낭에 기항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다낭 앞바다 파라셀군도(베트남명 호앙사군도, 중국명 시사군도)는 베트남과 중국의 영유권 분쟁 지역이다. 최근 주한 중국대사의 발언으로 반중 감정이 높아지면서 여당 대표는 국내 중국인들의 투표권·건강보험 제한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상호주의에 맞지 않다는 지적에는 공감하지만 얻는 것보다 잃을 게 더 많을까 봐 걱정스럽다.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다던 베트남의 늙은 뱃사공이 차라리 현명해 보인다.

    2023-07-02 17:14:22

  • [매일칼럼]혹시 현충(顯忠)의 노래를 아십니까?

    [매일칼럼]혹시 현충(顯忠)의 노래를 아십니까?

    서울 효창공원 삼의사(三義士) 묘역에는 독립운동가 세 분이 안장돼 있다. 정면에서 봤을 때 왼쪽부터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선생의 묘이다. 모두 일본에서 순국한 이들의 유해는 1946년 김구 선생의 주도로 봉환됐다. 특히 윤 의사와 백 의사의 엇갈린 운명이 눈길을 끈다. 두 사람은 1932년 서로의 존재를 모른 채 중국 상하이 훙커우공원에서 나란히 기회를 노렸으나 윤 의사만 뜻을 이뤘다. 행사장에 먼저 도착했던 백 의사가 거사에 성공했다면 우리 교과서는 달라졌을 것이다. 올해 개봉한 영화 '유령'의 모티브이기도 했던 백 의사는 그 이듬해 '상하이 육삼정(六三亭) 의거'로 종신형을 선고받고 1934년 옥사했다. 일본 정부 요인(要人) 암살 거사 직전에 밀고로 체포됐다. 함께 도모했던 원심창, 이강훈 선생도 해방까지 옥고를 치렀다. 5일이 백 의사 순국 89주기이기도 하지만 그의 일생을 되짚어 본 것은 국가보훈처가 국가보훈부로 격상돼 공식 출범하기 때문이다. 62년 만에 국무위원이 장관인 부(部)가 된 만큼 높아진 위상 못지않게 더욱 효율적이고도 섬세한 보훈 행정을 펴야 한다. 박민식 보훈부 장관은 취임에 앞서 지난 2일 "보훈이란 국민 통합과 국가 정체성을 확립하는 마중물이자 지속 가능한 미래를 이끌어 가는 국가의 핵심 기능"이라고 밝혔다. 맞는 말이다. 보훈은 정치 성향, 세대, 젠더를 떠나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 가치다. 순국선열과 호국영령, 전몰군경을 기리고 유족들을 제대로 예우하자는 데 반대할 국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평가가 공정했느냐를 두고선 의견이 맞선다. 국가를 위해 희생한 이들이 제대로 보상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건국훈장을 둘러싼 논란이 대표적이다. 등급이 대한민국장, 대통령장, 독립장 등으로 나뉘는데 합당한 서훈이었느냐가 논쟁거리다. 유관순 열사의 경우 애초 독립장이 추서됐으나 훈격이 너무 낮다는 지적 끝에 2019년 대한민국장이 추가됐다. 삼의사에게 추서된 훈격도 각각 다르다. 윤 의사는 대한민국장, 이 의사는 대통령장, 백 의사는 독립장이다. 독립운동 성과를 저울로 재듯 정확하게 평가할 순 없는 일이겠지만 좀 더 넓은 공감대가 형성되도록 보훈부가 노력해야 한다. 사실 이 문제는 정권의 의지에 달렸다고 생각한다. 우파 정부와 좌파 정부가 정치적 필요에 따라 그때그때 유공자들을 달리 평가한 탓에 보훈 정책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구설에 휘말렸기 때문이다. 심지어 부처 책임자도 장관급과 차관급을 오락가락했다. 무엇보다 총선을 앞두고 여야가 보훈을 표(票)로 계산하지 않았으면 한다. 선심성 정책 남발 또는 지지층 결집을 노린 여론 몰이는 나라를 위해 희생한 분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국민들의 자발적인 애국심을 이끌어 낼 국가 차원의 어젠다 설정이 우선이다. '겨레와 나라 위해 목숨을 바치니 그 정성 영원히 조국을 지키네. 조국의 산하여 용사를 잠재우소서. 충혼은 영원히 겨레 가슴에. 임들은 불멸하는 민족혼의 상징 날이 갈수록 아 그 충성 새로워라.' 경북 영양 출신인 조지훈 시인이 작사한 '현충(顯忠)의 노래'이다. 하지만 엔데믹 여파인지 올해 현충일은 징검다리 연휴로서만 의미를 갖는 분위기인 듯해 안타깝다. 약삭빠른 정치인들이 현충일에도 대체공휴일을 적용해 연휴를 보장하자는 법안을 조만간 내놓을지도 모를 일이다.

    2023-06-04 16:3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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